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추자와 희재는 같은 반이었다. 열일곱. 교복 입은 나이라는 게 그렇듯 일상은 따분하고 정해진 규칙 속에서 변주 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고등학생이 됐다고 천지개벽하듯 중학생과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수능과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감각하며 명절에도 주말에도 방학에도 뭉근한 압박감에 눌려 살아야했다.
고1 3월 모의고사를 치른 그날. 담임선생님은 채점하는 아이들에게 <이 시험이 수능을 치르기 전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고 목에 핏대 세워 역설했다. 수능에서 물리적 기간 상 가장 먼 모의고사가 가장 중요하다니. 이런 패러독스가 어디 있나. 마침 역설을 다루는 언어 문제를 채점하던 희재가 고갤 설설 저었다. 담임은 열일곱 애들과 열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신규 교사에 과목은 수리였다.
“이번 시험 성적이 고3 때까지 쭉 간다 얘들아.”
흡사 저주와도 같았다. 이번 시험으로 모든 게 결판난다면 3년간 수험생활은 왜 한단 말인가. 희재는 묵묵히 가채점을 이어갔다. 담임은 다른 쪽으로 기민했다.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선생 눈에는 특별 감지 레이더가 있었다. 친구가 많은 친구와 친구가 없는 친구가 한 눈에 보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략을 써서 랜덤 아닌 담임 재량 지정으로 자리를 바꿨다. 애들은 규칙도 패턴도 없는 그 자리바꿈에 야유를 보냈다.
3월 모의고사 가채점을 끝내자마자 담임은 애들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대로 자리를 바꿀 거야. 가장 조화로울 수 있는 방법으로 선생님이 섞어 앉힐 거예요. 선생님 말투가 사실은 너무 귀여워서 애들은 웃음을 어금니 아래 숨겼다.
“헐. 너도 얘네 좋아함?”
그렇게 담임의 재량 아래 희재와 추자는 3월 모의고사를 치른 그날 짝이 됐다.
“어.”
추자는 반의 모두와 친구였고 희재는 언제나 혼자였다. 둘 다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딱히 현상황에 불만도 없어 보였다. 희재는 언제나 홀로 머릿속이 번잡스럽게 바빴다. 타인과 대화할 시간에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상상의 나래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부류였다.
“나돈데. 겁나 반갑다.”
추자가 거침없이 희재 책상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자는 뜻이었다. 벽을 허무는 건 간단했다. 1분단 둘째 줄에서 피어나는 우정을 보며 담임도 어금니 아래로 웃음을 숨겼다. 얼른 가채점 점수 내도록! 엄한 목소릴 냈지만 이럴 때 교단에 선 희열을 느꼈다. 외로운 친구들에게 친구를 붙여주는 일. 사실 그녀는 수학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단 그 우정의 작대기를 이어주고 싶어 교대에 진학한 사람이었다.
추자가 내민 손에 희재는 손가락 끝만 간신히 붙잡고 2초 정도 흔들었다.
추자가 발견한 건 희재가 필통 안에 숨겨둔 어떤 증명사진 뭉텅이였다. 흠집 안 나도록 증명사진은 투명한 비닐 봉지에 고이고이 포장한 채였다. 성향 성격 교우관계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이 말을 트게된 계기가 바로 그 사진 속에 담긴 빛나는 얼굴들. 공통 관심사였다.
“너 쟤네 언제부터 좋아했냐?”
추자가 반가움의 내색을 숨기고 물었다.
“데뷔 때부터.”
희재가 가뿐히 응답했다.
“와, 나도. 고희재 너 안목이 꽤나 좋다?”
추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아무와도 이야기 안 하고 홀로 문제집에만 코 박고 공부하는 희재가 이런 것엔 전혀 관심 없을 줄 알았다. 희재 나름대로는 주변에 친구들이 바글대는 추자가 굳이 텔레비전 속 허상에 관심 가질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다 비스트 투피엠 인피니트 좋아하는 시대에 반갑네.”
추자의 감탄에 희재는 픽 웃음이 터졌다. 희재는 함부로 웃지 않았다. 웃음이 귀하게 터지는 애였다. 추자는 그 웃음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말렸다. 수업시간에 웃긴 농담으로 모두가 와르르 떠내려가도 희재는 좀체 웃지 않았었다. 그런 면에서 이상한 줏대가 있었다. 집단행동에 휩쓸리기 쉬운 때에 열일곱의 뻔뻔한 줏대란 꽤 찾아보기 힘든 면모였다.
“너무 뻔해.”
중얼대는 희재 말투에 추자가 웃었다. 그럼 우리는 뭐 안 뻔하냐? 쟤네도 아이돌인 건 똑같은데? 반문했다.
“너무 잘 나가는 것들은 재미없어.”
희재가 덧붙이는 말에 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고희재는 예사로운 애가 아니었다. 아이돌 좋아하는 철학도 한 줏대 존재하는군. 희재가 손을 뻗어 제 필통에서 증명사진 모셔둔 비닐을 꺼냈다.
“넌 여기서 누구 제일 좋아하는데?”
희재의 물음에 추자는 ‘승혁이’ 라고 답하자, 희재는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갤 끄덕였다.
“다행히 겹치진 않네.”
얇은 비닐을 벌린 희재가 맨 뒤에 숨어있던 승혁의 증명사진을 꺼냈다. 사진은 희재가 좋아하는 순서로 들어있었다. 세번째 순서로 비닐에 안착했던 승혁의 사진을 꺼내들고는 흔쾌히 추자에게 건넸다. 추자가 일순 얼떨떨해진 얼굴로 받아들었다. 그와중에도 사진에 실금이라도 갈까 손톱은 어떻게든 안 닿게 힘주어 집었다.
“와 근데 이 사진 뭐야? 못 보던 사진인데? 근데 너 이거 나 줘도 괜찮아?”
“어 괜찮아. 난 얘 제일 좋아해.”
희재는 비닐 맨 앞에 꽂혀있는 사진의 주인공을 가리켰다.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조유성?”
추자 물음에 희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일 없었단 듯이 비닐팩을 다시 말아 필통에 꽂았다. 와중에도 자그마한 사진들 모서리 각을 착착 맞췄다. 문제 풀다 막히면 희재는 필통 속에 숨겨둔 증명사진을 보곤 했다. 무슨 부적이라도 된다는 듯이. 4점짜리 수학 문제에 한숨 한 번. 빛나는 보조개 자랑하며 웃는 필통 속 조유성으로 시선 한 번. 추자는 손에 쥐어진 앙증맞은 증명사진을 애지중지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리 집에 그거 큰 버전도 있는데.”
“와 고희재 너희집 가도 돼?”
“언제든지.”
“오늘도?”
희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희재 얘 재밌는 애네. 추자는 크게 웃었다. 꼭 반에서 제일 재밌는 애들은 혼자 다닌다. 역시 세상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열일곱.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만큼 큰 교집합은 없었다. 두 사람은 1학년 3반에서 유일한 아이돌 ‘프로스타스’의 팬이었다. 프로스타스는 점심시간에 방송반 언니들이 일주일에 한 번 선곡해주기도 어려울 만큼의 인지도 미비한 그룹이었다. 뮤직뱅크 틀었을 때 세번째 정도 순서로 나오는 정도. 후반부 시상보다는 출연 자체에 의의가 있는 그런 아이돌이었다. 그룹 프로스타스는 아이돌로서 크게 흥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텔레비전에 얼굴 한 번 못 비칠 만큼 고꾸라지게 망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게 애매했다. 어디서 들어는 본 듯한 그룹인데 아무도 그 그룹 멤버의 얼굴 하나하나는 떠올리지 못하고 히트곡 하나 없는 그 흥망성쇠를 희재와 추자는 학창시절 내내 함께했다.
애매한 위치라고 해서 마음의 온도까지 애매한 건 아니었다. 더위에 질식할 것 같을 때에도 야외 드림콘서트를 보러 갔었다. 살갗 벗겨지기 일보 직전으로 탄 목덜미를 하고도 응원봉 흔들며 같이 땀을 흘렸었다. 프로스타스가 참여하는 지역특산물 고추 도라지 행사를 보려고 추석에는 함께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프로스타스가 하필이면 그들이 고3이 된 중요한 시절 해체를 선언했을 때도, 추자는 희재에게 전화했었다.
-야 고희재! 나 지금 너희집 간다. 이 미친 새끼들이!
유명 아이돌도 아니었던 프로스타스가 뉴스 메인에 뜬 사건. 무려 멤버 세명이 함께 탄 차량이 음주운전으로 전봇대를 들이박는 사고가 발생했다. 핸들을 잡은 건 프로스타스의 리더였다. 도저히 비난을 면할 길 없는 명명백백한 죄였다. 희재와 추자는 망연한 얼굴로 그간 쏟아낸 애정이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는 과정을 목도했다. 열렬하게 사랑한 만큼 배신감의 부메랑은 더 큰 가속도로 회전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프로스타스는 그 사건 후로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큰 관심 받지 못한 데뷔처럼 소리소문 없는 해체였다. 두 사람은 태어나 처음 겪는 황망함이었다. 그 시절엔 그룹 해체가 지금보다 좀 더 빠르게 일어났었다. 프로스타스. 두 사람이 함께한 첫 덕질의 유쾌하지 못한 안녕이었다. 요령없이 온 마음 내던진 사랑이 폐허가 된 시점. 수능이 딱 99일 남아있던 날이었다.
더이상 흔들일 없어진 거대한 응원봉과 커터칼로 한땀한땀 만들어낸 수많은 플랜카드들만이 옷장 속에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