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로 역사탐방을 나섰다. 비 온 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일기예보에 옷을 껴입고 단단히 준비하고 나섰는데 막상 날씨가 봄처럼 화창해서 옷을 벗고 다녀야 했다.
재현된 사비성
새벽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여유 있게 집에서 출발했지만 전철 안에서 독서에 빠져 정차역을 지나쳐버렸다. 두 정거장이나 통과해서 되돌아가야 하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하게 되어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올랐다.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부여 탐방은 기대이상이었다.
백제는 지금의 서울 인근 위례성에서 온조가 나라를 세웠고 웅진으로 천도를 했다가 성왕이 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겼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인 사비성이 있는 곳이다.
백제는 60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진 나라였지만 문헌이나 유적이 별로 남지 않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관심은 조선시대에 집중되어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 기행으로 백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박산향로의 일종이다. 박산향로는 좁은 받침 위에 산 모양의 몸체를 올리고 신선들이 사는 신산을 표현한 향로를 말한다. 중국 한대에 시작되었고 신선, 신수, 동식물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매우 화려했다. 백제금동대향로도 몸체가 연꽃을 형상하고 있어 불교의 영향이 확인되면서도 다양한 인물과 신수, 동식물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발굴 당시에는 중국에서는 자기 나라의 유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백제금동대향로는 동시대의 박산향로에 백제적인 요소를 가미한 백제의 작품이다. 61.8cm로 크기부터 중국의 박산향로보다 월등히 크며 86개의 도상을 빼곡하게 채워 백제인의 이상 세계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확연한 차이는 상층부에 5명의 악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점은 중국 향로에서는 볼 수 없는 백제만의 독특한 양식이라고 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위명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막상 실물을 직접 보게 되니 상상 이상이었다. 말 그대로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특별 전시실에 마련된 실물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은은한 조명으로 한층 더 두드러진 아름다움이 이목을 끌었고 대향로가 주는 마법에 가까운 매력에 이끌려 그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실물을 보기 전에 사전 영상으로 대향로를 미리 만나서 기대감이 크게 일었다. 부여 석조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상 프로그램이 아주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조룡
백제금동대향로는 멀리서 보면 불꽃이 타오르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응집한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을 보는 듯하다. 가까이에서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화려하게 활짝 핀 한 떨기 꽃이다. 하단부부터 생동감이 넘친다. 다섯 발톱을 지닌 용이 물을 차고 비상하는 웅혼함의 기세가 대단하다. 안정감을 부여하면서도 용틀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힘차다. 위로는 벌어진 연꽃잎들이 산을 이루며 피어나는 빼어난 자태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꽃잎 하나하나에 새겨진 문양들도 다채롭다. 하나하나 독특하고 신비롭다. 정상의 악기 연주자들은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듯하다. 화룡점정으로 꼭대기에 앉은 봉황은 도도하면서 우아하다.
압도적이고 화려함의 극치를 눈으로 보는 감동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할까? 감히 말하건대 완벽한 조형미에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유려함과 화려함이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아 예술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 순간에는 무엇으로도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율조차 솟아오른다. 백제의 유물이 거의 남지 않은 안타까움을 한순간에 상쇄해 버린 기가 막힌 예술품 앞에 경건한 마음조차 깃든다. 단박에 여행의 보람과 즐거움이 차고도 넘친다.
그 이외에도 금동관음보살입상의 유려함이 눈길을 끌었고 재현한 사비성의 웅장함과 용마루 끝을 장식하는 치미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무늬 벽돌과 기와의 문양은 백제문화가 얼마나 세련되고 우아했는지를 직접적으로 일러준다. 정림사지의 오 층 석탑이 주는 느낌도 좋았다. 편안함과 부드러움이 백제 예술이 주는 감성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서산마애삼존불의 꾸밈없는 천사의 미소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볼수록 백제 예술과 문화의 한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금동관음보살입상
정림사지5층석탑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의 문화를 대변하는 이 문장에서 대단한 백제의 긍지와 힘을 느낀다. 자랑스러운 백제 문화와 예술의 정수, 백제금동대향로를 꼭 만나보기를 강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