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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붕 May 03. 2024

호구의 우정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인 줄 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 나는 내가 조금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주의였다.
친구가 요구해 주는 건 웬만해서 다 들어주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대한 주고 싶었다.
놀 수 있으면 최대한 놀고
같이 뭔갈 할 수 있으면 최대한 하고
그래야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생각했던 나는 정말 순수했던 거다.


어렸을 때, 유치원이 끝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다른 친구

언니들과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언니들과 노는 게 너무 재밌었다

술래잡기, 도둑 잡기, 지옥탈출, 무궁화 등등.
정말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언니들이
나만 술래를 시켰다
맨날 짠 것처럼 가위바위보에서도 지고,
맨날 내가 걸리고,
가끔은 심부름도 시켰다
"혹시 너희 엄마 돈 좀 있어?
우리 목마르니까 음료수도 먹게.
너도 먹으면 좋잖아~"라는 말에 혹해.
그 길로우리 집에 가서 음료수 사 먹을
돈을 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처음엔 "엄마! 나 놀이터에

있는 언니들이랑 같이 음료수 먹으러

가려고 하는데 용돈 줄 수 있어?"
라고 말했을 때
순순히 엄마도 "그래 재밌게 놀아~"이러고
줬지만 이게 두 자릿 수가 되고,
처음엔 음료수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바뀌고
그러면 엄마도 점점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엔 엄마가 나를 앉혀두고
"그 언니들이랑 노는 게 좋아?"라고 물어봤다
"응! 좋아! 언니들이랑 놀면 재밌어!"
"엄마는 너랑 같이 다니는
그 언니들이라는 사람 맘에 안 들어."
"왜..?"
"걔네들 너한테 항상 뭐 시키고

엄마(자신)한테 항상 사달라고 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언니들의 요구는 점점 당연시되어 갔다.

장보고 돌아오는 우리 엄마에게 다가가선

"안녕하세요 저 (슈붕)이랑

같이 노는 애들이에요~"

이러면서 인사를 한 뒤,

장본 비닐봉지를 뒤적이며 아이스크림을

뒤적이다가 "없네?"라고 하며 어졌다

그 태도에 엄마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집에서 "네들 뭐야??"이러면서 황당해했다.

"다음부터 그 애들이랑 놀지 마!"라고 했지만,

내가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은 그 언니들밖엔

없어서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응.."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난 어쩔 수 없이

그 언니들과 놀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내가 노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이모할머니께서 잠깐 지켜보다가

그 언니들한테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나는 잠깐 이모할머니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시길래 잠시동안 혼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놀았다.

그러고 나서 그 언니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뒤, 나에게

"재밌게 놀고 와~"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네!"하고 신나게 답하고

다시 언니들과 놀러 갔다

신나게 집에 돌아온 뒤,

엄마가 "우선 씻고 여기 앉아봐." 하는

말에 알겠다고 한 뒤, 씻고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랑 이모할머니는 둘이서

나에게 "걔네들이랑 놀지 말어."라고 했다.

엄마는 "항상 네가 왜 걔네들

따까리가 돼서 놀고 있냐?

친구가 걔네들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했고,

이모할머니는 "걔네들 너만 술래 시키는 거

다 짜고 그러는 거라고 하더라

내가 걔네들한테 '너희 짜는 거 아니냐?'

라고 했더니

'어? 할머니 눈치 좋으시네?'라고 하더라.

요즘 애들 보통이 아니야~"라고 하셨다.

이어서 이모할머니는 한숨을 푹 쉬시며

"이래 순둥 해갖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냐.

아이고.."라고 하셨고

엄마는 "(슈붕)아, 이상하다고

느낀 적도 없어?

왜 네가 걔네 신발을 가져다주고.

왜 네가 엄마한테 맨날 사달라고

해야 하는 건지? 한 번쯤은

걔네 엄마가 사줄 수도 있는 거잖아.

왜 맨날 엄마한테만 그런 걸 요구하는지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나는 나름 아는 것들을 얘기했다.

"얘는 ~~ 한 사정이 있고,

언니는.. 잘 모르겠어."

"그 언니라는 사람이 문제구만?

그 언니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봐."

"....."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언니는 그런 걸

얘기하지 않기도 했고,

한 번도 그 언니 집에 놀러 간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걔도 문제긴 해,

그 애들이 엄마가 장 본 거 뒤적일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나중에 내가 얘기해야겠네."

"엄마 그러지 마ㅠㅠ"

"물론 너는 이게 난감할 수도 있지만

주변 어른 중에 이런 걸 알려줄 어른이 없다면

그 애의 친구 엄마라도 말해줘야 하는 거야."

엄마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슈붕)아.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사람들은 네가 기분 나쁘다는 걸 몰라.

그러니 네가 말을 해줘야 해."

"그렇지만 나도 그 언니랑 그 친구랑

같이 노는 게 좋은걸..."

엄마는 속이 터진다는 듯 얘기했다.

"그럼 넌 그렇게 따까리로

있으면서 노는 게 좋다는 거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기에

그땐 엄마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신발이야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음료수는 나도 먹고 싶긴 했는데.

정말 용기를 내서 딱 한 마디를 했던 것 같다.

"엄마. 사실 나도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던 거 맞아."

"그 많던 요구들이 전부 다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

"... 응"

긍정의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눈치를 보다가 응이라고 했다.

물론 나도 몇 번 먹고 싶긴 했지만,

언니들이 나에게 요구했던 그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눈치는 내 얄팍한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고

결국 옆에 계시던 이모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지켜보는 내가 다 답답하다"라고 했다.

"자. (슈붕)아. 다 집어치우고,

엄마랑 연습하자. 거절하는 연습."

"???? 응?? 그건 나도 할 줄 알아.."

"아니. 넌 모르고 있어. 엄마 따라 해.

누가 너에게 요구를 했는데 그 요구가

싫다고 느껴진다면 이 말을 하는 거야.

싫어! 그건 네가 해!"

"싫어.. 그건 네가 해.."

"더 크게!!! 눈에 힘 !! 주고!

배에 힘! 주고! 자신감 있게!

싫어! 나 해!"

"부끄러워.. 이걸 왜 하는 거야..."

"어허! 빨리 하라니까!"

"싫어..! 너나 해..!"

"아냐 아직 틀렸어! 더 자신감 있게 하라니까!"

"엄마한테 이걸 말하는 것 같아서 싫어.."

"그럼 엄마보고 하지 말고  보고해."

"혼자 말하는 것 같아서 좀..."

"쓰읍! 얼른!!"

"싫어..!! 너나 해!!!!"

"그렇지  하네! 한번 더!"

그렇게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아빠가 돌아왔다

아빠는 나와 엄마를 보며

뭐 하고 있는 거냐고 말했고

엄마는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슈붕)아.. 그런 친구들은

너에게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어.

너에게 항상 요구만 하는 애들은

자신의 힘으로 뭔갈 할 수 없는 애들이야.
굳이 네가 그런 애들과 힘들게 놀 필요 없어.

만약에 그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라도
엄마와 아빠는 항상 너의 편일 거고,
너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되는 거야."
나도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말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 언니들이랑 노는 게 재밌는걸.."
"재밌는 건 재밌는 건데, 네가 항상 이렇게
누군가한테 맞춰주는 건 정말 잘못된 거야
그러니 게네들 말고도 그 시간에 놀이터에
있는 친구 한 두 명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 애들이랑 놀려고 노력해 봐.
너는 성격이 좋으니까 잘 사귈 수 있을 거야."
"응.!"
아빠가 무서웠지만 그 시절에도
아빠가 멋져 보이고
같이 있을 때 즐겁고 좋았던
순간들이 참 많은데
이 사건이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엄마에게
"그래도 걔랑은 놀고 싶은데..."
라고 하니까
"정 그러면 걔랑은 놀아도 상관없는데
그 언니라는 작자랑은 놀지 마."

"응 알았어!"

그렇게 다음 날이 되었고,

나는 그 언니에게 무섭지만

살짝씩 반항하면서

동갑내기 친구만 챙기고 놀았다.

아무래도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는 나에게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라고

알려줘야 한다고 했던 내용을

 애에게 알려줬다.

그 애는 며칠 동안 나를 좀 불편해하다가

또 나랑 곧 잘 놀았다.

결국 나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나를 포함한 이 3 총사는 분열됐다.

정확히는 그렇게 있다가

다른 애가 새로 와서 놀 때마다

내가 걔네들이랑

놀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언니와 그 친구 2명

나 1명 이렇게 분리됐다.

그 언니들이 아닌, 이번에 같이 놀게 된

친구들은 나에게 요구하거나

그런 일도 없었다.

그냥 조그만 부탁정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난 이상한 실이 꼬여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불쾌함은 없어지고,

그 애들과 편하고 재밌게 놀았다.


나는 그렇게 멀어진
그 친구가 계속 맘에 걸렸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요새 잘 놀고 있어..?"
사실 그 친구도 그 언니의
독단적인 행동에 지쳐있는 친구였다.
언니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그 언니 몰래 나를 챙겨주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어 잘 놀지.."이러고
짤막한 대화가 끝이 났다.
아무래도 불편한 만남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엄마한테 "걔한테 말 걸어봤는데.
잘 놀고 있대."라고 하니까
엄마랑 아빠는 의외로 시큰둥하게
"어 그래?"라고 하면서
엄마가 "넌 걔네들이랑 떨어졌으니 됐어~
그렇게까지 신경 썼으면 안 써줘도 돼.
이제 끝난 거야."라고 했다.
그날 저녁은 그 애들과 노는 것만큼 불편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추측하건대, 나랑 친해서 엄마도
그 친구를 챙겨주는 모습을 봤었는데.
엄마가 갑자기 이렇게 시니컬하게 나온 게
어린 마음에 불편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며 뭐라고 할까.

멋있다? 무섭다?

이제는 친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다 장난인걸 아니까 유머스럽게 넘어가지만

사실 아직도 압박이 느껴지는 부탁이라면

거절하는걸 좀 어려워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다

난 겁쟁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센스와 재치를 배우고 싶다.

내가 겁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으니까

거절당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분이

덜 나빴으면 좋겠으니까.

아직도 난 한참 멀은 것 같다.

이거에 관련된 책과 영상을

아무리 읽고 보고

실천해 봐도 내 옷이 아닌 것처럼

어색하기만 해서

상대방도 부담스러워하고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봤다.

아무래도 내가 이걸 익히기까진

수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덜 겁쟁이라서

그냥 단칼에 자를 수 있었으면.

그랬다면 더 나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난 그렇게
단칼에 끊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나는 나야! 내가 싫은 건

싫은 거야!"
라고 끊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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