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전 아내
나솔 피디는 어떻게 저렇게 예능감이 마르지 않을까? 대체 어떤 형식의 면접을 거치길래 저런 주옥같은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꼴랑 5박 6일로 나의 3개월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악마같은 재능으로 어젯 밤 우리는 동일한 도파민의 축복속에 힘겨운 일주일의 중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는 모르겠는 영수의 매력을 파보도록 하자.
다대일의 제왕, 28기 X. 처음 선택부터 지금까지 한명 이상의 여자들이 줄을 서는 28기 X. 심지어 옥순과 영자가 손절을 쳤음에도, 그의 우유부단함과 광범위한 양산형 호혜적 애정공세를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다대일을 해내고야 마는 그의 능력에 한편으로는 감탄이, 다른 한편으로는 어마어마한 궁금증이 떠나질 않았다. 대체 왜 여자들은, X를 선택하고야 마는 것일까?
내가 세운 제일 그럴듯한 가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다정한 남자'라는 것이다. 물론 방송에서도 그는 충분히 다정하다. 너무 다정해서 문제다. 나에게도 다정, 너에게도 다정, 우리 모두 다정. 여러분은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특별한 존재들이니까요. 이걸 너무 남발하는 것이 어째서 상대방에게 상처인지 여전히 모르는 것을 보면, 아마도 X는 어린 시절을 아랍에메레이트에서 보내고 온 것이 아닐까.
말을 애매하게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X의 화법은 굉장히 듣기가 좋다. 그것도 '당장' 듣기가 좋다. 미래는 모르겠고, 내가 널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너에 대한 확신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정말 좋은 여자야.'로 들리는 말을 한다. X는 절대 선을 긋지 않는다. 그래서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고 본다. 다정하게 상대를 인정 해준다. 사실은 엄청나게 자기방어적이고 회피적인 표현들이지만, 썸이라는 관계에서는 여지로 볼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돌싱특집 특성상, 그리고 혼인파탄의 사유가 '성격차이'였다면, 이전 가정에서 그들은 아마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갯벌싸움 정도는 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늪이 되어 상처를 주고, 악독한 말들을 쏟아냈을 것이다.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과 세상 제일 먼 관계가 되기까지 그들은 말로도 서로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X는 3일 굶은 토끼 앞의 맹독버섯 같은 존재 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을 울리는 다정한 말 한마디를 해주는 남자, 어디에도 내 놓을 수 없는 나의 숨겨진 매력과 가치를 알아봐주는 남자, 한없이 따뜻하고 순수해서 모든 사람을 두루두루 살펴야 하는 성정을 지닌 남자. ST들이 판을 치는 냉랭한 남성의 세계에서 20억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다정한 남자, 게다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지닌 알맹이가 있는 남자, 키와 외모 또한 준수하며 자식도 없는 너무나도 괜찮은 남자.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떻게든 그의 다대일을 이해해보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 첫날 정숙이랑 술김에 손잡고, 어제 현숙이랑 손잡은 것에서 나는 완전히 끝이다. 오늘까지만, 아직 내 마음을 모르겠어, 평생을 함께 해야하는데 조금 더 내 시간에 맞춰 생각할게, 라며 데드라인을 계속 미루고 여럿을 옭아맨 것 까지도 나랑은 완전히 파이다. 다른 출연자들은 성급하고 조급해서 그렇게 빠른 판단과 직진을 하는 것이람? 본인은 굉장한 회피형에 방어형인데, '아무에게도 상처주고 싶지 않아'서 라는 얘기는 20대에 끝냈어야 했다. '그렇다면 미안합니다.'를 듣고 내가 내 이마 쳐서 혹 났으니 빠른 배상을 바랍니다.
어제 방송을 보고 제일 기분이 좋았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전처가 확실하다. 그는 분명 주변 사람들에게 무지 잘할 것이다. 인맥도 상당할 것이고, 능력도 나무랄 데 없다. 서글서글하고 분위기도 잘 맞추며, 일은 속전속결이고 구김살도 없다. 전처는 그와의 혼인을 정리함에 있어서 주변에서 한소리, 두소리, 세소리까지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화가 안통한다고? 야, 대화 통하는 부부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냐."라든지, "그정도면 육각형 남자인데 니가 참고 살아봐. 남자는 다 여자 하기 나름이야."라든지. 이혼녀 꼬리표를 달고 저정도 남자랑 다시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애도 한번 낳아보고 조금만 더 참고 살아보라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영숙언니 표정 보지 않았는가? 나는 그 표정이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전처의 표정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말이 안통해. 정말 말이 안통해. 그냥 안통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너는 왜 나를 오해하니?라는 식으로 안통해. 대화를 하면 할 수록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물론 영숙언니 많이 감정적이긴 한데)모든 것이 내 감정탓, 내 태도탓, 내 생각탓이 되고 그는 계속해서 나이스한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이 세계관이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X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치만 현숙이랑은 잘 통했잖아? 라고 한다면, 그들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X는 거의 현숙이의 쇼를 관람했고, 데이트 감상평은 흔한 영화 감상평과 다를바가 없었다. 어제 보고 오늘 또 봤는데요, 어제랑은 다른 감독의 서사를 알아낸 것 같아요, 보면 볼수록 새로운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보니 굉장한 명작이네요, 정도랄까. 서로 오전에 대화를 하고도, 서로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잘 못 이해한데서도 알 수 있다. 현숙이도 현숙이의 말만 하고 있고, X도 X의 말만 하고 있다. 나르시스들의 집단 독백 현장이랄까. 그래놓고 '그것은 너의 마음이니 존중해.'라는 태도는, 진짜로 뮤지컬 관람평인가 했다. X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잘 모르겠다. 진짜로.
다 괜찮아, 다 할수 있어, 모두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아, 이게 공평한거야, 라고 말하는 남자는 경계해야 한다. 아무래도 여기는 대한민국이니까, 이슬람 문화권으로 이주 예정이 아니라면 조심해야 한다. 내 앞에서도 저정도로 받아주는 남자는, 내가 안보이는 곳에서는 어떤 누구를 어떻게 챙겨주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스킨십과 술자리에 약한 남자는 일차원적인 본능에 자신을 맡기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저 잠시의 유희와 쾌락이 상대에게 어떤 불쾌함으로 남을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선언하고 모두에게 개방적인 관계를 인정할 것이 아니라면, 그는 어떻게든 남은 이틀에 마음을 정해야 한다. 나는 이 드라마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매우 궁금하다. 나솔이는 누구의 아이일지도 궁금하고.
남 일에 딱히 관심은 없지만 나솔은 정말이지 세상만사다만사다,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