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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붕 May 08. 2024

난 그 애의 핸드폰을 훔치지 않았어

누명 사건

전학을 간 초등학교는..

내가 여태 느끼지 못했던 정글이었다.

약하면 잡아먹히고, 강하면 잡아먹는.

이 3명 이상 모이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쯤은 정말 쉬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등교를 했고,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놀았다.

그날 반에서 인기가 좀 있는 애가

최신형 핸드폰을 들고 왔다.

원래 인기가 있었던 애였기 때문에

그 자리엔 사람이 원래 많았지만,

그날따라 내 친구들까지 다 거기에 몰려있었다.

너도 나도 그 핸드폰을

잠깐씩 쓰겠다며 빌려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서

다른 친구들의 열기가

조금 식었을 때를 노려,

그 친구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그렇게 놀다가 수업시간이 되고,

다시 쉬는 시간이 되었다.

솔직히 탐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그대로 내 걸로 만들고 싶었지만

쿡. 쿡. 가슴이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애에게 다시 돌려주려고 했는데,

그 애가 자리에 없었다.

그래도 난 그 애의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분명히.

일은 공교롭게도 그 애가 돌아오고 나서 생겼다.

돌아와서 자신의 책상서랍을

잠시 뒤져보던 그 애가 외친 말은..

"내 핸드폰이 없어졌어!!"

이 말은 즐겁게 놀던 애들의 분위기를

싸하게 바꾸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뒤이어 모든 시선은 나를 향했다.

내가 제일 최근에 빌려갔는데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 애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네가 그랬지? 네가 가지고 있었잖아!"

"난 아니야! 진짜 아니야!"

억울했다. 난 정말 가져가지도 않았는데.

진짜로 가져갔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난 아니야! 진짜 아니라고!"

그렇게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에 애들이 한 두 명 모여들었다.

그 애들은 일제히 내 자리에 모여

구경을 하거나 나를 추궁했다.

"난 진짜 아닌데.."

억울했다. 진짜로 가져갔다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쩐지.. 왜 계속 이쪽을 보나 했더니.."

"(슈붕)아, 진짜 그랬어..?"

"그렇게 탐났어?"

수군수군. 그렇게 내가 범인으로 몰려갈 때쯤,

내가 계속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아니라고 하니까

모여있던 애들 중 한 친구가

"그럼 너 책상서랍이랑

가방 뒤져봐도 돼?"라고 했다.

"뭐..?"

"네가 그렇게 아니라고 하는데,

확인은 해봐야지."

내키진 않았지만 이미 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래. 찾아봐." 체념하듯 그 애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찾아내는 애는 가지런히 정리된

내 책상서랍을 어지럽혔고,

내 책가방의 내용물들을 책상에 쏟았다.

그렇게 두 눈으로 내가 아닌 것을 확인한 뒤,

애들은 그 애에게 돌아가서

"쟨 아니야! 쟨 없더라!"라고 했다.

그렇지만 뒤에 들려오는

수군수군거리는 목소리는

별로 내가 듣기에 좋진 않았다.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

긴장감이 돌다가 수업종이 울렸다.

수업 중 잠깐 눈을 돌려 그 애를 봤더니..

자신의 책상서랍에서 찾았는지

어느새 꺼내서 놀고 있었다.

어릴 때라 그런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어려웠지만, 이제는 안다.

그때 그 광경을 본 나는 기가 찼던 것이다.

'그렇게 나를 몰아가고 싶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그 애는 나에게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아 시무룩하게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그 목소리의 차이를 눈치채고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라고 물어왔다.

나는 자초지종을 다 설명했다.

"그럴 땐 그냥 '그래! 뒤져봐! 

나오나 안 나오나!!'이랬어야지~

네가 너무 순해서 그래.

누가 그렇게까지 당해줘?

그 애들은 네가 범인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그렇게 확인할 수밖에 없던 거야."

"엄마도 내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시 속상함이 울컥 밀려왔다.

그 속상함은 내 눈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 뜻이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닌 걸 알아.

엄마도 널 믿어.

근데 그 애들은 네가 아닌 걸 모르잖아.

그럴 땐 네가 한 게 아니라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면 돼.

네가 아니라고 그러면 그럴수록 애들은

상하게도 널 더 수상하게 여길 거야.

넌 정말 아니라서 아니라고

한 거여도 말이야."

"원래 그런 거야..? 왜 그러는 거야..?"

울먹이며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확실한 건 범인이

'나 범인이오~'하진 않는다는 거지."

"...."

할 말이 없었다.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내가 사귄 친구들까지 날 의심하다니.

친구는 원래 의심하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고,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소중한 친구가 그런 의심으로

뒤돌아서는 게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 애들과 잘 지내고 싶었다.

내게 친구가 될 애들도 그 애들이었고..

엄마도 "그 네 친구라고 하는 애들도 이상하네.

다른 친구를 사귀든 혼자 다니든 해서 어떻게든 버텨야 돼.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그것보다 더 한 인간들 많다?"

내 세상이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에 대한 얕은 경계심을 쌓기 시작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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