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에세이]
남자는 지금, 무념무상의 상태다.
아니, 무념무상인 척 하고 있지만
실은 머릿속이 그 어느때보다 복잡하다.
오늘 아침, 마지막 출근을 한 선배는,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만큼
아주 작은 상자 하나 분량의 가벼운 짐만을 챙기고,
‘잘들 지내라’ 가벼운 인사만 남긴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 문을 나섰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회사에서 쌓아온 많은 것들을
다 여기에 두고서, 저렇게나 가볍게- /
실은 며칠 전, 남자가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오랫동안 뭔가를 준비해 온 게 아니냐고-
그 준비가 끝나고 이제 시작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던 거 아니냐고. /
선배는 한참 아무 말 없이 웃은뒤에 이렇게 대답했다..
“뭔갈 준비했어야 됐다면, 그만두지 못했을 거 같아”
남자가 선배의 말을 이해하려면,
아니, 선배처럼 가벼워지려면,
얼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어쩌면 그냥, 마음의 문제일 뿐인걸까?
......................
작가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에서
주인공은 이런 독백을 한다.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우리의 걸음이 떠나는 이들보다
무거운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아직 다 하지 못한 일이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데-
-조금만 더 해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기에,
어쩌면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이 더 무거운 건 아닐까.
어떻게 될 거란 확신이 없어도,
앞으로 더 나아질 거란 확신은 아니어도,
지금에 머무르는 건 아니라는 그 확신.
그 하나만으로 가벼이 떠나는 이들의 걸음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금,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걸음도
여기든, 여기가 아니든..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확신으로,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이제까지 우리, 지금도 우리, 충분히 무거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