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으로 미루고 미루다 12월이 되어서야 받은 건강검진, 드디어 그 결과가 도착했다. 은퇴 후 60대가 되어 받은 첫 건강검진이기에 아무 탈 없었으면 하는 기원을 하며 긴장 속에 우편물을 개봉했다.결과는 우려했던 혈압이 높게 나와서 추가 진단을 받아 보라는 것과 위장에 헬리코닥터 균이 감염되어 염증이 있다는 것 외 당뇨나 그 밖의 건강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나와 있어 걱정했던 만큼 심각한 결과가 아니어서 그나마 위안을 삼아 본다.
사실 이전에는 건강만큼은 자신하며 나이 들면 대부분 복용한다는 혈압이나 당뇨약을 아직 먹지 않는 것에 자부심도 살짝 있었는데 이제 그 한 가지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제 몸이 늙어 가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내년 한 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관리도 잘하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생각도 살짝 해본다.
사실 건강검진 항목 외에도 작년부터 안구에 비문증이 생겨 치료 중이기도 하고 허리통증도 주기적으로 찾아와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이미 실감 중이기도 하다. 20세 때 맹장 수술을 받은 적 외에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한 육체였는데 나이라는 녀석에게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술을 줄여라, 소식해라, 채소를 많이 먹어라, 운동해라, 스트레스를 줄여라 등등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상식들 중에 운동하는 것 외에는 현재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운동하는 것을 핑계로 나머지는 무시해도 된다는 착각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그래도 아무튼 올 한 해도 그럭저럭 큰 병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 내 몸에 대한 감사와 조금의 위안이 되긴 하지만 내년이 되어 예전 같으면 노인이라 불렸을 61세가 되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병마가 불쑥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미리 찾아온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새해의 기원에는 다른 것보다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한다. 작심 3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술을 줄이고 야채를 많이 섭취하는 것부터 실천해 나가고 스트레스를 줄이려 일부러 애쓰기보다는 조금 더 너그럽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마음을 먹어 본다.
또 한편으로는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의 끝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다가 옮을 잘 알고 있기에 건강만을 위해 혹독하게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적당한 건강관리와 적당한 불량스러운 삶을 함께 하며 느닷없이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웃으며 가는 삶을 살고 싶다. 사실 그날이 좀 일찍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가슴에 품고 살기는 한다.
"이제야 좀 살만하답니다. 좀 천천히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12월29일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179분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