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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커비 Feb 17. 2021

나는 왜 셀카를 찍지 못했을까

우리가 오늘 다시 글을 써야 하는 이유

 한동안 열심병에 걸려 집에 있으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PPT도 만들고, 새로운 SNS도 하면서 시간을 한참 보내곤 했는데요. 어느새 글을 쓰는 것이 어색해졌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글을 잘 쓰지 못하면 어쩌나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은 글도 있었고,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 있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거든요. 그렇지만, 글을 쓰다 보면 느끼는 현타가 자주 찾아옵니다. 글을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입니다. 첫 글이 10점 정도 줄 수 있다면, 최근 글은 40점 정도 줄 수 있을 만큼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고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의 글이 70점 정도 될 만큼 훌륭했던 글을 쓴 날에는 다음날 40점의 글을 쓸까 봐 다시 두려워집니다.


 그리고 글 쓰는 자체를 즐기면서 시작한 브런치지만, 누군가가 제게 "브런치에 글 쓰면 얼마 벌어?"라고 물었을 때 우물쭈물하다 대답을 잘 못하는 경우가 잦아집니다. 브런치를 통해 저는 외부 매거진 기고도 하고, 소셜 살롱 파트너 제안도 받고, 다양한 채널에서의 오픈 제안도 받으면서 저를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걸 설명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글을 쓸 소재를 쥐어짜 내고 있는 제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저는 9개의 매거진을 돌려쓰면서 글을 보다 균질하고 정기적으로 쓰고 싶었는데, 어쩌면 모빌리티 글만 계속 쓰고 싶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본 여행기를 쓰고 싶기도 한데, 이번 차례에는 군대 얘기를 써야 한다고 하니 주저되고, 드라마 리뷰를 써야 한다고 하니 억지로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마음이 내키지 않은데 일처럼 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며칠 전엔가 유명한 글 쓰는 크리에이터가 글 쓰는 것에 대해서 말했는데, 그냥 쓴다는 것입니다. 세간의 어떤 평가를 받든 무얼 하든 그 글 쓰는 과정 자체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데 이것을 타인의 시선 때문에 놓치는 것은 너무 슬프다는 것입니다. 만약에라도 오늘 망한 글을 쓴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덜 망한 글을 쓰면 되는 것이겠죠. 


 글 쓰는 것을 잠시 제쳐두고 멍하니 보냈던 시간 동안 '이런 글을 써볼까?' '이런 주제는 어떨까?' 고민했던 것들이 모두 잊혀버렸습니다. 일상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번뜩이는 순간들이었는데 고민하는 순간 흘러가버린 것이죠. 


 글쓰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어느새부터인가 셀카를 찍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얼굴은 변하지 않았는데, 찍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찍는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20대 중반 이후 셀카가 현저하게 줄어있었습니다.


 다행히 같이 셀카를 찍자고 해준 친구들 덕분에 곳곳에서 저의 사진들이 흔적처럼 살아있는데, 이것마저 찍어두지 않았다면 2020년, 2021년의 제 모습은 더 기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셀카를 잘 찍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셀카는 그냥 많이 찍고 그중에 제일 잘 나온 것을 고르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글쓰기도, 사진을 찍는 것도 주저하다 보면 사라지고, 흩어지는 것인데 너무 주저한 것은 아닌지 오늘 스스로 되뇌어봅니다. 그리고 엄마와 여행하는 이유에서 빠트린 이야기가 있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영상을 찍기 시작한 것은 아래 영상을 보고 나서부터 인데요. 


 응답하라 1988에서 정봉이 아빠 김성균이 생일만 되면 슬퍼하죠. 간략히 줄여보면, 정봉이가 어릴 때 아빠의 생일날 재롱을 떨던 목소리가 녹음테이프에 기록되어 있었는데요. 그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정봉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김성균을 사무치게 합니다. 이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김성균의 어머니와의 추억이 생일을 축하하는 재롱 사이에서 다시 새어 나오기 때문이죠.



 오늘 쓰지 못한 글은 오늘의 감정을 담아낼 수 없이 흘러가버립니다. 쓸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써놓고 나중에 수정하고 나만 보기롤 바꾸어 놓아도 됩니다. 찍을까 말까 고민이 될 때는 수천수만 장을 찍어놓고 골라도 되고 안 올려도 됩니다. 지금 나의 생각과 모습, 목소리를 남기면서 아쉽지 않은, 가득가득 찬 오늘 하루를 채우며 마감하는 하루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늘 저의 글이 망했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일 또 괜찮은 글을 쓸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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