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마지막 장을 읽는 날 봄비가 내린다. 비는 우듬지의 잎들을 움츠리게 하면서도 빛깔은 선명하게 만들어 생기를 부여한다.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에 아롱지는 여운과 닮았다.
이 책은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추어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데 저절로 몰입하며 읽게 된다. 문장들이 묘하게 마음을 끄는 힘이 있고 세련된 문체라 부담 없이 읽힌다. 문장을 짓는 내공이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책을 고를 때 분위기가 음울하면서 냉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어두운 내용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혔다. 그만큼 잘 쓰인 책이라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가출 청소년에 대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건성으로 그들을 보았다.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야기로 먼 산 바라보듯 했고, 철없는 불량청소년들 중 하나일 뿐이라며 도외시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며 그런 삶의 이면에 드리운 어둡고 무거운 굴레를 보게 되었다.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고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비뚤어진 우리 사회가 빚어내는 악하고 추악한 행위의 부산물일따름이었다.
주인공 인수의 배경 역시 아내를 폭행하는 폭군 아버지를 둔 문제 가정이었다. 인수 자신도 산체적인 폭행과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며 살았다. 자수성가한 부친에게 주인공은 유약하고 모자라며 못마땅한 아들로 부아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대상일 따름이었다. 짓밟히며 감내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결국 가출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가출하면서 만나는 인물들도 배경은 대동소이하다. 의붓아버지와 형에게 폭행을 당하며 집을 뛰쳐나온 성연과 미혼모인 엄마에게 버림받은 경우. 여자 아이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환경이 가출 청소년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천성적으로 유약하다. 소설 시작부터 한여름에도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집에서 존중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밖에서도 존재감도 없는 아웃사이더 일 따름이다. "나는 부유하듯 학교를 오갔지만 한 가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 세계는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존재가 없다는 것."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가지만 점점 마음에서는 멀어지는 삶을 살아간다. 정을 잃어버린 사회는 결국 개개인의 삶도 잃게 만든다. 주인공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삶이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가출해서도 그는 여전히 주변인이다.
그러나 성연을 만난 후 그를 쫓아다니며 그의 후광으로 나름의 존재감을 얻는다. 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비웃음의 대상이다. 인간 본연의 양심을 지녔고 올바른 삶의 기준도 가졌지만 상황에 눌려 점차 가면 뒤에 숨고서 자신을 부정하며 현실에 부응하는 타락과 허위의 삶에 점점 빠져든다. 평범한 개인이 쉽게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주인공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부도덕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언제나 나름대로 선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변명하며 상황에 휩쓸리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이성은 그런 자신을 혐오하게 한다. 어른이 되어 독립한 그는 가출한 청소년을 돌보게 되면서 내적인 치유의 길을 걷는다. 비록 그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따돌림을 받았지만 그에게 구원의 빛은 또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그를 삶에서 지켜준 사람은 성연이다. 그는 주인공이 가출해서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 살아간다. 그는 거칠지만 나름의 꺾이지 않는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잡초처럼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덕은 더 이상 고려대상이 아니다. 도둑질은 그에게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 세계에도 정은 존재해서 약해빠진 주인공 인수에게는 잘해준다. 생각보다 과분한 일자리와 좋은 사장을 만났다고 생각한 그는 힘을 다해 그에게 충성을 하지만 단지 이용대상에 불과한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사장을 폭행하게 되어 소년원을 들어갔다 나온다.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서 소년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며 범죄의 길로 점점 깊이 발을 들이게 된다. 결국 그런 일들이 빌미가 되어 뺑소니로 죽은 친구의 사체를 유기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한 경우의 자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주인공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친구는 바로 경우다. 그 또한 얼마든지 사회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나쁜 일을 버젓이 저지르는 당위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그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타고난 따뜻한 심성을 가진 친구다. 자기를 버린 엄마에게도 한없는 애정을 품고 산다. 그런 그에게 세상사람들도 따뜻한 마음을 베푼다. 그는 자기가 자라난 환경을 탓함이 없이 흔들림 없는 바른 삶을 산다. 그는 자신보다 불우한 친구들을 성심으로 돌보아 준다. 주인공도 그의 사랑을 받지만 혼란스럽다. 왜 그는 저토록 바른 삶과 따뜻한 심성을 지녔을까? 그를 보며 자신의 삶이 남의 탓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왜 저 아이는 사랑받아본 아이처럼 행동할까. 나는 궁금했다. 경우와 가장 친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래 같이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어두운 마음 한편에는 그 애에게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며 경우에게 정을 떼기 위해 마음속으로 고군분투했다."
이 소설의 피날레는 경우의 죽음이다. 잿빛 세상에서 유일하게 밝은 빛을 발했던 그가 출소 후 훔친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진다. 소년원을 출소한 이후 그가 훔친 오토바이를 통해 그 역시 선하고 바른 본성을 지니고 살 수 없게 되었음을 유추하게 된다. 참으로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녕 남은 그마저도 거센 풍파를 거스르지 못하고 꺾여 버린 것 같아 답답해진다. 그런 그를 주인공은 외면을 한다. 양심의 가책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독립한 주인공은 가출 청소년인 이호를 마음 중심으로 돕는다. 그 마음은 바로 경우의 마음이었다. 그런 다짐을 통해 늘 추위에 시달렸던 그의 심연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몸과 마음이 녹는다. 그런 안온함을 느끼는 자신이 불편하면서도 "햇볕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라고 그는 간절히 바란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가 되고 그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구에게도 존재감 없고 아웃사이더에 불과한 주인공이 마음 중심에서 사람을 진실하게 도우며 자신도 구원하게 되는 소설의 결말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면서도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라는 문장은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