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일기

빨치산 아버지의 뒷모습

정지아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by 정석진


나는 그간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지금도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는 수용하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부담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빨치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한 번 박힌 인식은 헤어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갖는 불편한 감정이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아버지는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고 죽을 때까지도 사회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책을 덮은 시점에서는 경직되었던 사고에 균열이 생겼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빨치산의 영향을 다소 약화시켰고 그렇게 살 수도 있었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부친은 젊은 나이에 사회주의를 접하고 그 이념에 빠져든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빨치산 활동을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실제 투쟁에 나선 동료들은 게릴라전을 통해서 죽어 나갔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위장 자수와 위장 전향을 통해 출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살아가는 내내 그는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그의 아내도 역시 같은 사상을 가진 정치적인 동지였다.


그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연좌제로 인하여 큰 고통을 받게 되어 형제 사이도 원수처럼 왕래가 끊긴다. 주인공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의 부친은 자신의 가정사는 늘 뒷전이고 다른 이들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의 일처럼 앞장서서 해결사 노릇을 한다. 그에게는 인민을 먼저 생각하고 돌보는 것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자세일 따름이다. 사회주의 이념에는 철저하지만 노동에는 젬병이고 인내심도 제로다. 그의 이런 오지랖으로 인해 남의 빚보증을 서서 빚을 떠안는 일은 다반사이고 이웃에게 일만 생기면 집안일은 팽개치고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다. 그런 모든 뒤치다꺼리는 오로지 아내의 몫일 따름이다.


그런 부친이 치매를 앓게 되고 결국 전봇대를 들이받고 사망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장례를 치르면서 조문을 계기로 그의 부친과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통해 부친과 그들이 얽힌 숨겨진 사연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그러면서 그간 주인공이 그녀의 부친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면들을 보게 된다. 부친은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일보다 앞장서서 셀 수 없는 은혜를 베풀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의 부친은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그의 부친은 이념에 경도되었지만 아주 따뜻한 심성을 가졌고 인간적이었으며 나보다 민중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였다.


이념은 사람들의 생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면 인간성을 상실하기가 쉽다. 이념이 우선이고 사람의 존재는 그다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사상은 위험한 것이다. 실례로 6.25 동란 때 이념 하나로 자행된 수많은 살육들이 그 증거다.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는 빨치산은 절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주인공의 부친은 빨치산이었고 그 사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치산의 삶을 당당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인간적인 면에서는 아주 훌륭한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상이나 이념이 미화되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부친이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살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빨치산과 연관된 내용이 빠졌다면 더 감동적인 사부곡이 되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는 두 가지 생각이다.


그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힘이 닿는 대로 도우며 살아가는 인생의 뒤안길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보게 되는 여운이 크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먼저 생각하고 바른 본성대로 살아간다면 이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점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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