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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Mar 29. 2021

울타리 안으로,그렇게 막 들어오게 하는 거 아니야

부러운 사람 3. 자기 울타리를 잘 지켜내는 사람

돌이켜보면 내가 이 지긋한 내면의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여러 관계 속에서 나를 지켜줄 최소한의 울타리를 지켜내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배려와 공감, 양보라는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했지만, 그건 나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운 나머지 생각했던 자기 합리화일 뿐이었다. 그 미덕은 대체 왜 남을 위해서만 했던 걸까? 


사적으로 친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직장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만난 사이도 마찬가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친구가 가끔 필터링 없이 말을 하거나 회사에서 누군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툴툴거린다. 그들은 그렇게 한 번씩 두 번씩 나의 울타리를 넘어온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왔을까. 친구의 말은 기분이 나쁘지만 그걸 콕 집고 넘어가면 친구가 머쓱 해 할까 넘겼고, 직장 동료의 태도가 기분이 나쁘지만 더 큰 언쟁이 싫어서 요구를 받아주었다. 내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기면서, 그들은 나의 울타리(애당초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한 번 들어오니 두 번은 더 쉬워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그렇게 한 발자국 씩 더 들어오려고 시작한다. 그걸 나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직 이 정도는 괜찮은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배려와 양보라는 미덕을 실천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돌아 서면 배려와 양보를 베푼 뿌듯한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영 속이 상한 것이 풀리질 않는다. 결국 이건 진정한 의미의 배려와 양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말 배려와 양보를 한 것이라면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 하는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 상황이 생각이 난다. 너의 말이 기분이 나쁘고, 너의 태도는 용납이 안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속상해서 잠들기 어려운 날들도 있었다. (이게 말 그대로 이불 킥이라는 것일까 … ㅠ)


타고난 기질과 성향 이야기를 하자면, 사람을 좋게 보려는 성향이 더 크다. 그래서 어떤 이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는 원인이 되는 걸까. 네가 이유가 있으니까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거겠지. 침범이 아니라, 그저 들어오려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는 걸까. 


울타리를 지켜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나에게 세상 친절한 친구도, 직장동료도, 가족들도 어느 순간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냉랭해질 때를 종종 본다. 바로 자기의 울타리를 침범하려는 사람들에게 선을 그을 때 그들의 말투와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울타리의 경계가 모호하고 쉽게 열리는 나에게 그들의 냉랭한 말투와 눈빛은 매우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건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자기 방어이다. 너무나도 착한 내 주위의 사람들도 그렇게 자기 울타리를 지켜나간다. 


이것들을 나는 너무도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사람을 좋게 보려는 성향, 자기 방어적인 모습을 인성과 연결 지었던 어리숙함은 누구든 내 감정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고 내 영역을 차지하게 했던 것이다. 울타리 안에서 설 자리를 잃은 나는 힘들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 본 적 없는 울타리를 지켜내는 과정이 아직도 어렵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승리해서 쫓아내기도 하지만, 어느 날엔 장렬히 패배하여 결국 울타리 문을 열어준다. 아직까진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점점 더 승률을 올려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 받은 상대방의 감정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그 역시, 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이와 격렬히 싸우고, 패배한 이를 동정하진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스물다섯쯤 알았으면 좋았으려나

나이를 한 두 살씩 먹어갈수록 세상 모든 일에 더 능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깨닫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는 바람에 새로 익혀야 할 것들이 투성이다. ‘울타리 지키기’도 깨닫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런 내 눈에 자기 울타리를 잘 지켜내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그건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처럼 하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어릴 때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의 간절함으로 내 울타리를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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