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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an 25. 2024

추워야 겨울답다

한파에 추위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며칠 째 기온이 급강하하고 있다. 별다른 약속이 없어 하릴없이 집안에 칩거 중이다. 방송에서는 강추위 예보가 이어진다. 을씨년스러운 창밖을 바라보며 따스한 실내에 머무는 행복을 누린다. 이럴 때는 밖에 안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몸이 움츠러들어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기본적으로 매일 해야 할 운동량을 정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 계단 걷기가 그 가운데 하나다. 오전에 마트에 갈 일이 생겼다. 이왕 밖에 나가는 길에 계단 오르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단단히 옷을 껴입었지만 확실히 춥다. 문밖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콧속을 파고든다. 마치 쨍하고 얼음이 어는 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하다. 아파트 계단은 방풍이 되어 있어도 매한가지다.


처음 21 계단을 오를 때는 비교적 수월하다. 두꺼운 옷도 거추장스럽지 않다. 몸이 아직은 덥혀지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는 호흡이 가빠지고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해서 슬슬 더워진다. 운동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오리털외투를 벗을 수밖에 없다. 한결 가벼운 차림으로 차가운 공기에 시원함 마저 느끼며 마지막 계단 오르기는 거친 호흡과 함께 땀이 송글 솟아난다.


계단 오르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운동효과로 처음에는 상쾌한 기분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헤친 옷을 꼭꼭 여밀 수밖에 없다. 서슬 퍼런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가 대기 먼지도 얼려버렸는지 깨끗한 창공이 펼쳐졌다. 햇살이 밝게 비치지만 보기에만 따스할 뿐 음지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확실하게 춥다. 털장갑을 끼었지만 손이 시리다.


낙엽이 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은 멧비둘기도 제 머리를 깃털 속에 파묻고 있다. 거리의 행인들은 두꺼운 옷과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한 채 눈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공손한 태도로 종종걸음이다. 그 모습이 마치 절대 군주에 온전히 복종하는 신하들 같다. 추위의 전횡으로 만물이 덜덜 떠는 중이다.

겨울이 와도 추위를 자주 겪지 않다 보니 당연한 추위를 불편하고 이상한 일로 받아들인다. 겨울은 말 그대로 추운 것이 정상이다. 추워야 겨울다운 것이다. 자연의 시계에는 추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따뜻한 겨울이 되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봄이 되면 해충들이 들끓게 된다. 식물은 추위를 견뎌야 꽃을 피운다. 이상기후로 인하여 갈수록 제대로 된 계절의 날씨를 만나기가 힘들다. 상인들도 겨울이 춥지 않으면 울상을 짓는다. 겨울제품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추운 것이 겨울답다는 생각에 우리 삶을 돌아본다. 사람들이 자기 본분과 역할을 다할 때 자기 다운 삶이 된다. 자기답지 않은 삶은 껍데기의 삶이요 심하면 다른 이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을 상실한 삶에서는 의욕을 느낄 수 없고 참된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고 그에 맞는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게 된다. 북극에 인접한 나라에서는 추위를 오히려 즐긴다. 그들은 아무리 추워도 얼음을 깨고 입수하냉욕을 한다. 참으로 호쾌한 기상을 지녔다. 우리도 추위에 너무 움츠리지만 말고 겨울다운 겨울을 반갑게 맞을 일이다. 

#에세이 #강추위 #겨울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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