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분수에 맞는 옷 판별 법

예전엔 남들 사는 거 다 샀었지..

by 파이어파파

3월의 어느 날, 매장을 쉴 때 아내와 함께 데이트를 나섰다.


오랜만에 아울렛에 가보니 가지런히 잘 진열된 옷들.. 깨끗하고 선명한 색감의 옷들을 보니 이뻐 보이고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다 ㅎㅎ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가서 옷이 이쁜지 나에게 어울리는지 보는 게 아니라 우리는 옷을 뒤적이며 무엇인가를 빠르게 찾고 있다. 그렇다. 바로 '가격택'이다. 우리는 옷이 이쁘기보다 일단 가격이 중요하다. 너무 비싸면 이거 너무 비싸다고 안 살 수 있는 합리화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저번에 자라매장에서 봐뒀던 오버핏 가디건이 생각났었는데 또 한동안 잊고 살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런데 8 Seconds 매장을 가보니 비슷한 색감의 니트가 있었다.


- 가격은 59,900원



저번 자라 꺼 니트가 단추가 있지만 가격은 99,000원. 이 모델은 단추는 없지만 그래도 자라보다 4만 원이나 싸다며 일단 가격에서 합격!을 외치며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입어보는데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니트가 산지 몇 년 된 지 기억도 안 난다. 6년 정도 됐으려나.. 지금 나를 감싸고 있던 니트도 처음엔 예뻤는데 어느새 빨아도 빨아도 꼬질꼬질한 느낌이 새 옷과 비교하니 차이가 많이 났다.


탈의실에서 피팅하고 보니까


'음.. 새 옷이 좋긴 좋군'


아내가 사준다고 하여 구매했다. 사실 사면서도 최근엔 물욕이 많이 사라진 터라 고민을 조금 했다. 이제는 물건이 약 300% 정도 내 마음에 쏙! 들어야 집에 가서도 잘 입기 때문에 고민했지만 결국 집어 들었다. 그렇다, 이제 내 것이 되었다.


과거엔 (분수에 맞지 않는 비싼) 옷을 진짜 막 샀었다. 신입사원 입문 교육 때 다음날 등산 산행이 있는데 등산복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명동 롯데백화점 가서 블랙야크 바람막이 48만 원에 구매해서 입고 간적도 있었다.


상상이 가는가? 아울렛에서 10만 원 대면 사는 그 바람막이를 말이다..


대학생 땐 무조건 서울 메인 입지에 있는 백화점 가서 브랜드 매장에서만 옷을 사기도 했었다.




별도의 마음 다스리기나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물욕이 바로 사그라들진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품위에 맞는 옷, 사회적 지위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아내에게 입에 달며 살았다. 한창 이사도 했고 새 차도 뽑고 과장 진급도 했을 즈음인 것 같다. 그때 회사에서 성과급이 나왔었다. 아내에게 겨울 아우터는 자고로 좋은 게 있어야 오래 입고 그 값어치를 한다며 아내 패딩을 사준다고 여기저기 다녔던 것이 기억난다.


- 몽클레어 매장에 가서 입혀보고


- 몽클레어 아울렛 매장에 가서 입혀보고


- 다른 명품 매장 가서 입어보고


결국 고민고민하다 버버리에서 패딩을 사기로 하여 사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왼팔에 4선 견장이 들어가 있는 톰브라운 일명 '땀브 가디건'이 사고 싶다며 100만 원이 넘은 옷을 입어보고 돌아다니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라니..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를 새삼 느낀다.




그렇게 니트를 구매하고 아울렛을 다녀온 뒤 아이들이 하원하여 놀아주는데 애들이 천혜향 묻은 손으로 내 오래된 니트에 닦고 문지르고 난리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 이 옷은 이미 오래되었기도 했고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 이쯤에서 내 분수에 맞는 옷 판별법을 소개드리고자 한다.


: 만일 자신이 비싸거나 명품 옷을 입고 아이들이랑 놀다가 과일을 묻히거나 더럽혔을 때 화를 전혀 안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옷이라 생각한다.


명품옷이 '이게 얼마짜린데!' 더럽혀졌다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면 그건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옷이 아닌 것이다. 심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말이다. 지금은 나에겐 저런류의 옷이 전혀 필요없다. 그저 매장에서 고객들과 어울릴 편안한 옷이면 그만이다.


고마워 여보 잘 입을게





오래전 아내에게 사준 명품백이 아직도 판매가 되고 있는데 판매가가 산 가격의 두 배가 됐네요. 계속 오르니까 그럼 지금이라도 사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안 사야 하는 걸까요? 인간의 심리를 무척 자극하는 판매전략들.. 그걸 그저 한 발자국만 물러서서 바라보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22년11월, 11년 다닌 직장을 제 발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