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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첫둘셋 Oct 18. 2023

2. 가정교육이란 이런 것이다

그는 첫에게 무엇을 전수해 주었을까?

 대한민국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교육열을 지닌 나라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좋은 '학연'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값비싼 조리원에 대기를 걸어두기도 하며, '맹모'님의 가르침을 본받아 엄청난 비용의 '학군세'를 감수하고라도 이사를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아이에게 기꺼이 한 사람 월급에 달하는 비용을 사교육비로 지출하기도 한다. 아이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해결해 준다는 '헬리콥터맘'이라는 단어의 출현에 이어서, 아이의 학업 성취도는 '엄마의 노력과 아빠의 정보력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숙어도 한때 유행을 했다.  


 내가 자란 세대로 말하자면 이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풍, 교육열이 제대로 불붙기 시작한 시기로써 종종 보이는 '개천에서 난 용'들의 성공수기와 그 성공신화를 일으킨 몇몇 학원들의 리스트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확산되곤 했다. 각종 경시대회와 영재교육이 판을 치며 엄마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고, 우리 오여사 또한 나를 그 틈바구니에 어떻게든 끼워 넣어보고자 어려서부터 다양한 사교육을 섭렵시켰다. 어릴 때의 나는 조용하고 유난히도 내성적이면서도 하라면 최선을 다해서 해내는 고분고분하고 성실한 아이였던지라 입력값을 넣은 만큼의 출력값이 나오는 편이었고, 덕분에 여러 대회에서 가능성을 잃지 않을 만큼의 상을 타며 오랫동안 엄마의 심박수를 유지시켜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말고 인생을 좀 대충 살아볼걸 하는 후회 비슷한 게 몰려올 때도 있지만, 오여사 입장에서는 내가 그때의 그 시간과 현실을 견디게 해 줄 한줄기 빛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 낭만파 택씨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비평준화 시대에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지만, 그 나이 또래의 낭만적인 친구들이 으레 빠지는 음악의 길로 눈길을 준 탓에 의대에 가지 못하고 건축학과에 입학했다던 택씨는 나에게 수학을 가르쳐주었을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아빠와의 최고의 기억으로 뽑는 자전거 타기? 인생을 알게 해 주고 포기하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는 등산 혹은 마라톤? 그렇게 뻔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더라면 이 챕터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택씨는 어린 나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오랫동안 여러 번 반복하여, 그리고 매우 칭찬하며.


 첫 번째 가르침은 바로 불을 조절하는 법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고 조심성 있게 행동할 수 있게 되자 택씨는 나를 가스레인지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불을 사용하는 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첫아, 잘 봐봐. 요리를 할 때는 이 불이 센 게 좋을까, 약한 게 좋을까?"

 요리조리 가스레인지의 다이얼을 돌리며 택씨는 말을 이었다.

 "우린 이 물을 끓일 거야. 그러면 불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후라이팬 위에 아무것도 없이 기름만 두른 상태에서는 불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불이 세다고 무조건 요리가 빨리 될까?"

 "어떤 순간에 면을 넣어야 할까?"

 택씨는 저녁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를 주방으로 불러 몸소 시범을 보이며 다양한 요리의 '불 조절'법을 알려주었다. 라면을 끓일 때는 무조건 강불이다, 라면은 불지 않는 것이 미덕이기 때문이다, 계란은 면이 다 익은 듯할 때 깨뜨리고 한번 휘저은 뒤, 라면이 빠르게 한소끔 끓고 나면 불을 꺼라, 계란말이를 할 때 센 불을 쓰면 위에까지 다 익어버려서 잘 말아지지 않는다, 만두는 약불로 익혀야 타지 않고 바삭하게 잘 구워진다. 요리라기엔 애매한, 말 그대로 불 사용법을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새벽 2시에 술에 취해 돌아온 택씨의 해장라면 담당이 되었다. 택씨는 내가 끓여준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며, 역시 애가 똑똑해서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며, 해장하는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도 그때 배운 라면과 계란말이,  군만두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음식이다.


 두 번째 가르침은 바로 닭 목살을 발라먹는 법이었다. 외할머니댁에서 다 같이 한상에 둘러앉아 닭백숙을 먹고 있는데 우연히 닭 목살을 발라먹던 나를 발견하고는 택씨는 입을 열었다.

 "첫아, 너 역시 닭 먹을 줄 아는구나. 닭 목살이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데 얘가 닭다리를 안 집고 목살을 발라 먹네."

 뜬금없는 칭찬에 어안이 벙벙해 닭 목뼈를  쪽쪽 빨고 있자니 택씨가 갑자기 닭 목뼈 찬양을 시작한다.

 "목살이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닭 부위 중에서 상당히 고급 부위란다. 그 목뼈가 하나하나 다 떨어지는데 깔끔하게 쪽쪽 빨아먹고 나면 그 사이에서 하얗고 길게 골이 나와. 다 발라먹고 그것까지 쏙 빨아먹으면 얼마나 맛있게?"

 택씨의 난데없는 일장연설에 부응하고자 나는 내려놓으려던 닭 목뼈를 사이사이 바르기 시작했다. 택씨의 말에 박자를 맞추어 닭 목뼈를 하나하나 분리하고 거기에 붙은 살들과 그 사이의 골을 쏙, 쫍, 깨끗하게. 내가 깨끗한 목뼈를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택씨는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옳지, 그렇게. 이거 봐봐 살 하나도 없이 깨끗이 잘 먹었잖아? 봐봐, 맛있지?"

 먹잘 것도 없는 목뼈를 입안에서 한참을 굴려대며 뼈에 든 칼슘까지 빨아먹은 나는, 그다음부터 택씨와 닭을 먹을 땐 제일 먼저 목뼈를 집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쟤가 봐봐, 맛을 안다니까. 한번 발라주는 거 알려줬더니 이렇게 깨끗하게 먹는다니까."

 한참을 목뼈를 발라먹던 나는 나중에야 어렴풋이 나에게 닭 목뼈 바르는 법을 가르쳐 주신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우리 가족은 5명이다. 닭다리는 2개, 닭 날개도 2개. 평화로운 치킨타임을 위해서는 누구 하나는 목 뼈를 좋아하게 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택씨는 내게 이런 시답잖은 것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길 좋아했다. 그중에 내가 기억이 나고 오랫동안 되새긴 가르침은 이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새벽 2시에 아내 눈치 보지 않고 남이 끓여준 라면을 먹고 싶었던 택씨의, 치킨 한 마리를 시켜 안전하게 닭다리나 닭 날개를 차지하고 싶었던 택씨의 묘수에 내가 휘말린 것 같기도 하지만, 내가 어벙한 척 택씨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칭찬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체구가 작았다. 초등학교(입학할 땐 국민학교였다.)에 입학할 당시 몸무게가 15kg밖에 나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작았는지 대충 상상이 될 것이다. 게다가 면역력은 얼마나 약했던지 전염병이라는 병은 누구보다 빠르게 걸려와 미리 앓고 휴교할 때 즈음 낫는, 인플루엔자계의 얼리어답터였다. 오여사는 이상하게 이번 달에 생활비가 남는다 싶으면 내가 그 돈을 병원비로 다 썼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한다. 다행히 지금은 정상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자들 중에 가장 건강하지 않은 자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프로병원투어러(pro병원투어er)로, 내 삶에서 병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그리고 건강한 몸엔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사실이다. 작고 건강하지 못한 나는 건강한 정신을 갖기가 매우 어려웠고, 나의 핸디캡을 보완하고픈 열망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나마 그쪽에 재능이 있었고,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일종의 치트키와 같아서 그 능력 하나면 아무도 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서 2개를 틀려도 다 맞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에서 1등을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는 무한 부정의 굴레에 갇히고 만다. 그때의 나는 악과 깡만 남아서 기력이 있을 때는 눈 뜬 시간에 공부를 하고, 기력이 없으면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는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 택씨의 얼토당토않는 저 칭찬은 내 마음속의 고래가 춤추게 했고, 나에게는 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보상이 되어주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100점을 맞아올 때나, 새벽 2시에 라면을 끓여 올 때나 택씨는 똑같은 눈빛으로 날 칭찬해 주었다. 아니, 오히려 라면 쪽이 더 반짝였을지도 모른다. 새벽 2시의 택씨는 늘 취해있었으니까. 하다 보니 당연해진 반 1등 소식은 별 감흥이 없는 일이었지만, 내가 닭 목뼈를 먼저 먹을 때마다 택씨는 쟤 입맛이 아주 어른이라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공부하는 거 말고는 똥 만드는 것 밖에 할 줄 모른다며 스스로 자조하던 나도, 그 순간에는 라면 하나는 잘 끓이고, 닭 목뼈 하나는 잘 발라먹는, 꽤 쓸모 있는 다른 수식어의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해장라면을 끓이는 사람, 닭 목뼈를 발라먹는 사람의 역할을 자처했다. 웃기게도, 어이없게도, 그런 소소한 칭찬에 마음이 일렁이는 내 모습이 좋았다. 다른 것으로도 나를 인정해 주는 택씨의 조금은 과장된 미소와 격양된 추켜세움이 좋았다. 라면을 먹는 내내, 치킨을 먹는 내내 들리는 그의 찬사가 내 메마른 마음에 한 줄기 달콤한 꿀물 같았다는 것을, 택씨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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