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까지 30시간 대 이동한 이야기 com 그림일기
2019년 여름, 남편이 브라질로 또 발령이 났다.
2020년 1월에 브라질로 들어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 멀고 먼 나라 ‘브라질’이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기에 두 번이나 발령이 날까.
너무 멀어서, 쉽지 않은 곳이지만 이번엔 지난번보다 훨씬 기대가 되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아서 이전보다 두려움이 없었고, 좋았던 기억이 많아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전엔 아이가 어려서 마음껏 여행할 수 없었는데 이번엔 그때 못 가본 곳을 모두 가 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기쁜 마음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이번엔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꼼꼼히 준비했다. 이사 3개월 전부터 이민가방에 넣을 것과 이삿짐에 넣을 것을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날 때마다 목록이 추가됐고, 마트 갈 일 있을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미리미리 구입했다. 그렇게 미리미리 구입해도 필요한 것들은 계속 있어서 결국 비행기를 타는 날 오전까지도 마트에 다녀와야 했다.
그래도 이번엔 마음이 좀 편했던 것이 어느덧 9살이 된 아이의 몫까지 모두 6개의 이민가방을 가지고 비행기에 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가방 2개에 어떻게든 많이 넣으려고 애썼던 것에 비해 가방 6개는 꽤 넉넉해서 욕심 껏 이것저것 준비했다. 밥도 할 수 있고 다른 요리도 할 수 있는 압력밥솥과 전기냄비, 프라이팬을 기본으로 그릇, 수저, 칼, 도마, 하다못해 국자까지 챙겼다. 그리고 아이의 책과 장난감, 문구류도 골고루 담고, 옷도 여유 있게 여름옷과 경량 패딩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불 두 채와 베개 세 개 까지 야무지게 쌌다. 가방이 6개니 여유가 있어서 엄마가 김치도 잔뜩 싸 주셨고, 멸치도 가득 담아주셨다. 심지어 참기름도 세 병이나 싸 주셨다. 거기에 라면과 즉석밥, 각종 레토르트 식품들도 담았다.
이번에는 가방 무게를 좀 쉽게 재보겠다고,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무게 재는 손저울을 샀다. 다이소에 가면 판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가서 샀는데, 10~20kg 정도의 가방이라면 모를까 이민가방은 손저울로 잴 수가 없었다. 손저울의 고리를 가방 손잡이에 걸고 저울의 손잡이를 올리면 무게가 측정되는데 이민가방은 그렇게 쓱,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의자 위에 올라가 가방을 들어 올리는 방법을 써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엔 또 가방 들고 잰 무게에 몸 무게를 빼는 방식으로 32kg에 맞췄다. 그렇게 32kg 가방 6개를 채우고도 가져가야 할 짐은 있었다.
짐으로 부칠 수 없고, 이삿짐에도 넣을 수 없는 노트북들과 아이패드, 빔 프로젝터, 그리고 귀중품을 기내용 캐리어에 담았다. 그것들도 양이 꽤 많아서 캐리어가 세 개였다. 취미로 배우던 플루트와 우쿨렐레 그리고 브라질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가 배우면 좋을 것 같아 구입한 바이올린까지 악기만 세 개였다. 플루트는 캐리어에 들어가서 넣었는데 우쿨렐레와 바이올린은 따로 들어야 했다.
그리하여 우리 세 식구는 브라질행 비행기에 오르며 이민가방 5개와 이민가방 사이즈의 캐리어 1개, 기내용 캐리어 3개, 악기 2개 그리고 남편의 배낭과 나의 배낭에 크로스백까지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탔다. 가방 6개를 부치고 나서도 짐이 어찌나 많은지, 환승하러 왔다 갔다 할 때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공항 면세점에서 구입한 화장품 봉투까지 더해졌다. 도착할 때까지 뜯지도 못하는 그것! 그리고 두바이 공항 면세점에서 남편이 브라질 회사 분들과 회식 때 마신다며 양주를 샀더니 사은품으로 기내용 캐리어를 하나 주었다. 세상에. 기내용 캐리어만 4개라니. 정말 챙겨야 할 짐이 어찌나 많은지, 우리는 이동할 때마다 낑낑대며 짐을 끌고, 짐을 세며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으면서도 가방 수를 세며 확인을 했다. 정말 이렇게 많은 짐과 함께 이동해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우리 가족 세 사람이 함께라서 다행이었다. 지난번 이사할 때는 내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이가, 그래서 다른 짐들처럼, 내가 챙겨야 하는 존재였던 아이가 이제는 캐리어 하나, 악기 하나 정도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컸다는 것. 또한 한 사람이 짐을 옮길 동안 다른 한 사람이 짐을 지키고 있을 수 있는, 우리가 '우리'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들고 올 땐 정말 힘들었지만 집 구할 때까지 호텔에서 지낼 때도, 집을 구한 후 빈집 생활할 때도 딱히 부족함 없이 잘 지냈다.
그 많은 물건들을 들고 오면서 그 와중에 나는 생필품이 아닌 것을 하나 챙겼는데, 남편이 알면 이사 컨테이너 짐에 넣으라고 할까 봐 몰래 챙겨야 했다.
그것은 바로 수채화를 그릴 수 있는 재료였다. 팔레트와 스케치북, 붓과 물통, 4B 연필까지 꼼꼼히 챙겼다.
컨테이너 이삿짐이 도착하는 데는 최소 2개월이 걸리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브라질에서의 하루하루를 그림일기로 그려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고, 수채화는 더더욱 그려본 적이 없지만 해보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던 화가가 낸 그림일기 책을 보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였다.
코로나로 인해 이사가 금지되는 바람에 우리는 이삿짐을 4개월 만에 받았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는데 그 첫 그림이 바로 우리의 <30시간 대 이동>이었다. 비루한 그림 실력이지만 이 그림 한 장을 그리고 나는 꽤 즐거웠다.
수많은 가방들을 낑낑대며 챙겨서 온, 정신없던 그 30시간. 그 시간이 이 그림 한 장에 오롯이 담겼기 때문이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사진 한 장 겨우 찍은 그 날의 우리 모습이 이 그림 하나로 모두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 그림 한 장을 그리고 나는 앞으로 꾸준히 그림일기를 그려야겠다고, 좀 못 그려도 ‘내 멋대로’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아이와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 되었고, 하루하루 그림이 쌓여갈수록 추억도 쌓여갔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지만 사진을 찍으면 기억에 남는 날이 되는 것처럼,
그림을 그리니, 보다 특별한 날이 된다.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후
나는 부쩍 그림을 위해 주변을 더 살피고,
좀 더 디테일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특별하지 않지만,
기록함으로 특별해질
나의 브라질 일상을
그림일기로 계속 그려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