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단길 이후로 정말 전국 각지에 많은 리단길들이 생겼다. 지금은 폭삭 죽어버린 경리단길이지만 그 이후로 전국 각지 모든 골목 곳곳에 상점만 들어서면 일단 '~리단길'로 만들고 본다. 그야말로 파급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3년 가을 우리 매장 정기 휴무일에 또다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진짜 최근에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다 보니 '그냥 쉴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아까워 일단 잠실 롯데타워로 향했다. 새로 나온 옷들도 구경하고 새로운 입점 브랜드 등을 살펴보며 시간을 보냈다. 머리도 식힐 겸 우리 부부는 식사를 하고 석촌호수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 : "여보, 그때 잠실 송리단길은 매장 차리기 어떤지 가보고 싶다 하지 않았어? 여기에서 멀지 않으면 한번 가볼까?
흔쾌히 아내도 OK하여 검색해 보니 오잉? 완전 코 앞이었다. 그러니까 롯데타워에서 석촌호수의 맞은편의 주택가가 송리단길이었던 것이다. 평일 점심시간 즈음이었다. 일단 메인길로 향해 둘러보았다. 요즘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좀 모이는 곳에는 꼭 있는 무인사진관들이 꽤나 있었다. 이걸로 일단 단서를 수집했다. 신기하게도 여기엔 타로라든지, 사주를 보는 곳들이 은근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 카페들, 유명한 베이커리 등이 일부 있었다.
메인길의 초입부터 끝까지 걸어본 뒤에 메인길을 중심으로 가로로 뻗어있는 곳 중 상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곳들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우리가 찾는 대략 10평대의 상가가 메인길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부동산 사장님께서 일단 현재 메인길은 나와있는 매물이 크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최대한 메인길과 가까운 곳엔 어떤 매장이 있는지 물어보았고 총 2곳의 매물을 확인했다.
일단 첫 번째 매장은 약 10평이고 임대료는 1백만원 중반이며 (관리비 별도) 권리금이 6,000만원인 곳이었다. 그런데 권리금이 있는데 그 가게는 지금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그걸 본 순간 희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곳에서 장사도하고 있지 않고 온갖 집기는 다 빼서 다른 데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데 (검색해 보니 그렇더라) 이곳 매장은 비어있는데 권리금을 적지도 않은 금액을 제시해 둔 것이 참 묘했다.
- 항상 내가 파는 사람일 땐, 사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 매장도 비워져 있는데 '권리금'을 달라고 하면 계약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 권리금을 주고 싶을까? 주고 싶지도 않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뻔히 나온다. 가끔 그러면 '이곳은 원래 다 바닥 권리가 있는 곳이에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 역시 당연히 바닥권리금을 말하는 것이며 다만 지금 현재 임차인이 영업을 하고 있을 경우에만 그 바닥 권리금을 나는 인정한다.
내가 장사하는 주변만 봐도 다음 계약 만기까지 밀리고 밀려 콧대 높던 권리금이 깎이고 깎여 푹 꺼진 가격으로 그거라도 받고 나가자는 사장도 봤고, 자신이 쓰면 매장을 두 개로 쪼개서 하나의 매장에 대한 권리금만 받고 나간 경우도 봤다. 결국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가치(권리금)는 없는 것이다.
일단 좀 거품을 물었으나, 내가 왜 이렇게까지 거품을 무는 지 나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는 누구도 사기라고 말하지 않는 '진짜 사기'를 당하지 말라는 바람에서 그런 것이며 둘째는 내가 그곳의 가치를 그 정도로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 두 번째 매물을 보러 이동했다. 이곳은 더 골목 후미진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월세가 더 비쌌다. 월세는 1백만 원 후반대였고 (관리비 별도) 권리금이 6,500만원 이었으며 현재 장사를 하고 계셨다. 매장에 손님이 있진 않아서 내부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결과는? 그런 골목 같은 곳에 나는 그만한 돈을 지불할 용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잘 보고 나왔을 뿐이다.
메인길은 권리금이 기본 억대로 넘어가며 월세도 평당 30만 원까진 아니어도 거의 그에 준하는 수준의 월세부담이 있는 곳이다. 저 정도 월세면 조금만 더 보태면 어지간한 서울의 번화가 월세라고 보면 된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월세가 있는 곳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엔 더욱 망설여졌던 것 같다. 이곳을 할바엔... 다른 너무나도 좋은 곳들이 눈에 아른 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동산 사장님께 혹시라도 추가로 매물이 나오면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송리단길 임장은 마쳤다.
일단 현장에서 본 느낌은, '한낮 상권'은 아니다였다. 주말과 평일 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낮에도 사람이 꽤나 다니면서 상권이 살아있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만일 진짜 이곳에서 장사를 하겠다면 애당초 이 송리단길이 누구에 의해, 무엇 때문에 떴는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때 잠시 떴다가 지는 해는 아닐지 체크해야 할 사항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 왜 여기엔 사람이 적은가? 모두 다 롯데월드몰에 있다. 롯데월드몰에 온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송리단길' 다음 코스로 찾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타깃이 다르다. 송리단길은 롯데월드몰 식당가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기 때문에 젊은 연인들이 송파나루 역에서 내려 이곳에 특색 있는 무엇인가를 먹으러, 무엇인가를 하러 소위 '인스타'에서 보고 찾아가는 곳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곳은 상당한 고생을 할 수도 있다. - 롯데월드+월드몰이라는 극강의 경쟁자가 평생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나는 지금 한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내가 있는 곳의 권리금과 월세 시세, 유동인구 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다. 그랬을 때 이 권리금이 들어가서 수익도 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업을 처음 한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럴 땐 정말 미친 듯이 내가 점찍어 둔 곳들을 계속 찾아보고 돌아다니며 시세를 잘 파악해야 한다.
3. 저녁 음식점과 술집은 그나마 괜찮은 상권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아닌 낮에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찾으러 다니는 사람을 타깃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엔 업종을 잘 따져봐야 한다.
이번 임장도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없지만 이렇게 하나의 기록을 또 쌓아갔다. 임장을 다니면서 매물을 보고 나면 반드시 주소지, 권리금, 월세, 보증금, 관리비, 임장 일자, 현재 업종, 특이사항, 현장 분위기 등을 반드시 메모하고 기록을 저장해 두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처음 두세 번까지는 기억에 의존하여 '아~ 저기보다 낫네.' '그때 월세보다 00만원 저렴하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차츰차츰 지날수록 기억은 가물가물 해진다.
인간은 한번 본 것의 약 80%를 하루가 지나면 잊어버린다. 반드시 메모를 해두고 비교하는데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은데 장사를 왜 하려고 하냐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건 내가 회사에 있을 때도 그랬고 작년 창업을 할 때도 '이 시국에.. 이 코로나 시대에' 라는 말만 했다. 다 그런 것이다. 힘든 시기에서도 부자는 탄생하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나온다. 결국 '실행'이 답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실행만 한다고 다 성공하지도 않으며 아는 것이 많다 하더라도 두려움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그저 현재와 같은 삶만 반복될 뿐이다.
어려우면 공부하고 일이 너무 크면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결국 다 이뤄내게 된다. 나 역시 언젠가 2번째 매장, 그리고 그 뒤로 내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매장을 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임장을 다니는 것들이 당장 무의미하다고 보일수 있어도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