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 하늘도시 아파트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바다 조망이 가능하도록 지어졌다. 아파트 위치에 따라, 혹은 살고 있는 층에 따라 좀 더 멋진 바다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우리 집은 안방 베란다를 통해 인천 대교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 일몰 무렵이면 인천대교 너머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과 가로등이 켜진 도로,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우러져 꽤 볼 만한 경치가 되곤 한다.
집에서 보는 일몰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면 바닷가로 간다. 을왕리나 왕산, 마시란 해변 쪽은 주말이면 나들이 행렬이 이어져 북적대는 곳이라 영종 주민들은 가능한 평일에 간다. 일몰까지 한가하고 느긋하게 바다를 거닐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어느 토요일 오후 무작정 차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을왕리까지 가려면 복잡할 것 같아서 집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인 예단포를 찾았다. 예단포는 1층으로 된 횟집과 칼국수집이 'ㄱ' 자 형태로 늘어서 있다. 넓은 주차장과 깨끗한 공중화장실, 저렴한 음식값이 예단포의 장점이다.
평일에는 한산한 예단포도 토요일 오후를 맞아 가족 단위나 연인, 혹은 홀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와 활기를 띠었다. 넓은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 찼다. 고기가 잡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간간이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도 보였다. 음식점 뒤편으로 돌아가니 바다에 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다.
갈매기들이 포구와 배 주변을 한가로이 날아다니다가 바다로 돌진한다. 새우깡을 얻어먹기 위해 여객선을 뒤쫓아 다니는 갈매기와 다르게 먹이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갈매기 본연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고 예쁜 것들. 갈매기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갈매기 다움'에 대해 생각해 봤다. '갈매기가 갈매기다워야 갈매기지. 그렇다면 나도 나다워야 내가 아닐까?'라는 의문은 '나다움, 엄마 다움'이라는 말 뒤에 '작가 다움'이라는 말 하나를 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로 나아갔다.
일찍 도착한 탓에 해넘이를 보려면 조금 기다려야 했다. 길지 않은 포구 끝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포구 주변의 사진을 찍었다. 영종 도서관 프로그램인 <길 위의 인문학> 수업 시간에 여행작가로부터 배운 핸드폰 사진 촬영 기법을 떠올리며 찍었다.
잠시 배웠지만 찍는 포인트에 따라 드러나는 사진이 달라져 신기해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조금만 자리를 움직여 찍어도 또 다른 느낌의 사진이 됐다. 사진기가 줌인 기능이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핸드폰도 내가 직접 가까이 가거나 멀어짐으로써 줌인을 줄 수 있다. 대강 막 찍은 사진에서도 간혹 건질 게 있지만 조금만 주의해 찍으면 건질만한 게 많았다.
짧은 강의에 달라지는 사진을 보고 사진을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당시 여러 가지로 일을 벌여놓아 수습이 힘에 겨운 상황인데 또 늘릴 수는 없어 참기로 한 게 지금 생각해 봐도 잘한 것 같다.
사진을 찍는 동안 낮게 드리운 먹구름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태양이 먹구름과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먹구름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숨길 반복했다. 쨍쨍한 날의 낙조도 멋있지만 먹구름 사이의 낙조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칼국수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안을 살펴봤다. 넓은 홀에 사람이 많았다. 초행길의 음식점은 사람이 많은 곳을 택해야 실패를 줄인다는 교훈에 따라 들어간 곳은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테이블 여기저기 흩어 앉아 있다. 그들은 칼국수를 꽤나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많은 테이블 중 혼자 칼국수를 먹는 여자는 나뿐이다. 먹는 내내 오늘 찍은 예단포 사진에 빠져들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차들로 빼곡했던 주차장이 한가했다. 낚시를 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돌아가고 항구는 조용했다. 가로등이 켜지고 화장실에 조명이 들어왔다.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화장실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등대'라 했다. 어쩐지 화장실 치고 지나치게 공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무식하고 용감하게 "어머, 화장실이 참 예쁘네."라고 했다. 화장실이 아닌 등대라는 걸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었다면 나의 무식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배도 부르고, 항구에서 보는 노을에 마음도 부른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집에서 10여 분이면 도착하는 예단포. 어촌의 작은 어항으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일몰을 즐길 수 있고, 바다와 산,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진 멋진 동네, 영종도.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가 참 좋다. 영종도에 사는 나는 행운아인 것 같다. 오늘도 그 행운의 한 조각을 가슴에 고이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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