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삶-방식
어릴 때에는 여행을 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집에서도, 우리 동네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과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고,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또 무엇을 봐야 하며, 이것을 먹어보고 저것을 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부산함이 부담스럽고 귀찮았다. 나는 집에서, 동네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며 장난을 치거나, 문제를 푸는 것이 더 재미있었고, 그것은 여행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최근에는 다르게 느낀다. 근 2년 정도 사이에 일본, 동유럽, 미 서부, 탄자니아에 다녀왔는데, (물론 이동하고 여행지에서 돌아다닐 때에는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았다.
어릴 때의 여행은 경험으로 남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서 간 여행은 경험으로 남는다. 무엇이 다른가? 전자에서는 고향과 여행지에서의 삶-방식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고, 후자에서는 그 차이가 느껴졌다. 왜 그런가? 전자의 여행에서는 내가 책임자가 아니었고, 후자의 여행에서는 내가 책임자였다. 책임자라는게 무엇인가? 여행지에서는 문화가 다르고, 때로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방식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를 교환하여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일을 여행지에서 수행해야 하는 사람이 그 여행의 책임자이다.
여행의 책임자는 무사한 고향으로의 복귀를 위하여 (위험한 여행지라면 물론이고, 미국이나 - 요새 분위기를 보면 미국은 안전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 일본과 같이 안전한 여행지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여행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방식에 노출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고향에서 영위하던 삶-방식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것이라는 사실, 고향에서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던 것이 여행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집착하고 매몰되어 있던 가치관에서 빠져나온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으며, 가치관은 고정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곳에서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다보면 어떤 가치관이 필연적인 것처럼, 어떤 삶-방식이 필연적인 것처럼, 그래서 지금 붙들고 있는 가치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놓치면 세계가 끝날 것이라는 불안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살아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우리와 완전히 다른 주인공에 우리 자신을 대입하여 그 삶-방식을 체험하는 것처럼, 여행지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다른 유형의 삶-방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