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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저자 정세랑 / 출판 문학동네 / 발행 2020.06

by 큰구름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한국문학이 당도한 올곧은 따스함, 정세랑 신작 장편소설


독창적인 목소리와 세계관으로 구축한 SF소설부터 우리 시대의 현실에 단단히 발 딛고 나아가는 이야기들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로 우리에게 늘 새로운 놀라움을 선사했던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이경미 감독, 정유미 주연)과, SM에서 제작 중인 케이팝 드라마 〈일루미네이션〉의 각본을 집필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그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로 돌아왔다. 『시선으로부터,』는 구상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대작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피프티 피플』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신작 장편소설이다. 『시선으로부터,』는 올해 3월 오픈한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3개월간 연재되었으며, 〈주간 문학동네〉 연재 후 출간되는 첫 소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순종하지 않았던 심시선과 그에게서 모계로 이어지는 여성 중심의 삼대 이야기이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심시선과, 20세기의 막바지를 살아낸 시선의 딸 명혜, 명은,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손녀 화수와 우윤. 심시선에게서 뻗어 나온 여성들의 삶은 우리에게 가능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협력업체 사장이 자행한 테러에 움츠러들었던 화수는 세상의 일그러지고 오염된 면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한다. 해림은 친구에게 가해진 인종차별 발언에 대신 화를 내다가 괴롭힘을 당했지만 후회하거나 굴하지 않는다. 경아는 무난한 자질을 가지고도 오래 견디는 여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뒤따라오는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


★ 4.5


∎읽은 소감

가족, 하와이, 추모 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들이 연결되어 가족들의 이야기를 편다는 것이 독특했다. 할머니의 시선으로 시작해서 가족 개개인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진행되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작가가 쓰면서 머리 좀 아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은 할머니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할머니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초등학교 손주의 시선까지 마무리되는 느낌 복합적인 느낌의 제목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문장

P.326

어쨌든 나는 이제 그만 말해야겠습니다. 내게 오는 말한 기회를 이제 젊은 사람에게 주십시오 어차피 세상에 대해 할 말은 다 했고 앞으로의 세상은 내가 살아갈 세상이 아닐 테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다음 사람이 또 나처럼 화살을 맞고 싸움에 휘말리고 끝없이 오해받을 걸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신경줄이 너무 가늘지만 않으면 할 수 있어요 맞는 말도 제법 했고 틀린 말도 적잖이 할 것 같은데 내가 멈추면 다음 사람이 또 맞는 말과 틀린 말을 섞어하겠지요 이제 나의 남은 말들은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람들하고만 쓸 겁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전화해요 그만 불러요 오늘은 작별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이유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겪어내며 마지막 삶의 끝자락에서 진정한 삶을 알아낸 듯 토해내는 시선의 이 말은 오늘을 사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 사회에 시선의 시선을 빌려 작가 본인이 하려는 말 또한 임팩트 있게 울린다.

진정한 어른이란 이런 사람이 아닐까? 자신보다 이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사람..


논제 1.

젊은 시절 타의로 하와이로 유럽으로 다시 한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다니며 녹록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 심시선여사. 여러 상처받는 일들로 인해 사랑했던 그림을 딱 끊어버리고 토해내듯 자신의 과거의 이들과 생각을 글로 쓰며 독특한 인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낯선 이국 땅에서 어리고 동양인이고 여자라는 이유로 받았던 차별과 불합리함.

그녀가 겪어낸 인생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심시선 여사의 일대기 중 재미있었던 건 그의 실제 삶과 대중에게 알려진 삶이 다르다는 것과 사실을 밝혀낼 생각은 없이 그냥 유명인의 삶의 잔재들을 찾아내 이야깃거리로 만들려는 그런 스토리들이 흥미로웠고 또한 공감이 되었습니다. 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탄압의 중심인 세상에서 버티며 자신의 길을 시끄럽게 소란스럽게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간 심시선여사가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제 2.

하와이에서 심시선 여사의 10주기를 지내기로 한 가족들

심시선의 인터뷰나 심시선이 쓴 글에서 독자들에게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인물마다 뚜렷한 개성과 독특함을 가지고 있고 아픔과 사정이 있어서 읽는 동안 흥미롭고 즐거웠다. 가족들 중 어떤 이의 이야기가 가장 눈길이 가고 공감이 갔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첫 장부터 가족관계도가 나와서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읽는 내내 그 첫 장을 표시해 두고 수시로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불편한 관계의 내용을 작가의 배려로 한결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복잡해서 중간지점이 지나서야 비로소 첫 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제일 공감이 가고 눈길이 가는 가족은 딱 심시선 여사였습니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심시선 여사의 글과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무엇보다 각 장 첫 단락을 여사의 이야기로 배치한 작가의 의도가 저에게는 재미있었습니다.

그가 겪었던 시대의 불합리와 사람이 악독함을 이겨내며 스스로 강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심시선 여사의 삶이 비록 허구이지만 그 당시를 지키며 이겨내 주었던 많은 조상들을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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