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람 2. 실수에 의연한 사람
얼마 전 있었던 면접에서 일할 때의 성향을 질문받았다.
“네, 일을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실수하는 걸 싫어하는 편입니다.”
면접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여전히 그 답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을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실제 성향이기도 하고 준비해 간 답변이기도 하지만, “실수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은 실제 성향이긴 하지만 삶에서 덜어내고 싶은 부분이라서 준비해 간 답변은 아니었다. 준비해가지도 않은 답변이 불쑥 나온 것은 무의식의 반영이었을 것 같다. 실수하는 걸 싫어하는 성향은(정확히 말하면 실수 이후의 나의 태도) 가장 고쳐나가고 싶은 부분이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은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를 아예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회사에서 만난 대표님도, 부장님도, 팀장님도, 후배도 가끔은 실수를 했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니어서일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실수에 대한 관대한 마음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그때 상황이 너에게 잘 맞지 않았나 보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럴 수도 있지~”하고 건넨 위로가 나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았다. “넌 왜 이런 걸 실수해?”. “너는 왜 이렇게 능력이 부족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어?”라는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쏘아댔다. 이러지 않기 위해서 인지, 사실 실수를 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은 어딘가 괴롭다.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한 위축된 마음은 계속해서 위축되어서 결국 내게 주어진 어떤 일을 잘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마음보다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최악이었다.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마음으로 시작하는 일들은 경직되어 있는 마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실수만 안 했을 뿐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결과를 가져오기 어려웠다. 경직된 마음은 생각의 확장을 크게 가져오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다가 초긴장한 마음 때문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니, 하나의 일이 끝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결과도 마음에 안 들고, 나도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실수에 의연한 동료가 너무 부러웠다.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돌아서는 그의 모습은 나와는 달리 의연해 보였다. 그의 속내를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주눅이 들어 보이지도, 속상해 보이지도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뒤, 실수에 대한 그의 심정을 조심스레 물었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책의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지만 “다음번에 그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이 나와 다른 점이었다.
실수를 하고 나면 “넌 왜 이런 걸 실수해?”를 시작으로 능력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끌어들여서 기어코 굴로 들어가는 나와는 달리, 그는 인정하되 다음번을 기약했다.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겠다, 이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웠다 라는 마음가짐이 그를 굴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한 번 더 도약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가짐은 훨씬 건강해 보였다. 이런 태도가 자존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연습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자존감의 영향도 있겠지만, 익숙한 사고의 패턴이 쉽게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면접 때 생각지도 못하게 불쑥 튀어나온 답변처럼 아직도 실수를 하면 굴로 들어가려는 성질이 관성의 법칙처럼 남아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도 굴로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 “다음번엔 그러지 않으면 돼. 이번 일로 다음번엔 더 나은 방향으로 해야 함을 배웠어”라고 생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실수뿐만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에도 같이 적용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심리상담가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의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수를 자책하기보다는 다음을 위한 자양분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세상이 어떻게 또 달라져 보일지 너무 궁금하다. 그 세상을 되도록 빨리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