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오후네시]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에서 보기로 약속했지만,
그녀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할 생각이었다.
한바탕, 냉전을 겪은 후, 처음 얼굴을 보는 자리였다.
그래서 그런가, 막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처럼,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온 것도, 그런 이유였다.
우리가 싸운 이유에 대해서- /
싸운 다음, 며칠동안의 냉전기를 겪으며, 서로가 했을 생각들에 대해서- /
차근차근, 어떻게 얘기를 풀어 나갈 건지 조금,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의 회사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까페가 있고,
거기에 가서, 그런 생각들과 함께, 오늘의 데이트 계획도 세워볼 참이었다.
군청색 민소매 티에, 여름용 하늘색 가디건을 걸쳐 입은 건,
그게, 그녀의 옷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옷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했다.
그들이 싸운 것이, 누구 때문이었든, 어떤 이유 때문이었든,
그녀가 바라는 건, 언제나... ‘그에게 기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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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회사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만난 지 2년 여... /
그들의 데이트 장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언제나 그의 회사 근처였기 때문에,
이젠 눈을 감고도, 버스 밖 풍경쯤은,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쯤이면, 사당역을 지나겠구나...
이 근처 작은 백화점에서, 그의 생일 선물을 산 적도 있는데-
가끔, 걸어서 데이트 할 때, 자주 들르던 떡볶이 포장마차가
오늘은 문을 안 열 모양인가? 벌써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창 밖 풍경들을 읽으며, 그와의 데이트 장소로 향하는 길...
그리고 이제 곧, 그의 회사 근처 버스 정류장.../
내릴 채비를 하던 그녀의 손안에서, 휴대폰 진동이 느껴진다. 그에게서 온 문자./
왜일까.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쿵, 심장이 먼저, 바닥으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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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마라. 아무래도, 안 보는게 낫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그대로 주저앉아서는, 그의 메시지를 들여다본다.
아무래도, 안 보는 게, 낫겠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새기며,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그가 보낸 문자, 행간에 숨은 뜻을 파악해 본다.
내려야 할 곳은 이미 지나쳐버려서, 아니, 내려야 할 목적지가 없어져 버려서,
이제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 눈물도 나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할 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거.
“오지마라. 아무래도, 안 보는게 낫겠다”
그의 문자를 다시 한 번 보다가,
오래전, 그녀가 그에게 이별통보를 했던 날, 그가 보냈던 문자가 떠올랐다.
“가지 마라. 아무래도, 난 안되겠다”
그냥 글자 몇 개 바뀐 것 뿐인데,
그는 쉽게, 그녀를 잡기도 하고, 떠나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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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시간.
갈 곳을 잃은 시간.
그녀의, 오후 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