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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Apr 10. 2024

16. 장례식도 준비할 수 있을까?

이게.. 준비해도 되는 거냐..?

 결혼 준비를 해 본 적이 있는가? 결혼 준비를 안 해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어떠한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거나 결혼에 대한 자신만의 로망을 품을 수도 있겠다. 평소와는 다르게 멀끔하게 세팅된 신랑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 그리고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과 수백 수천 송이의 꽃들. 오직 두 사람만을 위한 반짝반짝한 공간에서의 가장 멋지고, 특별하고, 빛나는 시간! 하지만 그날 하루를 위해 신랑과 신부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난하고 세세한 갈등의 과정들을 겪었는지 알게 된다면, 그날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모든 고생이 끝나는 날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축복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오직 결혼식 하나만을 위해서 일평생 해보지 않았던 고민들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대부분은 그 이후로 다시 고민할 일이 절대로 없는 굉장히 쓰잘데기 없고 소모적인 고민들이었다. 간단하게 신부의 착장 하나만을 놓고 생각해 보자. 먼저 나는 내 체형과 나의 얼굴에 벨라인이 어울릴지, 머메이드라인이 어울릴지, A라인 드레스가 어울릴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러한 드레스 용어들도 이제 막 배웠지만 최대한 아는 척을 하며 나는 키가 아담하고 상체가 짧은 편이니 풍성해 보이는 벨라인이 어울릴 거라고 가정을 하고 다음 선택으로 넘어간다. 벨라인을 골랐다면 이제 상체에 비즈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드레스가 어울릴지, 아니면 상체는 심플하고 대신 드레스가 상대적으로 풍성한 것을 골라야 할지, 가슴을 여미는 게 좋을지 어깨를 드러내는 게 좋을지를 또 고민해야 한다. 끝인 것 같은가? 머리에는 티아라를 쓸지, 티아라를 쓴다면 왕관모양이 좋을지 아니면 잔잔한 물결 모양이 좋을지, 그냥 면사포를 길게 늘어뜨릴지 아니며 꽃장식을 살릴지. 아니 뭐 이런 내가 쓰고 있으면서도 쓸데없는,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고민할 일 없는, 그렇지만 그게 또 인생에 단 한 번이라는 멋들어진 말로 포장돼서 되게 중요하게 느껴지는, 사실은 10년만 아니 1년만 지나도 뭐 어쨌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결혼 준비 시~작!'과 동시에 '신부입장'하는 순간까지 매 순간 해야 하는 것이다. 드레스, 메이크업, 한복, 청첩장, 반지, 아직 신혼집과 신혼여행은 얘기도 안 했는데, 이 단어들 뒤에 숨은 수많은 고민들이 보이시는가!


 그렇지만 그 시간은 또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쨍- 하고 화려한 것보다는 조금 수수한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잘 만들어진 공산품보다 투박하더라도 내 손을 탄 것들에 의미를 두는구나, 나는 반짝이는 돌보다는 여행을 한번 더 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구나. 제한된 예산 속에서 수도 없이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명확해지고, 다양한 가치들이 우선순위에 따라 가지런히 정렬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나치게 스트레스로 가득 찬 시간이었지만, 또 이때가 아니라면 언제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런 취향과 가치를 맞추어 보며 양보하고 타협하고 배려하는 연습을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왕 택씨의 장례식을 미리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실제로 얼마나 구현될지는 모르겠지만 택씨가 원하는 장례식의 모습을 세세하게 파악해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순전히 내가 구상해 본 '택씨의 장례식'의 초안이며, 이것을 기반으로 추후 택씨와의 협의를 통해 얼마든지 변경될 수 있음을 알린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장소'이다. 택씨는 장례식을 파티처럼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파티 장소를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 왜냐하면 파티가 가능한 대부분의 펜션이나 카페는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택씨의 장례식 날짜를 예상해서 대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택씨가 그곳에서 3일간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 또한 마땅치가 않다. 카페든 펜션이든 아무리 파티 같은 장례식이라 할지라도 아빠의 입관을 받아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장소는 당일 대관이 가능한 장례식장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다음 문제는 '분위기'이다. 장소가 장례식장인 이상, 옆 방에서는 사람들이 울고 있는데 우리만 풍선 불고 드레스 입고 북 치고 장구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첫 번째로는 이 글을 엮은 책을 비치해 두는 것이고, 두 번째는 택씨의 생전 영상들을 잘 편집하여 장례식장 한쪽에 계속 상영해 놓기로 했다. 영상편집은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셋이 맡아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택씨의 지인들은 각자의 추억 속에 있는 택씨를 영상으로나마 다시 만날 것이고, 택씨를 본 적 없는 우리의 지인들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될 것이다. 세 번째로는 브금, BGM인데 택씨가 생전 좋아하던 노래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잔잔하게 틀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3일 내내 들어야 하니까 100곡 정도 받아서 '택시 TOP100'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리는 택씨의 장례식은 먼저 택씨가 즐겨 듣던 노래들이 입구부터 잔잔하게 깔리며, 한쪽에서는 어두운 조명에(필요하다면 파티션으로 암막 같은 공간을 만들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택씨의 영상이 계속해서 반복 재생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택씨의 행적들을 기록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공간이 마련된, 어쩌면 전시회 같은 분위기의 행사가 될 것 같다. 조문객들에게 방명록 대신 편지를 받아볼까도 했지만, 너무 계기교육 마무리 활동 같은 느낌이라 빼기로 하고, 추가로 욕심이 난다면 택씨가 좋아하는 꽃으로 영정사진 주변을 꾸미고 싶은데 이 참에 택씨의 최애 꽃은 무엇인지 알아봐야겠다.


 제일 고민인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음식'인데, 이게 참 애매하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이 기대하는 유일한 것은 바로 '맛있는 밥'이지만, 장례식에서는 아무도 밥이 맛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누구 장례식 갔는데 거기 밥 맛있더라.'류의 말을 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물론 저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장례식장에서의 밥은 굉장히 성의가 없달까. 급하게, 빠르게, 바삐 손님을 맞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구색 맞추기용 반찬들이 고대로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모습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자니 답답하더라. 그렇다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자니 없어 보일까 걱정되고, 그렇지만 손님들은 머리 고기랑 동그랑땡만 찾는데!(나는 개별포장된 떡이 제일 좋다!) 몇 가지 맛있는 고장의 특산물만 내놓고, 택씨의 친구들을 위한 맥주와 소주도 양껏 내놓고, 일회용품 없이, 음식물 쓰레기 없이 우아한 장례식은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괜찮은 몇 가지 음식 조합을 생각해 보았는데, 이 부분은 택씨와 조금 더 상의를 해야겠다. 아무래도 택씨의 마지막 대접인데 더 잘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발인'이다. 택씨는 어디에 어떻게 묻히고 싶을까? 사실 난 택씨가 화장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뿌려달라고 해도 그 유언을 실행시킬 의향이 있다. 그만큼 택씨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평범하게라면 우리 할아버지가 계신 곳에 함께 계시겠지만, 왜인지 택씨는 수목장이나 더 특별한 방법을 택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번에는 이 모든 것들을 택씨와 상의한 뒤, 더욱 구체적인 모습을 적어보아야겠다. 택씨도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적지 않게 당황하겠지만, 모든 말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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