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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Oct 30. 2019

유난히 잘 안 풀리는 사랑도 있는 법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발로 살짝 찼을 뿐인데-

방금 전에 새로 산 농구공이 또르르-

강물 속으로 굴러들어가 버렸다.


달려가 건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는 그저, 오늘은 참...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


퇴근 무렵 갑작스럽게,

회사 앞이라며 그녀가 찾아왔을 때만 해도

그의 입이 귀에 걸렸었다.


그의 회사 앞에 있는 돈까스 집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을 땐,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돈까스는... 그가 제일 좋아하지만, 

그녀는 싫어하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맛이 없네, 이건 싱겁네... / 밥투정이 유독 심한 그녀가,

오늘은 밥을 먹는 동안 불평 한 마디 없기에.

기특해 보이기까지 했다.


연애를 하면서도 까칠했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그녀가, 그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왠지 우쭐한 기분에- 그러나 조심스럽게- 

담배까지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슬쩍- 눈치를 봤으나, 별 말이 없었을 때...

이상하다는 느낌이 잠시 스쳐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의 둔한 감각이 발휘된 것은 거기까지-

뭔가 이상한 느낌은 그의 곁을 계속 맴돌았으나,

그는 그가 감지하고 있는 기운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늘 불만이라고 했던 그의 둔한 감각은,

이제 잠시 후면 자신에게 찾아올 불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행운이었다.


......


두 사람이 가장 즐겨 찾던 까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

마른 커피 잔을 헛손질로 휘휘 저으며, 

그녀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의 머릿속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이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톤 바꾸지 말고) 아.. 아침에 휴대폰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지각 했던 게, 이럴려고 그랬던 거구나../

다같이 주문한 커피였는데, 내 커피에만 벌레가 빠져 있었던 게,

이런 일이 생기려고 그랬던 거구나...

오늘은 나한테, 나쁜 일만 일어나는... 그런 날이었던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생각보다 덤덤했다.


그래도 궁금해서,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딱 하나만, 이유를 알고 싶다고 물었다.

우리가 시작할 때 이유가 없었듯, 

헤어지는 이유도 없다는 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역시 그녀는, 말을 참 잘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고-

다운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농구공을 하나 샀다.


농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공이 강물로 굴러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냥 오늘은... 일이 안 되는 날인가보다... 그는 또 그렇게 생각했다.


....


유난히 일이 잘 안 풀리는 날이 있는 것처럼,

유난히 잘 안 풀리는 사랑도 있는 법이라고-

그냥 그렇게, 내가 나를, 다독입니다...


슬픈 것을 슬프다고 말하면, 더 슬퍼질 텐데,

내가 슬퍼도, 나를 다독여 줄 사람은, 이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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