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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춤 에테르 7화

by 모정연

“언제는 바다 건너야 돼서 멀리 보내는 거라더니. 공찬이 서점까지 가시게?”



추자 물음에도 희재는 까치발까지 하고 손을 흔들었다. 공찬이 준 도넛 비닐봉지가 흔들리는 손목에서 배회하며 붉은 자국을 냈다.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걸어가면서 공찬도 몇 번이나 돌아봤다. 얼른 가라! 추자의 손짓에 공찬은 느린 속도로 사라졌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두 사람도 돌아섰다.



“우리 올해 성공찬 생일에 트렁크 하나 사주자. 쟤 저 바퀴 아작난 걸 여태 들고 다니네.”



공항을 나서며 하는 희재 말에 추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 방금 게이트로 들어간 그룹 위치드 사진을 찍은 팬들 ‘플로레스’가 곳곳에 남아 카메라 데이터를 확인했다. 카메라를 들고 사랑스러운 결과물을 바라보느라 눈을 빛내는 팬들을 지나쳤다. 그중 몇몇이 든 <최장신 댄서>라는 슬로건에 마음이 따끔거렸다. 얼마 전까지 저 수식어는 희재가 열렬히 사랑했던 차연오의 별명이기도 했다. 흔한 특징이라도 그 애한테 있으면 특별해지는 게 사랑의 위력이었다.



“성공찬은 진짜 뭐가 돼도 될 놈이야. 자기 꿈 찾아서 저렇게 가는 것 좀 봐.”

“우는 거 아니지 고희재.”

“난 쟤 잘 될 줄 알았어. 스무살 때부터.”

“차연오가 가입할 수밖에 없는 편지를 어플 첫 화면에 박제해둘 거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던 그 고희재는 어디 가셨나.”

“그 이름 크게 말하지도 마.”



옹골찬 표정으로 말한 희재가 봉지에서 도넛 하나를 더 꺼내 물었다.



“차 타기 전에 손에 기름 다 닦고 타라. 시트에 기름 묻히면 죽어.”



추자 잔소리에 희재는 쪽쪽 소리가 나도록 설탕 묻은 손가락을 빨았다. 야외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두 사람 머리 위로 비행기가 떴다. 희재는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행기가 아니라 비행운을 봤다.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지는 물체가 하늘에 그리고 간 흔적. 스물부터 그리던 꿈의 궤적을 잃지 않고 지켜낸 공찬이 자랑스러워 가슴 한켠이 뻐근했다. 차에 타기 전 바지에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탈탈 털었다. 기름 없다! 열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는 희재를 보며 추자가 웃었다.



[꼭 우리 어플 만들어서 돌아갈게. 곧 보자.]



차에 타려는데 희재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공찬에게서 온 메시지가 반짝였다. 먼저 차에 탄 추자는 핸드폰으로 ‘위치드’를 검색해 데뷔앨범을 재생했다. 오늘 공항을 마비시킨 초특급 신인 아이돌 데뷔 앨범은 비트 때깔부터 달랐다. 역시 대형기획사 데뷔곡다웠다. 외국에서 사온 값비싼 곡이라는 게 인트로부터 느껴졌다. 스무스하게 이어지는 각 트랙의 흐름 역시도 유기적이었다. 앳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전주가 차에 퍼졌다. 안 타? 추자 물음에 희재는 조수석 문을 열고 여전히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응 뭐 하나 답장만 보내고 탈게.”

희재는 답하며 키패드를 눌렀다.



[성공찬 니 이름을 봐라. 너는 성공할 이름이야. 자신감을 갖고 어플 만들어서 당당히 서울로 돌아와.]



그들이 말하는 ‘어플’의 시작으로 가려면 시간을 스무살로 돌려야했다.



스물의 캠퍼스. 꿈과 희망. 사랑과 청춘이 한데 어우러져 형형색색 빛깔을 내는 그곳에서 희재와 공찬은 처음 만났다.



모두가 대학에 가면 인생이 바뀔 거랬다. 대학에 가면 없던 꿈이 생겨나고 없던 사랑이 찾아오고 벅차오르는 청춘이 시작된다는 세뇌를 받으며 자랐다.



스물.



희재가 경험한 입학 직후의 대학 생활은 놀랍도록 지루하고 따분했다. 대학에 가서 추자 비슷한 친구를 못 만날 수도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입학했다. 엄청난 우정과 대단한 사랑은 살면서 한 번도 기대해본 적 없었다.



입학한 학과에 여자는 희재를 포함해 넷. 나머지 수십 명은 남학생이었다. 여중 여고 출신 희재는 동급생 남자애들과 말해본 경험이 거의 전무했다. 선배들도 이렇게까지 성비가 극악하진 않은데 특이할 따름이랬다. 여학생 넷은 성향 개성 취향 취미 성장배경이 너무나 달랐다. 넷. 짝수라 좋다고 누군가 그랬다. 희재는 홀짝 별 상관 없이 어차피 안 맞을 거라는 걸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직감했다.



한명은 자사고 출신, 한명은 섬동네에서 왔댔고 한명은 강남 팔학군 출신이랬다. 배경이 달라도 친해질 계기는 많이 남았다. 신입생 오티. 넷이서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술 마실 기회가 왔다. 희재는 그때 본인 주량이 세다는 걸 몰랐다. 유난히 취한 셋에게 희재는 멀끔한 정신으로 물었다.



“니네는 혹시 아이돌 누구 좋아했어?”



친해지려고 희재 딴에는 최고 관심사 카드를 꺼냈다. 셋이 어깰 으쓱하며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런 것 없다는 눈치였다. 정말? 슈퍼주니어도? 더블에스 오공일도? 동방신기도? 엠블랙도? 투피엠도? 비스트도? 그렇다면 혹시 밴드는? 씨엔블루나 에프티아일랜드라던가…. 묻고 또 물었지만 모두 공부하느라 정신 없어서 그런 걸 모른다고 했다. 희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심지어 한명은 동방신기가 뭐냐고 했다. 그런 친구들이 프로스타스를 알 리가 없었다. 대신 친구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일학년인데 벌써부터 전공 살린 취업이라는 건설적인 주제로 튀었다가 입학하면서 헤어졌다는 남자친구 이야기로 Q가 울었을 때에는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지난 연애 에피소드를 술술 풀어내며 위로했다. 모두 똑같은 남잘 사귄 것도 아닌데 셋이서 놀랄 정도로 똥차 같은 남친 이야기로 대동단결했다. 똥차같은 지나간 최애에 대해서라면 할 말 많은 희재였지만 안주로 나온 나초칩만 먹고 또 먹었다. 그러고 보니 희재 인생에 들어찬 남자 기록을 들춰보면 아이돌뿐이었다. <전 남친>. 그런 흔적은 희재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궤적이었다.



“희재는 남자친구 있어?”

마치 희재가 좋아했던 아이돌이 있느냐고 정중히 물었던 것처럼 Q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친구들도 공통관심사 찾기 게임을 시작한 거였다.



그제야 희재는 본인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져본 적 없다는 걸 자각했다. 앞으로도 그런 것에는 관심 가질 일이 없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묘하게 다른 언어 쓰듯이 겉도는 대화들.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행성으로 이사를 온 것 같았다. 다시 돌아가는 길을 잃는 일만 남은 것처럼 상실감이 몰아쳤다.



여자 동기 셋은 통하는 게 많았다. 같은 곳에서 쇼핑하고 뭔가를 같이 맞춰 하는 걸 좋아했다. 반지나 커플 목걸이 같은 것들에 큰 의미를 뒀다. 처음 몇 번은 희재도 함께했다. 넷이라는 짝수 명목이 참 그럴싸했다. 그들과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 희재는 점점 말수를 잃어갔다. 셋 역시도 다정한 성정이라 희재와도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코드가 다른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 학교, 이 단과대, 이 과에서는 1학년 때 미팅을 많이 잡아주고 나가는 게 전통이랬다. 희재는 어떻게 저런 이상한 게 전통일 수 있을까 경악했는데 학과 신입생 전체가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세 번째 미팅까지 꾸역꾸역 나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P가 위로하듯 희재 어깨를 잡았다.



“희재야 너도 안경을 벗어봐. 그러면 진짜 예쁠 것 같아. 오늘 올리브영 세일하는데 나랑 같이 가볼래?”



일곱 살 때부터 껴온 안경은 편했다. 눈알에 이물질을 턱 붙이고 다닌다는 건 영 꺼림칙했다. 각막의 소중함은 고등학생 때 생명과학2 공부한 희재로서 아주 잘 알았다. 비싼 렌즈를 편의도 아닌 미용 목적으로 눈깔에 붙일 마음은 없었다.



희재는 이참에 <그 작업>을 좀 더 서둘러야겠다고 다짐했다.

희재가 이 대학에 입학한 진짜 이유. 그건 결코 허접한 미팅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왜요?”

“학칙이 그래요. 이건 입학처에도 써있어요.”

“입학처 어디요?”



조교는 창백한 얼굴로 모니터를 희재 쪽으로 돌려줬다. 저 때문에 얼굴이 저렇게 창백해진 걸까 무서웠지만 그걸 걱정할 여유가 없었다.



“여기요. 타 단과대 재학생은 예술대학으로의 전과는 불가합니다, 라고. 보이죠.”



희재는 ‘조교님 이건 너무 작은 글씨잖아요! 게다가 회색 바탕인데 흰색 글씨로 써놓으면 어떡해요? 저 글씨는 6포인트도 안 돼보이는데요?’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지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놀라 목구멍에 인절미 가루가 걸린 것처럼 컥컥댈 뿐이었다.



“학칙은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어요?”

“못 바꿔요.”



잿빛의 송장 같은 얼굴로 희재는 예술대 건물을 빠져나왔다. 예술대학 앞 벤치에 걸터앉아 멍청한 얼굴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과잠 등짝에 박힌 글씨를 구경했다. 컬리지 오브 아트. 부러웠다. 희재 등짝에는 컬리지 오브 엔지니어링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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