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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춤 에테르 3화

오타쿠도 어른이 된다.

by 모정연

스물일곱 추자는 맥주와 소주를 종류별로 구매해 희재 집으로 왔다. 편의점에서 특별히 값나가는 나쵸까지 사는 사치를 부렸다.


“주희찬 이, 이, 완전히 미친 새끼!”


추자와 희재는 많은 게 반대였다. 추자는 술을 잘 마시게 생겨선 한 잔만 마셔도 기절했다. 희재는 술은 입에도 못 댈 것처럼 생겨 소주 세 병을 마셔도 거뜬한 주당이었다. 술 약한 추자는 술을 매일같이 달고 살았고 술 강한 희재는 절대 술을 안 마셨다. 이유는 맛있어서였고 또 맛이 없어 입에도 대기 싫어서였다. 그렇게 다른 두 사람이 십년 째 우정을 유지한 건 대쪽같이 겹치는 취향 덕이었다. 그 취향은 두 사람의 우정을 질기고 끈끈하게 묶었다. 물론 함께 텐빌스를 좋아했어도 추자는 희찬을, 희재는 연오를 가장 좋아했으므로 언제나처럼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멤버’가 겹치지 않았다.

고욱현의 라이브 방송 당일. 인터넷은 작고 소소하게 뒤집어졌다. 연예 뉴스 제목은 대략 아래로 일축됐다.


[작년 해체한 텐빌스 주희찬, ‘나에게 차연오 묻지마 XX’ 욕설 라이브]

[왜 다 내 앞에서 차연오 이야기만 해? 술김에 드러난 주희찬의 열등감]

[언제부터 빗나간 우정이었나… 케이팝 대표 우정 물거품으로, 팬들 추억에 대못 박은 주희찬 라이브 현장]

[8년 우정 모두 허상? 주희찬 ‘내 앞에서 차연오 이름 꺼내지도 마’ 파국 우정 일파만파]

[트러블메이커 주희찬의 한마디, ‘차연오 아이돌 데뷔할 때부터 팬들 혐오해왔다’ 충격 고백]

[천사 같던 웃음 모두 가식이었나? ‘차연오는 세상에서 팬들 제일 싫어해’]


인터넷 기사를 끄고 희재는 핸드폰 액정을 식탁 위로 엎었다.

“내가 다시 한번만 아이돌을 좋아하잖아? 사람이 아니라 돌이시다.”

만취한 추자가 젓가락으로 희재 식탁을 탁탁 치며 말했다. 나무와 나무가 맞닿는 소리가 꼭 목탁 치는 것처럼 청아했다.

“너 저거! 당장 떼. 세상에서 팬들이 제일 싫으시다잖아.”

추자가 벽에 붙은 대형 페브릭 포스터를 가리켰다. 희재는 추자의 빈잔에 소주를 채워줬다. 희재 엄마도 희재도 술을 입에도 안 대는 사람들이다보니 이 집 냉장고에는 안주거리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안주 비슷하게 꺼낼 수 있는 게 사과였다. 냉장고에서 사과 두 개를 꺼내온 희재는 깎지도 않고 덜렁 내밀었다. 추자가 건치를 자랑하듯 우걱우걱 씹었다. 희재도 그러고 싶었으나 타고나길 입이 작아 어려웠다. 와중에도 교정해서 뿌리 짧아진 어금니가 빠질까 걱정돼 과도를 가져왔다. 작게 자른 사과를 추자처럼 맛깔나게 씹었다. 뭐라도 안 씹으면 화를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입속에 구르는 말들을 사과 핑계로 삼켰다.

“주희찬 걔는 술로 망할 거야. 아니. 이미 망해버렸지 참.”

추자가 중얼거렸고 희재가 끄덕였다.

“우리는 어떻게 된 게 좋아하는 놈들마다 이 사달이지? 남자 보는 눈깔이 왜이래? 골라도 어떻게 이런 개차반들만 고르지? 프로스타스에 텐빌스에 난리났다. ‘스’자로 끝나는 게 문제냐?”

“그런 놈들만 좋아하니까. 너랑 내 피가 저런 애들한테만 반응하니까. 귀신같이 끝이 안 좋을 놈들만 골라보는 거지.”

희재 말에 추자가 다시 한 번 나무젓가락으로 식탁을 탁 소리 나게 내려쳤다.

“결심했다! 난 이제 대형기획사 아이돌만 좋아한다. 무슨 일이 나도 수습해줄 든든한 뒷배 있는 대형 출신 애들. 회사가 빡세게 관리도 해주고! 맨날 계획은 줄줄이 사탕처럼 밀려서 팬들 피말리게 하지도 않고! 아! 대표가 혼자 날름 날라버리지도 않고! 대표가 알고보니 지뢰도 아니고! 대표 이름발로 굴러가는 회사도 아니고! 그 대표 하나로 흥망이 좌우되지도 않고! 1집 나오면 2집 나오는 게 당연하고, 다음 앨범 다음 앨범 계속 내주는 게 당연한! 그런 대형기획사 아이돌만 좋아한다!”

아까까지는 아이돌을 다시 좋아하면 돌이라더니. 아무래도 그건 불가능한 걸 술김에도 아는 건지 추자는 대형기획사 아이돌만 사랑하겠다고 타협안을 선언했다. 희재는 추자 취향을 안다. 추자는 그런 완벽한 친구들과 앞서나가는 기획력에 가슴 뛰는 부류가 아니었다. 빈틈. 아주 작고 미세한 결점들이 보이는 그룹들에 심장이 뛰었다. 멤버들마저도 회사의 결점을 알아서 더 열심히 극복하고자 애쓰고 기쓰는 노력점에 심장이 반응했다. 완벽한 것을 볼 때 뛰는 심장이면 참으로 좋을 텐데. 받쳐주지 않는 미완성의 자본력에 애쓰는 애들을 볼 때 심장이 뛰었다. 기획력과 반비례하는 열정을 볼 때마다 심장 속 잠들어있던 활어 한마리가 펄떡대기 시작했다.


비주얼 완벽한 멤버들과 상반되도록 아쉬운 A&R팀의 타이틀곡 선정이라던가. 노래가 완벽하면 댄스 퍼포먼스가 강약 없이 몇 퍼센트 부족하다던지. 만약 그 둘이 받쳐주면 공간대여료 안 나가는 폐허에서 원테이크로 찍어온 것 같은 본새 없는 뮤직비디오로 김 새게 만든다던가. 이전 앨범 컨셉이 오랜만에 완벽해 기세로 밀고 나가야 할 때 공백기로 황금같은 시간을 날려먹는다거나. 본인들이 잘 하고 있을 때 쓰잘머리 없는 실험정신 발휘해 생뚱맞은 곳으로 가버리는 뚝심 부족한 기획력이라던지.

그러나 그 모든 결점들에도 멤버들은 항상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노력을 볼 때 심장이 찌르르 반응하는 거였다.


“아니. 추자야 우리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초딩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런 주류 감성이 아니야. 인정해. 우린 그런 애들한테 심장이 안 뛰어.”

“앨범 백만장 이하로 파는 아이돌을 다시 한번만 좋아하면 내가 김추자가 아니고 돌추자다.”

추자는 거기까지를 말하고 기절했다. 기절한 추자 머리 위 벽에 걸린 페브릭 포스터 속에서 텐빌스 다섯명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잘 된 아이돌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텐빌스가 잘 된 아이돌이 아니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았다. 내로라하는 성공궤도에 닿아본 적은 없는 그룹이었다. 지나가는 대중 10명을 붙잡고 텐빌스를 아느냐 물어보면 절반이 안다고 대답할 거였다.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친 유행가 타이틀곡이 있던 것도 아니고 연기로 빠져 그룹을 알린 멤버도 없었다. 국내보다 해외반응은 더욱 처참했다. 누군가 빌보드에 갈 때 멜론차트에도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세상엔 잘 되는 아이돌보다 그 반대 경우가 더 많다. 세상의 이치였다. 나오는 족족 잘 되기만 하는 시장이 있다면 그건 그 시장 찰나의 기형성이다. 흥이 있다면 망이 있고 성이 있다면 쇠가 귀신같이 찾아온다.

남들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좋아할 때 더블에스 오공일 좋아하는 취향이면 되는데, 좋아한다고 말하면 꼭 ‘누구라고?’ 되묻게 되는 그룹들을 좋아해왔다. 고3시절 프로스타스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뒤 헛헛해진 스물에 만나게 된 게 텐빌스였다.

“쟤네 둘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아무리 허상을 좋아했어도. 차연오랑 주희찬 쟤네 우정은 어? 실버타운 가서도 같이 춤 추겠다매. 내가 뭘 믿냐. 뭘 믿어. 아이돌이 한 말을 믿은 내가 등신 팔푼이지.”

강시처럼 벌떡 일어난 추자가 손에 쥐고 있던 싸구려 사워소스 묻힌 나쵸를 들고 페브릭 포스터에 삿대질을 시작했다.

"같이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인생에 지들밖에 없다매. 뭐 세상이 무너져도 서로만 있으면 솟아날 수가 있어? 세상 우정이 다 뒤져버렸지."

언젠가 연오와 희찬 둘이서 심야의 늦은 새벽 켰던 라이브 방송에서 했던 말. 컴백 후 저조한 성적으로 팬들도 의욕이 떨어지고 멤버들도 속상했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솟아나긴 개뿔. 두 번만 솟아났다가는."


'솟아'를 발음할 때마다 나쵸 든 손을 허공에 솟아올리던 추자였다. 결국 손끝에서 가벼운 나쵸가 발사됐다. 소스 범벅된 나쵸가 허공을 갈랐다. 장렬히 페브릭 포스터에 흔적만 남기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대로 추자도 식탁에 이마를 쿵 박고 엎어졌다.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뽑아들고는 추자가 날려버린 바닥의 나쵸를 주웠다. 휴지통에 버린 뒤 돌아온 건 소스가 묻어버린 페브릭 포스터 앞.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뽑으려다 희재는 한숨을 내쉰다. 웬만하면 안 쓰는 항균기능 들어있는 고급 물티슈 캡을 열었다. 마뜩찮은 얼굴로 한 장을 뽑아들고 반질반질한 페브릭 섬유 위를 닦기 시작했다. 물티슈에 사워소스가 묻어나고 덕분에 아무일 없었단 듯 포스터가 멀끔해졌다. 희재가 제일 좋아하던 차연오의 전매특허 눈웃음이 다시 얼룩 없이 새 것처럼 맨들거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하필이면 제일 좋아하던 눈이었다. 한때는 저 눈만 보면 슈퍼맨이 되는 것처럼 거친 세상 헤쳐나갈 아드레날린을 얻었었다. 저 웃음에 담긴 순수함의 농도를 모두 안다고 자신했었다.

저 웃음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감히 모두 해석할 수 있다고 단언했던 과거의 스스로가 우스울 뿐이었다. 물티슈 특유의 인위적이고 향긋한 향이 폴폴 날렸다. 태어나 처음 맡는 것도 아닌데 너무 낯설어 별게 다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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