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진인사 대천명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25년 여름 강릉은 신종 재난인 가뭄으로 메말라 가고 있다. 그동안 경험해 본 적 없는 역대급 가뭄으로 강릉의 취수원인 오봉댐은 건설 후 처음으로 저수율이 15% 이하로 떨어졌고, 지금도 매일매일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강릉시뿐만 아니라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대통령도 직접 현장을 방문했고, 그렇게 강릉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가뭄으로 인한 긴급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긴급재난지역이 되었지만 당장 비가 오지 않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원시적으로 정수장에 물을 채우는 것뿐이기에, 소방청은 8월 30일 19시를 기해 전국의 소방차를 동원하는 전국소방동원령을 발령되었다. 이전 대형 산불을 끄기 위해 대관령을 넘었던 그 소방차들이 이번에는 가뭄을 끄기 위해 단비 같은 물을 가득 싣고 새벽을 달려 강릉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아직도 소방차를 보면 가슴이 뛰는 은퇴 2년 차 전직소방관, 하지만 이제는 소방관이 될 수는 없기에 자원봉사자로, 32년 살았던 고향 같은 재난의 현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이미 그곳(홍제정수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소방관들이 가뭄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있었고. 꼬리를 물고 이어진 수많은 소방차의 행렬은 흡사 강한 물줄기처럼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화재현장과는 달리 가까운 곳이 아닌 가뭄이 그나마 덜한 동해, 평창, 양양, 속초까지 멀게는 왕복 100km를 달려서 하루에도 몇차례씩 물을 싣고 오고 힘든 임무이지만, 되려 강릉의 가뭄을 더 걱정해 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뭉클함과 한때 나도 저들과 같은 소방관이었던 것이 정말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동참한 소방동우회(퇴직소방관들의 친목봉사단체) 회원들과 전국소방동원령이 발령된 날부터 지금까지 홍제정수장에서 소방차의 주차 위치 안내, 호수 압력 조절, 그리고 주변 안전확보 임무를 맡아 소방관들이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고 안전하게 임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 얼굴은 까맣게 타들어 갔고, 옷은 땀으로 소금꽃이 피었지만, 그래도 우리 고장과 소방관 후배들을 위해 무어라도 할 수 있어 기분만은 상쾌했다. 또 소방관후배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다시 소방관이 된 듯한 느낌도 들어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강원도 각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했던 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이번 자원봉사는 여러 가지로 나에게는 선물이 되었다.
지금도 현장에는 소방차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급수차들도 함께 힘을 보태고 있고, 강릉의 취수원인 오봉댐에도 수많은 급수차와 군부대 차량까지 동원되어 조금이라도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실 소방관들과 민, 관, 군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가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투에 시민들이 물절약으로 동참한다면, 비가 오는 그날까지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 섞인 기대를 해본다. 다만 그들이 지치지 않을 때까지 꼭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5일 연속으로 10시간 정도 일하고 나니 너무 지쳐 글을 쓴다는 핑계로 오늘 하루는 쉬기로 했다.
평범한 일상이 너무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뭄과의 사투를 벌이며 메마른 강릉을 적시고 있는 모든 분들의 노력이 하늘에 전해 졌으면 좋겠다.
인간들의 과오에 대한 하늘의 경고가 무섭다.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도 더 두렵다.
※ 홍제 정수장 급수는 아침 8시에 시작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 지속됩니다. 전국에서 기꺼이 와준 소방관들과 급수차량,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 군인, 자원봉사자와 절수에 동참하는 강릉시민, 생수를 지원해주시고 있는 전국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자원봉사 관계로 다음 주는 한번 쉬었다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