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을 읽고 나서 여운이 짙게 남는다.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데 무엇인가 묵직한 느낌이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그만큼 내용이 흥미로워서 집중하여 읽었다.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내용도 아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 답답하거나 짜증 나게 하지도 않고 피곤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독자에게 과도한 흥분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조금은 떨어져서 지그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소설에는 7개의 단편이 담겨있다.
두부
엄마와 함께 사라져 버린 강아지 두부, 모친은 돌아가시고 두부는 다른 사람의 개가 되었다. 강아지를 찾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다른 이의 애틋한 사랑을 받는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를 찾아왔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결국 강아지를 되돌려 보내고 만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넌지시 들려주는 것 같다.
사라지는 것들
이혼하고 사업도 제대로 되지 않는 꽉 막힌 상황에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던 엄마는 그만 살고 싶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주인공이 이혼한 배경에는 자녀의 죽음이 있다. 엄마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며느리 대신에 두 아이를 건사하다 교통사고로 손자 하나를 잃는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심한 자책을 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엄마는 이제는 모든 것을 그만 놓고 싶다. 마음에 내키는 대로 살고 싶은 엄마는 강화도에 가고 싶다며 아들을 부른다. 그곳에 가서 하루를 보내고 엄마는 아들을 버려두고 또다시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난다. 아들은 엄마를 붙잡고 싶고 살아가도록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녀가 진 짐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모친의 선택을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을 보며 혈육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는 한 개인이라는 것, 그 삶을 온전히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선릉산책
주인공은 우연히 장애를 앓고 있는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돌보아야 하는 대상은 헤드기어를 하고 무거운 백팩을 지고 말이 없다. 그는 침을 수시로 뱉고 식탐이 지나치고 자해를 하는 친구다. 돌보는 시간은 너무도 길다. 선릉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다 식당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그는 놀랍게도 나무 이름을 모두 다 꿰고 있다. 침을 뱉는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지만 권투를 배웠기에 맞는 상황은 피한다. 친해졌는지 손까지 잡는 그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헤드기어를 벗게 하고 백팩을 대신 짊어진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인공은 짜증이 나고 한두운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자해하기 시작한다. 말리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주인공도 피를 흘리게 되고 나중에 보호자인 이모에게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다치게 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겨우 하루 장애인을 돌보는 일조차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를 느낀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짐의 무게가 어떨는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장애인도 자신에게 진심인 사람은 인지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장애를 앓는 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두 번째 삶
준범은 학교폭력으로 지운을 사망하게 하여 과실치사로 감옥에 갇힌다. 그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사실 그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것이다. 한준일이라는 친구가 교묘하게 사람들을 조종해서 그를 범인으로 만든 것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끈질긴 사고를 통해 진짜 악마는 한준일임을 알고 그간의 기록과 그의 자백을 유도하는 것을 통해서 그에게 복수를 하게 되고 당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두 번째 삶을 살도록 만든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직접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악행을 조장하고 자신은 간교하게 빠져나가는 섬뜩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생각한다. 소설에서는 사필귀정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떨지 조금은 두렵다.
이코
투렛증후군을 앓는 주우가 주인공이다. 들어는 봤지만 증상이 참으로 기이하다. 발작을 일으키면 딴 사람이 되어 거친 욕설을 내뱉는다. 아이들에게는 놀림감이 되고 미이는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고 돌봐준다. 사회에 나와 주우는 병을 감추기 위해 재갈을 물고 마스크를 한 체로 말없이 살아간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따스했던 미이를 애타게 찾다가 우연히 다시 만난다. 둘은 감춰진 마음을 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위로를 주고받는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이가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살아갈만한 세상이 된다.
미스터 심플
출판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자살을 했다. 자살한 이유도 모르는 그 사건으로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사람들을 기피하게 된다. 우연히 대면으로 기타를 구입하며 중년의 남자를 만난다. 그는 호른 연주자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기러기 아빠로 살다 이혼까지 당한 아저씨다. 자기가 쓴 글을 봐달라는 청에 못 이겨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대화가 이어진다.
각기 처한 상실의 아픔을 소통을 통해 치유로 가는 발걸음이 시작된다. 아픔도 사랑과 동일하게 이해와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과의 소통은 때로는 상실을 어루만지는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스노우
서울에 큰 지진이 나고 많은 이들이 사망하면서 도심은 쑥대밭이 된다. 그 와중에 종묘가 불에 전소된다. 종묘에서 해설사로 근무하는 이 도는 종묘를 복구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민원을 제기하지만 복구는 요원하기만 하다. 경비로 근무하는 서유성은 낙담하지 않고 관람객들에게 실의와 의욕을 잃어버린 해설사 대신 해설을 한다. 그런 서유성이 이도는 못마땅하다. 우연히 함께 야간 순찰을 돌며 전소된 종묘에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서유성은 스노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다. 재만 남은 빈 공간에 고양이가 지키고 있는 사실로 둘은 묘한 안정감을 누린다. 서유성은 실의에 빠지지 않고 매일의 기록을 통해 종묘를 지켜가고 있다.
서울도 지진이 날 수 있다는 것, 삶의 터전을 복구하는 것과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의 순서는 무엇이 먼저일까? 그리고 재난을 만났을 때 낙담하고 실의에 빠지는 것과 희망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실행하는 삶의 대비를 통해 바른 삶의 태도를 돌아본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담담히 그려내 읽는 이들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소설 하나하나가 인상적이다. 그의 문장과 이야기에 매혹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