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도 봐도 어려운 배달의 민족 수수료 사태 풀어보기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 배달 플랫폼입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배민은
요기요와 함께 시장을 양분하는 과점기업이었습니다. 시장 선점효과, 친근한 브랜딩, 김봉진 대표라는 인물에 대한 호감까지 맞아떨어지면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통해 시장에서 키워나갔죠. 곧 골드만삭스에서 투자유치를 받고 수많은 VC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국내 최고의 유니콘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회사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지만 기업이 성장하는 한 축에는 미담과 마케팅 홍보물들이 만들어내는 기업 브랜드 파워가 있습니다. 특히나 배민의 경우에는 초기 김봉진 대표와 청년들이 시작한 기업답게 초창기부터 파격적인 이벤트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배민의 폰트나, 각 지역 버스 정류장에서 볼 수 있는 사장님들을 응원하는 메시지 이벤트 등은 물론이고, 치믈리에 자격시험, 김봉진 대표의 100억 기부약정 등 훈훈한 미담들로 배민은 '착한 기업'이 되어가고 있었죠.
특히 배민을 착한 기업에 올려놓은 '2015년 수수료 시스템 폐지'선언은 다른 플랫폼들처럼 비즈니스 구조를 소상공인의 기본수수료에서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기업과 소상공인이 공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흑자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배민의 수수료 시스템 폐지 선언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2015년 당시 착한 기업 배민의 수수료 시스템 폐지를 간단히 설명드립니다.
1) 바로 결제 수수료와 울트라 콜(w/파워콜)
- 바로 결제 : 배민 이용자가 앱에서 결제할 때 점주들이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 울트라 콜(w/파워콜) : 앱 상단에 노출되는 광고로 울트라 콜은 월 5만원, 파워콜은 월 3만원
배민의 2015년 당시 매출의 70%가 광고수익(울트라 콜, 파워콜), 나머지 30%가 수수료 수익(바로 결제)이었습니다. 이중 30%를 포기하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과감하고 용기 있는 결정이죠. 특히 광고 지출여력이 있는 대형 가맹점들이 아닌, 소상공인들에게 바로 결제 수수료는 큰 부담이었는데 이 부분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슈퍼 리스트가 도입됩니다.
2) 수수료 시스템 폐지 후 광고비 변경 그리고 슈퍼 리스트 도입
- 바로 결제 : 수수료 시스템 폐지
- 울트라 콜 : 파워콜 없애고, 울트라 콜을 월 8만 8천 원 정액 부과
- 슈퍼 리스트 : 경매형 광고 시스템으로 키워드별 가장 높은 입찰액 Top 3가 최상단 노출
최상단을 슈퍼 리스트 즉, 경매형 광고 시스템을 도입해 가장 많은 입찰액 가게를 3개 띄우고, 그 하단에는 울트라 콜을 배치하고 그 이하에는 일반 음식점 리스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반 가게로부터 취하는 수수료를 폐지함과 동시에 광고 지면을 확대하며 수익을 보전한 것입니다.
이후 슈퍼 리스트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수수료는 폐지했지만, 배민의 광고효과는 꽤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Top 3에게 부여하는 키워드 광고 입찰액은 매월 10%씩 올랐습니다. 키워드 광고 입찰액이 광고효과로 인한 매출 증대 폭 수준에 맞춰지는 분기점에 다다른 것이죠.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기업(배민)과 고객(입점 업주)의 지속적인 성장관계에 금이 갈 수 있습니다. 배민 역시 고객을 키우면서 자신들이 크길 바랐고, 그래서 배민은 다시 결심합니다. 세 번째 수수료 체계를 도입하게 됩니다.
3) 슈퍼 리스트 폐지 후 오픈리스트 도입
- 울트라 콜 : 유지
- 슈퍼 리스트 : 폐지
- 오픈리스트 : 매출의 6.8%를 내고 앱 최상단에 3개 점포가 랜덤으로 뜨는 방식
이 제도 도입으로 인해 가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울트라 콜을 광고를 하고 중간 즈음에 노출될 것이냐, 오픈리스트 구매를 통해 최상단 노출을 가져갈 것이냐. 사실 울트라 콜이나 오픈리스트 아무것도 안 해도 하단에 배치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클릭은 상단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소상공인들은 월 8.8만 원 내고 울트라 콜을 이용해왔다고 합니다. 물론 대형점포들은 오픈리스트까지 활용했고요.
2015년 수수료 폐지 이후 매출액, 이용자 수가 폭발하는 수준에 이르렀고(MAU 300만 -> 800만, 발생매출액 2조 원 -> 5조 원 ),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힐하우스, 세콰이어 캐피털 등 유수의 VC로부터 3600억 원의 투자유치를 이끌어내며 기업가치 3조 원까지 올리는 그 변화에 섰습니다. 문제는 투자자가 많아지면 회사는 이제 더 이상 CEO 혼자만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매해 매출이 급성장하는 것에 비해 영업이익은 많이 늘어나진 않았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수익모델에 대한 회의감을 내비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9년 초기부터 후술할 오픈 서비스 검토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착한 기업, 애국 기업으로 패키징하여 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 요기요와의 대란이 터지면서 배민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왔다고 봅니다. 자금력이 독일법인을 매각한 딜리버리 히어로에 못 미쳤기 때문이죠. 요기요가 퍼붓는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배민은 점유율을 유지해왔지만(요기요 슈퍼클럽), 기술하였듯 2019년은 300억대 적자로 마감하게 됩니다. 시장은 포화되고 있는 와중에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 투자받은 돈을 모두 써버리고 산화하느니 딜리버리 히어로에 인수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결국 2020년 4월 오픈 서비스가 오픈됩니다. 이미 4개월 전부터 예고되었던 바, 시행을 앞두고 진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배신의 민족, 게르만 민족, 공공 배달앱 이야기가 나오고 잇습니다. 일단, 중요한 수수료 시스템부터 보고 가시죠.
4) 오픈리스트 폐지 후 오픈 서비스 도입
- 울트라 콜 : 유지
- 오픈리스트 : 폐지
- 오픈 서비스 : 오픈리스트보다 수수료율을 낮추고 앱 최상단에 무제한 뜨는 방식
먼저 오픈 서비스 도입 배경에는 대형점포들의 깃발 꽂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울트라 콜이 정액 8.8만 원인 점을 활용해 일부 점포에서는 가짜 점포를 여러 개 만들어 인근 지역이 아닌 지역들까지 울트라 콜을 등록해 집에서 한참 멀리 있는 점포가 나의 배민 앱 리스트에 뜨는 경우까지 발생했습니다. 광고 지출 여력이 있는 대형 점포들의 꼼수로 인해 실질적으로 기존 소형 점포들이 울트라 콜에서 노출이 덜된 효과가 나오게 됩니다. 배민의 입장은 이런 깃발 꽂기 꼼수로 인해 소상공인의 노출빈도가 떨어지는 것을 개선해주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취지 역시 동감합니다.
그러나, 오픈 서비스 도입으로 인해 일반 점포들에게 벼락이 떨어지게 되었죠. 이제 오픈 서비스를 가입하지 않으면 노출이 거의 되기 힘듭니다. 이전에 오픈리스트에서는 3개를 제한했고, 바로 울트라 콜이 등장했는데, 이제 오픈 서비스는 무제한 노출이 가능하니 오픈 서비스를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들은 노출 기회가 거의 없는 셈입니다. 1)에서 3)으로 오는 동안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했던 광고 시스템 구조가 다시 4)에 와서야 사실상 매출연동식 수수료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으면 거의 노출이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액 수수료 8.8만 원에 맞춰 가게 운영을 해오던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매출 연동형이 발생하는 순간부터는 기존 마진율에 대한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배민의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은 소상공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고 알려졌기에 응원받았습니다. 요기요와 한창 싸움을 할 때에도 사람들이 배민을 이용해 준건 요기요의 매출 12.5% 연동형 수수료제에 비해 '착한 기업'이기 때문이죠.
4차 산업혁명 비즈니스가 혁신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배민은 충분히 그 선두에 설 만 했죠. 에어비앤비가 놀고 있는 방이나 집을 공유하면서 비즈니스를 일으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이익을 가져가는 모델을 만들었듯, 배민은 수수료 위주의 전단광고업계에서 정액 광고 위주로 재편한 새로운 혁신 모델을 만들어냈죠. 하지만, 합병 이후 나온 첫 개편이 오픈 서비스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 호소라면 이제 더 이상 그 혁신은 폐기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한창 공정위에서 요기요와 배민, 그러니까 우아한 형제들과 딜리버리 히어로의 기업결합심사 중에 있습니다. 또 코로나 19로 많은 소상공인들 피해가 막심한 수준이라고 하죠. 물론 배달 위주의 업체들은 조금 상황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기업이,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한 수수료 방식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독점적 지위에 대한 반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이 아티클에서 밝히고 싶었던 것은, 배민을 성장시킨 것이 착한 기업 프레이밍이었다면, 배민의 발목을 잡는 것 역시 착한 기업 컴플렉스 때문이라는것입니다. 기업에 '착한'이라는 정체성을 심는 순간부터 기업은 영리 행위를 하는 데에 수많은 제약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유수 VC들의 투자제안에도 오너들이 주식 비율을 낮추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착한 기업 함정에 빠진 배민이 창사이래 가장 큰 도전을 맞이했습니다. 제 생각에 배민은 기업의 정체성에서 민족, 착함, 한국 유니콘, 소상공인과 상생이라는 명징한 색깔을 지워나가며 영리 기업으로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첫 번째 단계라고 보입니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편견 없이, 오직 서비스만으로 다시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