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까지 30시간 대 이동한 이야기
1단에서 지퍼를 열면
2단, 3단으로 늘어나는 이민가방.
바퀴는 달려있지만
무게가 무게인 만큼 끌기는 정말 힘든 이민가방.
해외로 이민 갈 때나 쓰는 것인 줄 알았던, 이름 그대로 '이민가방'을 내가 싸게 될 줄 몰랐다.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신 중이던 그 해 봄, 남편이 브라질로 발령이 났다.
나는 낯선 곳에 가서 아기를 낳을 자신이 없어서 임신 8개월이던 3월에 남편 혼자 브라질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혼자 지내야 하는 남편은 지내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이민가방 2개에 나눠 담았다. 조그마한 전기밥솥과 전기포트, 당장 먹을 즉석밥과 라면들, 그리고 옷가지를 담았다. 맘 같아선 김치라도 싸주고 싶었지만 남편은 다 필요 없다고 했다.
남편은 자취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독립해서는 하숙을 하거나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 밥을 해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라면과 계란 프라이가 전부다. 그런 그가 혼자서 일 년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매일 라면만 먹고사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임신 8개월에 혼자 남아야 하는 나도 그렇게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의외로 나는 뱃속의 아기가 의지가 됐다. 발로 내 배를 뻥뻥 차대는 작은 생명체가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보내주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지낼 그에 대한 걱정과, 혼자 같은 둘이 되어 남는 나에 대한 걱정을 서로 입 밖에 내지 않은 채 우리는 이민가방을 열심히 쌌다.
처음엔 넣어도, 넣어도 계속 들어가서 막 넣었다. 그런데 비행기에 실리는 이민가방 1개의 허용 무게는 32kg. 넣다 보니 가득 찬 가방의 무게를 재보고 싶은데 체중계보다 큰 이민가방 무게를 재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이 체중계에 올라가 본인의 무게를 재고, 가방을 들고 다시 무게를 재서 그 무게에서 몸무게를 빼는 방식으로 가방 무게를 조절했다.
그렇게 남편이 브라질로 들어간 후, 그 해 5월 나는 홀로 출산을 했다.
남편은 출산예정일에 맞춰 비행기를 끊어 놓았는데 아기가 예정보다 5일 먼저 태어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낳은 다음 날, 남편은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고, 열흘을 같이 지내다 다시 브라질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기가 태어난 후 열흘 간 보고, 이후 아기가 8개월이 될 때까지 보지 못했다. 50일도, 100일도 함께 하지 못했고, 첫 뒤집기도, 첫 기기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런 남편이 안쓰러웠지만 사실 안쓰러운 것으로 치자면 내가 한 수 위였다.
갓난아기를 키우며 해외이사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아기를 보다가 밤에 아기가 잠들면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매일 택배 3, 4개를 받아야 해서 리스트를 적어놓고 체크하면서 받는 날들이 이어졌다. 또한 그 짐들을 다시 컨테이너 이삿짐에 보낼 것과 이민가방에 넣을 것으로 나눠서 정리해야 했다. 컨테이너 이삿짐이 브라질에 도착하는 데 최소 2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그간 필요한 짐들을 이민가방에 넣었다.
아이와 나의 옷, 그리고 아이의 장난감과 책을 주로 쌌다.
이번엔 친정아빠의 도움을 받아 무게를 쟀다. 아빠는 수 십 번 체중계에 오르락내리락하셨고, 가까스로 무게를 맞출 수 있었다. 나는 아기띠에 아기를 안고 이민가방 2개, 카시트, 유모차 그리고 기내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득 담은 기저귀 가방, 여권이 담긴 귀중품 가방을 메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는 평소에도 워낙 잠을 잘 못 자는 아기였는데 비행기에서는 더욱 그랬다. 잠을 자지 않는 8개월 아기와 비행기를 타는 일은 내가 잠을 몇 시간까지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하는 시험대 같았다. 그렇게 정말 '버틴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낸 후 브라질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약 30시간 만이었다.
아기띠에 아기를 안은 채 수하물 찾는 곳에서 돌고 있는 나의 이민가방을 보니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저 무거운 이민가방을 대체 어떻게 꺼내지? 한국에서 짐 부칠 때는 친정아빠가 도와주셨는데 이 곳에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순간, 같은 비행기를 탔던 한국교포 분들이 나를 구해주셨다. 내 짐을 다 내릴 때까지 나를 대신해 내려주시고, 커다란 카트에 안정적으로 실어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돌아섰는데 이번엔 커다란 두 개의 카트를 어떻게 밀고 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하나의 카트를 밀고, 다시 돌아와 또 하나의 카트를 밀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승무원들이 나오다가 나를 보고 도와주셨다.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입국장으로 들어서는데 저 멀리 고개를 빼꼼히 빼고 나를 기다리는 남편이 보였다.
그 순간, 그 모든 짐들을 그에게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는 짐은 안중에도 없고 내 품에 안긴 아기를 가장 먼저 들여다보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힘겨운 대 이동을 한 후 몇 주간 레지던스에 머물며 앞으로 살 아파트를 구하러 다녔다.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는데 문제는 생활에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당장 입을 옷도 부족해서 옷을 사러 가야 했고, 주방 용품도 없어서 다 사야 했다. 결정적으로 빈집 생활을 예상했으면서 나는 이불과 베개도 안 가져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급하게 필요한 것들을 구비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이불과, 냄비, 프라이팬, 그릇 등도 빌려서 쓰다 보니 몇 주 지나니까 ’ 컨테이너 짐이 오지 않아도 지내는데 별로 문제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주방용품으로 최대한 자주 씻어서 쓰고, 청소기 대신 밀대를 사용하는 간소한 삶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브라질에서 아이를 키우며, 여행하며 재미있게 지내다가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이민가방과 안녕을 고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지 5년 만인 2020년, 우리는 또다시 이민가방을 싸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