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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무비 1cm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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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트앤노이 Mar 02. 2019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화려하고 우아한 치정극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랍스터]는 어려웠던 영화였고, [킬링 디어]는 불편한 불쾌감이 가미된 블랙코미디 같았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그렇게 어렵지 않고, 불쾌감은 없어서 내 기준에는 재밌게 볼 수 있었다.(너무 어렵게 만드시면 이해하기 어려워요 ㅠ ㅠ ) 영화를 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함이나 불쾌한 기분을 느끼거나,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징이나 복선에 영화 보는 내내 속으로 ‘저건 뭐지, 이건 뭐지’ 생각하게 하는 게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특징이라면 이 영화는 그 특징을 조금은 내려놓은 듯한 영화인 것 같다.


2019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편집상까지 주요 부문에 모두 노미네이트 되었고, 최종적으로 올리비아 콜맨이라는 사랑스러운(!!) 여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화제작으로 다시금 떠오른 것 같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 상영관이 적어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못할까 봐 영화 시간대에 내 시간을 맞추며 보았었는데,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과 그들의 볼멘소리(적은 상영관에 대한)가 커졌으니, 지금부터라도 상영관을 좀 늘려서 길게 상영해주었으면 좋겠다.


17세기 영국의 스튜어트 왕가의 최후의 영국 여왕인 앤 여왕과 그녀 옆의 두 여인, 그녀들의 권력, 질투를 그린 화려하고 우아한 치정극으로 정의하고 싶다. 그리고 이 셋의 관계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사실에서 그려졌다는 점이 놀라웠다. (실제로 앤 여왕과 사라는 애인관계였을 것이라고 한다.)


**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앤, 그리고 올리비아 콜맨
출처 :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스틸 컷

히스테릭을 가진 여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앤 여왕. 오소리 같은 화장을 하고 어린아이처럼 나타나 오소리 같다는 사라의 말에 금세 시무룩해지고, 그 감정을 괜히 하인에게 풀어내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소유한 여자이다. 실제로 초반의 이 장면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첫 관문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아이 같기도 하고, 들쑥날쑥한 변덕스러운 감정을 지녔고,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고, 어딘가 감정적으로 결핍된 것 같기도 하고. 이후에도 그녀는 이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시종일관 보여 준다. 출산한 아이들을 모두 잃은 슬픔에서 비롯된 듯한 우울증은 당연히 곁을 지키는 사람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렇게 사라에게 의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 같기만 하던 여왕도 여왕은 여왕이구나 싶은 장면도 꽤 있다. 사라와 애비게일의 감정을 눈치채고 그 둘의 질투심을 이용하여 그것을 즐기는 모습이 그랬다. 어린아이와 나름의 지략가 같은 모습을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가 엄청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이런 캐릭터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연기한 그녀 올리비아 콜맨이 이번 아카데미의 여우주연상에 선정되었다.


2019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올리비아 콜맨

아카데미 시상식을 잠깐 생각해보면, 올리비아 콜맨은 메릴 스트립처럼 품위와 우아함, 지적이며 세련된 느낌일 것 같았는데, 수상소감을 하는 그녀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아마 본인의 수상을 예견하지 못하여 당황스러움에 그러한 모습이었을 수 있겠으나, 무거움과는 거리가 먼 동네 어딘가 빵집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소녀스러움을 가진 아주머니 같았다. �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이 어울린다. (레이디 가가까지 언급하는 모습 진짜 귀여움 ㅋㅋ)


사라 제닝스, 그리고 레이첼 와이즈
출처 :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스틸 컷

말버러 경의 부인이자 앤 여왕의 옆에서 국정을 이끄는 여인 사라 제닝스. 실제로 역사에선 앤 여왕보다 4~5살가량 연상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앤 여왕의 개인적인 집사이면서 정치적인 참모이면서 비밀스러운 애인인 그녀. 누구보다 빠르게 상대방을 간파하고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며 어느 적이 와도 씩씩하게 다 튕겨내 버릴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엔 세 여인 중 가장 인간적이지 않을까 싶다. 정치적인 목적과 권력을 위해 앤 여왕의 옆에 붙어있는 듯 하지만, 그런 앤 여왕에 대한 사랑과 우정은 진심인 듯하고,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했거늘 애비게일을 초반에 간파하지 못하고 그녀를 가여워하고 지원하는 실수를 한다.

레이첼 와이즈는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상함과 우아함 이 두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인 것 같다. 007 시리즈 다니엘 크레이그의 배우자이기도 하다. 지적이고 합리적이다 못해 조금 냉정할 것 같은 마스크엔 어딘가 모를 친절함이 배어있는 것 같은 묘한 조화가 있어 보인다. 처음 보았던 건 영화 “미이라” 였는데, 그 뒤로 “유스(youth)”, “파도가 지나간 자리”, “콘스탄틴”, “나는 부정한다”, “더 랍스터”에서도 그녀를 보았다. 요즘 말로 걸크러쉬가 느껴지는 배우.


애비게일 힐, 그리고 엠마 스톤
출처 : 영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스틸 컷

사실 모든 치정은 여기서 시작한다. 애비게일 힐! 애비게일은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자라난 여인으로, 귀족이라면 절대 겪지 않았을 산전수전을 다 겪은 후 왕궁에 등장한다. 몰락한 귀족 집안의 여인이지만 사실 그녀는 엄청난 지략과 눈치를 지닌 너무나도 정치적인 어마어마한 여성이다. 어떻게든 다시 귀족으로 돌아가 최종 목표는 앤 여왕의 옆에 서는 것. 그래서 사라와 같은, 그 이상의 여인이 되는 것. 모든 것을 전부 계산하고 움직이는 독사 같은 여인이다. 앤 여왕의 다리에 좋은 약초를 가져오거나, 그 약초를 본인이 구해왔음을 어필하는 장면, 사라를 모함하기 위해 책으로 스스로 자해하며 코피를 내거나, 끝내 앤 여왕의 침실에 들어서거나. 애비게일에게 우연은 절대 없다. (사냥을 사라에게서 배우지만, 사실은 사냥을 잘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활개를 치는 애비게일이 등장한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했다. 사라가 없는 궁전, 앤과 함께 있는 애비게일. 몸이 더 안 좋아져 마비가 된 듯한 앤이 넘어지자 애비게일이 부축하려 했으나, 감히 여왕의 몸에 손을 대냐며 여왕은 화를 낸다. 그리고 앤은 불편한 몸을 세워 애비게일에게 다리를 주무르라 하고, 애비게일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다리를 주무른다. 그때, 앤이 잡을 곳이 없다며 애비게일의 머리를 사정없이 콱 움켜쥔다. 그리고 애비게일의 표정이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이다.


앤이 애비게일을 함부로 대했다. 너는 그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고, 그저 시녀라고 인식시켜주는 듯한 장면이었다. 상대방의 머리를 움켜쥔다는 것. 그 행위 자체는 상당히 예의가 없는 행위이며 무시한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이미 귀족이 되어버린 애비게일의 머리를 그렇게 움켜쥐는 여왕의 모습에서 아무리 날뛰어도, 넌 그 신세를, 그 자리를, 몰락한 귀족에서 파렴치한 방법으로 내 옆에 있게 된 시녀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준 듯하다. 앤은 애비게일에게 ‘수치심’을 준 것이다. 다리를 주무르는 행위와 머리를 움켜잡은 행위를 연결해서 생각해보았다.

우선, 애비게일은 몰락했을 당시 원치 않는 관계에서 수치심과 힘들었던 감정을 여왕에게 이야기 한 적 있다. 그리고 애비게일이 여왕의 눈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혹은 전부?) 그녀가 앤의 성적인 쾌락을 만족시켰다는 점이다. 앤에게 애비게일은 어쩌면 매춘부와 같은 역할이었을 수도 있겠다.

앤이 명령하는 다리를 주무르라는 행위는 앞선 장면을 유추해볼 때, 성적으로 본인을 만족시키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생각된다. 앤이 애비게일에게 마지막 장면에 요청한 “다리를 주무르라”는 명령은 그런 함축적인 의미를 품고 있으며, 애비게일이 다리를 주무를 때 앤이 애비게일의 머리를 움켜쥐는 것을 생각해보면 흔히 영화에서 성적인 관계를 갖는 장면에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장면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면서 머리를 움켜잡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상대방을 그런 도구로 소비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다리를 주무르는 애비게일의 머리를 함부로 움켜쥐면서 앤은 애비게일은 그런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애비게일은 자신이 저지른 사건들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아무리 애써도 숨길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스스로의 천박함, 모멸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앤 여왕은 사라를 내치고 모든 일을 만든 애비게일에게 경고와 수치심을 안겨준 것 같다.


엠마 스톤은 착하고 선한 역할도 물론 잘 어울리지만, 그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계략을 짜는 애비게일과 같은 캐릭터가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라라 랜드의 엠마 스톤도 좋았지만, 애비게일을 연기하는 엠마 스톤이 좀 더 제 옷을 입은 듯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101마리 달마시안에 크루엘라를 연기하는 엠마 스톤도 엄청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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