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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Oct 15. 2023

1. 택씨와의 첫 기억

5살의 꼬마아가씨가 기억하는 택씨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내가 겪고 있는 동안에는 그 순간이 나중에 기억이 날지 안 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별 달리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던 것 같은 기억도 머릿속에 오래 남아 그날 입었던 옷까지도 생생히 생각나는가 하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되뇌던 기억도 어느 순간에는 흐려져 곁에 있던 사람조차 생각나지 않기도 한다. 꼭 중요한 것만 기억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뇌에서 재생되는 선명도와 해상도 또한 다 다르다. 두 아들을 키우는 요즘에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들이 휘발되지 않고 남아있을지 궁금해진다. 부디 좋은 것들만, 내가 남기기로 의도한 모습들만, 그런 모습이 아닌 모습들도 조금은 예쁜 필터를 씌워 사랑스럽게 기억해 주길 바라며 택씨와 관련한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들추어 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간 집은 우리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굉장한 부자 셔서 아들들이 결혼을 할 때마다 몇 년씩은 꼭 그 집에서 신혼을 함께 보내도록 하셨다고 한다. 일종의 가풍이라고나 할까. 높은 층고에 거대한 샹들리에 조명이 달린, 얼마간의 대리석 계단을 올라야 입구가 있는, 붉은 벽돌로 된 나름 웅장한 커다란 단층 주택에서 5살 무렵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와 살았다. 그렇지만 워낙에 어렸던 터라 많은 기억이 있지는 않다. 조그맣던 내가 거실에 있는 이중 샷시의 틈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서는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낑낑대며 울고 있었던 사건 또한 그저 사진으로만 보고 남 일처럼 들었을 뿐이다. 그 시절의 기억이라고는 마당에 있던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똑 따서 우유처럼 흐르는 나무의 진액을 손 여기저기 발라보고 껍질을 까먹었던 것과 바로 붙어있는 옆 집 2층 주택에 살던 사촌오빠네와 마당에서 병아리를 스무 마리 정도 풀어놓고 쫓던 기억, 그리고 사촌오빠네에서 한참 놀다 곯아떨어진 뒤 잠결에 쉬가 마려워 손으로 변기를 그리고는 그대로 이불에 지릴 뻔했던 기억이 전부이다. 아쉽게도 그 집에 살았을 때의 택씨는 내 기억에 없다. 오히려 키위를 깎아 주시던 할머니, 2층 계단에서 이불로 썰매를 만들어 끌어 주던 사촌 언니오빠, 할아버지가 사주신 나를 닮은 여자아이 인형이 기억날 뿐이다.


 택씨와의 첫 기억은 우리가 처음으로 이사라는 것을 하고 우리 가족만 따로 나와 살게 된 다음 집에서였는데, 그 집만큼은 내게 생생하다. 5살부터 8살 여름까지 살았던 그 집은 집 옆에 바로 아빠의 사업장이 있어 출근에 1분도 안 걸리는 직주근접의 끝판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크기로 보나 구조로 보나 아빠의 사업장이 주이고 우리 집이 부수적으로 붙어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택씨는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모종의 뻔한 사건에 휘말려 삶이 수렁에 빠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마도 열심히 일을 했던 듯하다. 요즘으로 말하면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평생 건물월세 받으며 편하게 살던 금수저 왕자님이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되어 겨우 잡은 지푸라기를 기반으로 재기를 노리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집안은 하루아침에 망했고, 우리 집은 택씨의 일터에 함께 자리 잡았다. 물론 사건의 앞 뒤, 좌우전후는 아무래도 알 수 없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해준 적이 없으며, 나는 그저 초록색 레고 박스의 레고들을 맞추며, 붉은 벽돌 가루를 고춧가루라 여기고 소꿉놀이하며 하루를 보내던 어린아이였으니까.


 그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는 진짜 손바닥만 한 작은 마당이 있고(주로 말라비틀어진 포도나 봉숭아 꽃들이 자랐지만, 보통은 쥐를 잡기 위해 풀들 사이에 끈끈한 쥐덫을 놓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오른쪽에는 쪼그리고 앉아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화장실 건물이 작게 있었으며(여기는 주로 택씨 사무실의 직원들이 이용했다.), 그 건물을 지나가야 우리의 작고 귀여운 집이 나왔다. 가정집으로 보기에 조금 어려운 듯 한 세로가 기다란 ㄱ자 구조의 집이었는데, ㄱ자의 가로 부분에는 길게 부엌이 위치했고 세로 부분은 ㅏ 모양으로 구획이 나뉘어 거실, 작은방, 큰방이 위치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다름 아닌 옥상이었는데, 파랗게 칠한 페인트가 곳곳이 벗겨진 철제 난간을 붙들고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화장실 건물의 중간 옥상이 있고, 그 위로는 우리 집만 한 크기의 넓은 옥상이 펼쳐졌다. 나는 위태위태하게 난간을 붙잡고 우리 집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옆집의 중간 옥상으로 뛰어내려 옆 집 언니와 인사를 하기도 하며 꽤 오랜 시간을 옥상에서 보냈더랬다. 그리고 이 옥상이 나와 택씨와의 첫 장면의 배경이 된다.


 이제 막 잠이 든 나를 택씨가 흔들어 깨운다.

 "첫아, 일어나 봐. 첫눈이야."

 만류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택씨는 잠옷바람의 나를 그대로 퍼올려 안은 채 우리 집의 큰 옥상으로 올라간다. 밤하늘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신이 난 택씨의 표정과 목소리가 매우 가깝다. 택씨는 쪼그려 앉아 나를 안은 채 한참 동안 소복이 쌓이는 눈을 바라보았고, 몇 차례 오여사의 다그침이 있은 후에야 나를 다시 잠자리로 보내주었다.


 급박했던 그날은 캠코더로도 사진기로도 어떤 것으로도 기록되지 못했지만, 나에게 택씨와의 첫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사 온 우리 집에서 맞이한 그 해의 첫눈. 잠옷바람으로 아빠와 함께 맞았던 한밤 중의 첫눈. 우리가 잠든 뒤에야 한기를 가득 안고 들어온 택씨는 아마도 달큰하게 취해서 그렇게 아이처럼 웃었던 거겠지. 한밤 중의 꿈처럼, 미처 잠에서 깨지 못한 내게 이 기억은 겨울이 올 때마다 계절성 우울증으로 곤란을 겪는 내가, 자라는 내내 내리는 눈만 보면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택씨를 낭만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이 날의 첫 기억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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