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이다.
내 생에 첫 떡볶이를(학교 앞) 만났을 때이다.
너무 매워서 땀범벅이에 눈은 충혈되고
차가운 물로 달궈진 혀를 달래 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미처 다 먹지도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뭐 이런 걸 다 먹나 하고 집으로 향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 맛본 학교 앞 떡볶이는
집에서 엄마가 해준 것과는 달랐다.
엄마처럼 내 입맛에 맞춰서 만들어지지 않은
한번 덤벼볼 테면 덤벼봐라는 식의 매운 양념이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떡볶이의 틀을 과감히
깨부숴버렸다.
그날 저녁 자려고 누웠는데 왜? 왜? 왜?
아까 맛봤던 떡볶이가 자꾸 생각나는 걸까?
보고 싶다. 느끼고 싶다. 다시 먹어보고 싶다.
이상한 감정이었다.분명 나에게 매운 고통을 준
그 떡볶이인데 다시 먹어보고 싶다니;;;;;;;;;;;
그렇게 떡볶이는 세상의 단맛 쓴맛 매운맛을
다 경험하고 인생의 중반기에 접어든 나에게
아직까지도 최애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아주 맵게 먹는 걸 좋아한다.
첫사랑은 나에게 떡볶이였다
중학교 1학년 교회 신입생환영회 때였다.
3학년 임원 형, 누나들이 인사를 하고 2학년들도
인사를 하고 우리 1학년들도 인사를 했다.
태어나서 그렇게 환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궁금증이 들었다. 중학교1학년 올라온 게 이렇게
환영받을 일인가? 무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처음 프로그램으로 수호천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마니또!)
붉은색 벨벳 소재 커튼을 잘라서 만든 거 같은
둥그스름한 헌금바구니에 종이들이 듬뿍 담겨 있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뽑으란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왔다. 근데 왜 떨리냐?
나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와중에 눈치 없는 내 손은 이미 내 옆을 지나가버린
헌금함에서 4분의 1 분할로 접혀있는 종이를 손에 쥔 상태였다. 4분의 1에서 한 번을 펼치니 2분의 1이 (절반)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접혀있던 종이를
펼쳤다
`정수현`
이름 세 글자를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다.
왜 가슴이 뛸까? 란 생각을 하며 옆에 있던
3학년 누나에게 물어봤다
`누나 이분이 누구예요?`
1학년이어서 친절하게 대답을 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아 수현이? 쟤야!`
하고 검지손가락으로 앞에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3학년 형, 누나들 중 한 누나를 가리켰다.
`아 네 감사합.....;;;;;;'''ㅇㄹ흠앪냉레ㅐㅐㅇ내ㅑㅁ랩ㄷㄹ뎝ㅎㄷㅂㄱㄷ랴ㅐ대랩ㄷ쟈ㅁㄴ알ㄴㄹㄴㅇㄹ맨ㅇ랴ㅐㅂ재ㅑ루내ㅜㅇ래ㅑㅜ랩두래ㅕㅂㄷㄱ렫북렫구ㅜㅎ두핻ㄱ부매넡ㅎ재브뉴오댜대ㅐ지쥬ㅇ랴ㅓ`
오타가 아니다 짧은 순간 내 느낌이다
아까 이름을 보고 뛰던 가슴은 세발의 피였다.
이미 심장은 밖으로 탈출해서 운동장을 뛰고 있었고
머리는 안드로메다로 출발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 몸은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땐 정확히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안다.
! ! ! 첫 눈 에 반 했 다 ! ! !
주위에 모든 빛은 수현누나를 비추고 있었고
나의 달팽이관 주파수는 누나의 목소리만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 눈은 자기 복제를 거듭하며 누나가 옆에
있건 뒤에 있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어디에 있건
360도 감시체제로 접어든 상태였다.
`야! 야! 야!`
친구가 불렀다
`어???!! 왜??`
`뭐 해? 저기 너 자리로 가!`
뒤늦게 머리통을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들 바깥쪽 큰 원 안쪽 작은 원을 만들고 있었다.
1학년과의 대화란다. 안쪽 원은 1학년들만 있었고
바깥쪽 원은 2, 3학년들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차차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대화를 하고 오른쪽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심장과 육체와 정신이 분리가 되어 있었다.
분명히 앞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육체가 알아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었고
내 정신은 저쪽 몇 번째 전에 있는 수현누나와의
만남순서를 체크!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며
뛰는 가슴을 안정시키기 위해 처절히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시간이 흘러 바로 전전순서에 누나가 와있었다. 시간을 멈추고 싶다. 그냥 돌리고 싶다.
얘기하고 싶지 않다. 지나쳐버렸으면 좋겠다
그냥 날 모른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억이 없다.
정신이 들었을 땐 누나는 이미 나를 지나쳐버린 상태였고 무슨 인사를 한 기억은 흐릿하게 나는 거 같은데
그 후로는 기억이 안 난다 내 바람이 이루어졌나 보다
눈치 없이 말이다! ㅜㅠ
그렇게 내 첫사랑이자 6년간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수호천사를 진행하고 마지막주 일요일에 발표를 한다고 했다.
이런 걸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근데 알아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미 누나가 내 주위에 있는 순간이면 난 삼단분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은 운동장으로 머리는 안드로메다로 육체는 돌덩이로...)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마지막주 일요일이 되었고 꽃집을 하는 엄마한테 남자답게 꽃다발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다. (아주 박력 있었다!)
그땐 미처 몰랐다 난 지금 시대 방식으로 인프제(INFJ)였고 그때 방식으론 AAA(트리플 A형) 형이어서 전달하는 거 조차 힘들다는 것을..
당연히 수호천사 짝을 발표한 순간에도 끝난 순간에도 꽃다발은 교회 입구 구석에 숨겨놓은 그대로 있었다.
남자로 태어났는데 왜? 용기가 없지? 그냥 `누나가 내 마니또예요! 이건 선물입니다.` 하고 건네주면 되는데 왜왜왜???모임이 끝난 후 3학년 회장을 하고 있던 우리 친형한테 부탁해서 전달해 달라고 했다.
잘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피드백이 없었다. 내 기억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희로애락을 초단위로 느낀 순간이었다.
그게 끝이다. 그냥 6년 짝사랑하다 끝났다.
아이러니 한건 시간이 흘러 나는 교회의 중추적인
학생이 되었고 회장도 하며 말 그대로 교회의 인싸가 되었지만 오직 수현누나와만 친해지지 못했다.
그냥 인사하려고 다가오기만 해도 이미 삼단분리!!!! (이놈의 삼단분리 때문에 미치겠다.)
그때의 3학년 형, 누나들은 교회에서도 나랑 제일 친한 학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현누나랑만 절대 절대 친해질 수 없었다.
그렇게 6년이 흐르고 서서히 멀어졌다.
나에게 첫사랑은 떡볶이였다.
온몸이 경직되며 머릿속은 이미 백지가 되었고
떨리며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오로지 자리를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근데 차라리 떡볶이가 낫다.
떡볶이는 내가 제일로 좋아하면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고 늘 그 자리에 있다.
지금도 원하면 떡볶이를 배달해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수현누나는 지금도 안 친하다.
누나를 아주 가끔 본다. 결혼식장에서 장례식장에서.. 물론 지금은 삼단분리는 안된다. 그렇지만 딱히 할 말이 없다. 어색하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아마 누나는 지금도 모를 것이다.
내 첫사랑이자 짝사랑 6년의 상대였다는 걸..
첫사랑 보다 떡볶이가 낫다.
하지만 첫사랑과 떡볶이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첫사랑을 선택하겠다. 첫사랑으로 인해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이 유독 아름다웠고 빛났다.
남들은 해보지도 못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을
첫눈에 반하는 행위를 난 해봤다.
그것도 첫사랑으로 말이다.
난 인프제(INFJ)이다.
그말인즉슥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지금도 이불속에서 잠을 청할 때
그때 일이 생각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불킥을 날린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고백이라도 한번 해볼걸 그랬다고..
하지만 안 하길 잘했다.
아마 백번이면 백번 다 차였을 것이다.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거절이라는 상실감으로
수치심으로 남아 있었다면 평생 이불킥을 날려도 모자랐을 것이다.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다시 만나면 그 환상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어느 부분 수긍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마지막으로 첫사랑이 있기에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지금의 내 사랑이 있을 수 있었다.
소중한 내 첫사랑은 나에게 지금도 가끔씩 이불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