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람 1. 외향적인 사람
며칠 전, 한 7년 전 썼던 취준생 시절의 자소서를 보다가 풉 하고 웃었다. 대학시절의 어떤 활동이 나의 성향을 “외향적인 성향”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써 놓은 것이다. 그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여전히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점이기도 했고,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기업에 맞추려고 적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어디서 이런 거짓말을…’ 하고 웃었지만, 그 시절에도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스스로가 가여워서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내향성(내성적) 70%, 외향성 30%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즈음까지 나는 친구들과 편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적당히 까불고 장난치고 놀며 외향적인 성향을 드러냈지만 앞에 나서거나 제일 먼저 발표를 하거나 그 외 드러내야 하는 순간에는 선뜻 내켜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외향성이 조금씩 더 줄어들어서 내가 맡은 역할에 대한 적극성과 책임감은 다 하되, 추가로 나서거나 크게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생각해보면 원래의 성향에 사춘기가 한몫을 보태지 않았나 싶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모습에 따라 외향의 탈을 썼다가 벗었다 할 수는 있다. 그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가진 고유한 성향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가는 중이지만, 그 받아들임도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나는 내향적인 나의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좋아하지 않는 것 이상으로, 나는 내가 내향적인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자존감을 갉아 내리는 것 같아서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내가 내향적인 것을 왜 싫어할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얽힌 감정을 해결하려면 원인을 알아야만 했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과거로 돌아갔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엄마가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선생님이 반장을 시켰는데 그 자리에서 반장 하기 싫다고 울었다고 했고, 또 언제는 연극을 하라고 배역을 주었더니 앞에 나가기 싫어서 안 한다고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주어진 기회들을 스스로 놓은 적이 많다고 했다. 지금의 엄마 성격을 생각하면 매칭이 잘 안 되는 에피소드들이지만 당시에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들어가면서 당시 형이라 불리던 복학생 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외향적인 성격으로 차츰 변한 것 같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렇게 내향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성격 때문에 본인이 기회를 놓친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나의 내향적인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하는 티를 종종 냈다. 꾸지람은 아니었지만, 나의 내성(내향)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 00 이가 좀 더 앞에 나섰으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딸이 자신처럼 성향과 성격 때문에 오는 기회들을 잡지 못하는 것이 싫었던 부모님의 마음, 너 잘되라고 했던 말이 분명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순간마다 내가 가진 고유의 성향인 이 내향적이고 내성적인 것들을 “나쁜 성격”으로 정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성장하면서 남들 앞에 박차고 나서는 걸 못하고 난 이후에는 자책을 하기도 했고, 외향적인 성격의 친구들을 너무나도 부러워했다. 여전히 나서기 싫은데, 나서지 않고 나면 스스로 바보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에 큰 장애물이 된다. 내가 가진 이 내향적이고도 내성적인 성격이 좋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나를 부정하고 칭찬해주지 않았으며,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가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문득문득, 자존감이 모래성처럼 깎여 내려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다. 엄마는 놀랐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자신의 전처를 밟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하며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내향적인 성격은 나쁜 게 아니야 엄마.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지, 막 나서지 않아도 내가 갖고 싶은 기회는 가질 수 있어, 나도.” 하고 웃었다. 그 날 이후로 내 성향과 성격을 부정하는 마음들이 조금씩 사라져 갔고, 그렇게 내 고유한 성향을 조금씩 인정해 나갈 수 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삶의 모든 순간에 외향적인 사람이 부러웠지만, 그는 이제 부럽지 않은 유형이 되었다. 성향은 좋음과 나쁨으로 나눌 수 없고, 그저 다를 뿐이다. 외향적인 리더도 있고 내향적인 리더도 있다. 내향적이지만 그 성향이 바탕이 되어 드러내지 않을 뿐 일을 꼼꼼하게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 내향적인 성향인데, 부끄럽게 의견을 내놓지만 그녀의 아이디어는 늘 신박하고 크리에이티브해서 모두가 놀랬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성향은 어떤 일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아주 긴 내적 갈등과 내적 방황 끝에 그저 이렇게 결론을 매듭지었다. 그렇게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내 성향을 인정하며 사라졌던 자존감을 계속 채워가는 중이다.
“그러니 엄마,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