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성장 일기
학원 신입생의 표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도살장에 끌려 온 소였다면 지었을법한 표정의 아이. 그 속마음을 전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아이. 마지막으로 환하게 미소 짓는 아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렇다면 좋겠지만 십중팔구는 절대 아니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 마주치는 아기들은 내 미소에 대성통곡으로 답을 한다. 첫 만남에 미소 짓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에게 감추기 위함이다.
그 아이도 그랬다. 환하게 웃는 표정의 ‘훈훈함’ 그 자체의 고2 남학생이었다.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생이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첫날 수업이 모두 끝나고 전화로 상담을 진행했다.
먼저 어머니와 통화를 진행해서 첫 수업의 반응을 살폈다. 수업 내용이 이해가 잘되었고 선생님들도 친절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아이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오늘 힘든 부분은 없었어?’
‘없었어요.’
‘수업 같이 듣는 아이들 중에 친구는 없어?’
‘하나도요.’
‘이런. 좀 외롭겠다. 언제든 힘든 게 있으면 샘한테 얘기해.’
상담일지에 ‘특이사항 없음’이라고 쓰고, 그 아이와의 첫 상담을 마무리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아이의 미소는 변함없었고, 상담일지의 ‘특이사항 없음’도 그랬다.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느라 매일매일 학원에서 새벽 1시까지, 일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고된 학원 생활에도 그 미소는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과정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성적도 대거 향상되었다.
그러던 10월 중순의 월요일, 미소 지으며 교실에 들어오던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제 민기가..... 죽었어요.’
믿기지 않았다. 지난주까지 매일 얼굴을 보던 친구가 죽다니. 무슨 정신으로 수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수업을 끝내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나에게 슬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현실과 괴리된 딴 세상의 감정이랄까. 도무지 현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극히 그런 감정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이 장례식장으로 향할수록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들었다. 두려웠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그 아이는 늘 내게 보여줬던 그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그렇게 그 아이와 작별을 고했다.
아이는 그날 아침에 아파트 화단에서 경비원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인은 추락사.
아이 방에는 술병과 구토의 흔적이 있었고, 창문이 열려있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이가 창문을 열고 구토를 하다가 추락한 건 아닌지 생각하셨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더 이상 여쭈어볼 수는 없었다.
25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있어서는 안 되었을 유일한 아이의 죽음이었다. 나는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그 아이에 대해서 과연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상담일지의 ‘특이사항 없음’은 나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었다. 미소 속에 숨겨 있던 그 아이의 깊은 고뇌와 슬픔을 나는 그냥 외면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질문하곤 한다. ‘힘든 거 없지?’ ‘다 알지?’
이 두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답을 정해 놓고 질문한다는 것. 즉, 힘든 것이 없다는, 다 안다는 전제에서 질문을 한다는 것.
그렇게 물었어야 했다. ‘힘든 거 있지?’ ‘다 모르지?’ 그러면 그제야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실 힘든 거 있어요.’ ‘샘, 잘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문제 해결을 위한 두 사람의 대화가 이뤄졌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더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아이의 죽음 이후 나는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힘든 거 있지?’ ‘다 모르지?’
작년에 이태원참사가 났다. 10월 29일. 무고한 젊은이들, 고등학생의 죽음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민기가 떠올랐다.
제목: 단풍이 지다-이화재
너를 피우기 위해 햇빛과 바람과 땅이 한 마음으로 기도했으리라
어찌 그리 당당한 자태로 내 마음을 현혹시키는가
어느새 서럽도록 붉게 타올랐던 생명의 절정을 뒤로한 채
바람에 기대어 하나 둘 너를 떨군다
올해 유난히 고왔던 너는
사무치도록 그립게 내 기억 속에 머문다
2022년 10월 29일
붉은 단풍처럼 아름다운 청춘들이 그렇게 졌다.
아픔 없는 저 위에서는 영원히 시들지 마라
슬픔은 우리 몫이니 너희는 아픔 없는 그곳에서 행복해라
Tip 힘들어 보이는 자녀 판별법:
‘너 요새 힘든 거 없니?’라고 묻지 말고 ‘너 요새 힘든 거 있지?’라고 물으세요.
그 질문에 움찔한다면 그 아이는 지금 분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