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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an 24. 2024

맛있지! 봄동 겉절이와 꼬막

누님을 맞아 함께 즐기는 겨울의 별미

미국에 사시는 큰누님이 갑자기 우리 집에 오셨다. 그간 누님은 제주도와 전북 진안에서 장기 휴가를 보냈다가 최근에 분당에 있는 조카네에 머물렀다.  3개월을 보내고 출국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 집에도 들르게 된 것이다.


칠순을 넘어 선 누님은 최근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이었고 요양이 필요해 한국에 오셨다. 누님은 작은 누이와 시골에서 함께 지내며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술 후유증으로 힘들어하신다.

오전에 갑자기 집에 오겠다는 누님의 연락을 받고 아내와 나는 바빠졌다. 누님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집안 정리와 식사 준비다. 동생인 나는 누님의 방문이 그저 반갑고 좋지만 아내는 시누이기에 아무래도 부담이 되고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모양새다. 눈치가 빠른 나는 알아서 청소를 하고 장을 보겠다고 했다. 아내는 출근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누님은 나와 비슷한 식성을 가졌다. 부친의 식성을 같이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싱싱한 채소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육류보다는 어패류를 더 찾는다. 나도 그렇지만 누님은 특히 꼬막에는 진심이다. 계속 먹어도 질려하는 법이 없다. 미국에서는 꼬막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다.


은퇴를 한 요즘 나는 늦잠을 자는 일이 많아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이 다되어 아점을 먹는다. 아내가 오늘은 청국장을 끓였다. 평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만 오래간만에 오시는 누님 접대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간단히 장을 보러 나갔다. 봄동과 꼬막을 사러 인근 마트에 갔다.


봄동은 겉절이로 꼬막은 데쳐서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


겨울에 들어서면 가장 반가운 식재료가 봄동이다. 한겨울을 거치며 파릇파릇하게 자란 싱그러운 봄동은 단단한 육질로 식감이 좋고 달고 고소하다. 봄동은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즉석에서 생으로 무쳐내는 겉절이다. 봄동은 데쳐서 나물로도 좋고 된장국을 끓여도 맛있다. 쌈으로도 그만이다.


아내는 요리를 아주 잘한다. 시누이들이 요리에 저마다 일가견이 있는 데, 아내의 겉절이는 그녀들에게 맛있다는 인정을 받았다.


봄동 겉절이는 싱싱한 것을 골라 깨끗하게 물로 씻어서 먹기에 적당하게 손으로 다듬는다. 그리고는 양념장을 만든다. 매콤한 태양초 고춧가루에 액젓을 넣고 마늘과 생강을 다져 넣는다. 양파와 파를 잘게 썰어 양념에 더한다. 그리고는 다듬은 채소를 양념장에 버무리면서 깨와 참기름을 더하면 끝이다. 아삭하고 고소하고 매콤하며 짭짤한 겉절이가 완성된 것이다.


꼬막도 삶는 기술이 있다. 적당히 삶는 일이다. 너무 많이 삶으면 꼬막살이 쪼그라들고 질겨진다. 너무 덜 삶으면 비려서 먹기가 힘들다. 내가 워낙 꼬막을 좋아하다 보니 아내는 꼬막 삶기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꼬막을 잘 삶는 요령은 일단 꼬막을 빡빡 씻어서 따로 둔다. 그리고 넉넉한 그릇에 물만 붓고 먼저 끓인다. 물이 팔팔 끓기까지 기다렸다가 끓게 되면 꼬막을 집어넣는다. 꼬막 투하 후에는 저어야 하는 데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해야 한다. 꼬막이 한두 개 정도 입이 벌어지면 곧바로 꼬막을 끓는 물에서 건져낸다. 뜨거울 때 이렇게 삶은 꼬막을 바로 까서 먹으면 꼬막 특유의 고유한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 아내는 출근을 하고 난 후 누님이 오셨다. 하필 가장 추운 날 먼 데서 오는 방문이라 오는 길이 고생스러웠을 것이다. 그 와중에 누님은 내가 좋아한다고 센베과자와 쌀로 만든 빵을 한 아름 안고 오셨다.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묻고 바로 식탁에 앉았다. 크게 준비한 것은 없지만 누님 기호에 맞춘 음식이라 즐거운 마음이었다. 잡곡밥에 청국장과 봄동 겉절이, 삶은 꼬막, 김장 김치, 무친 명란젓이 오늘의 메뉴다. 누님은 당연하게 꼬막에 먼저 손이 갔고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다행히 꼬막은 싱싱했고 적당히 삶아져 식감도 딱이었다. 봄동 겉절이도 똑같은 감탄을 불렀다. 누님과 함께 먹는 나도 아주 맛이 있었다. 한 접시 가득 담은 겉절이가 금방 사라졌다. 꼬막도 빈 껍데기만 남았다.



혈육은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하다. 장성해서 각기 일가를 이루고 살며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만남에는 늘 살뜰한 정이 흐른다. 연로한 누님이 노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처럼 누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자주 대접해드리고 싶다. 지금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순간이라고 한다. 기회는 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오늘 아침에도 누님이 좋아하시는 꼬막을 사러 가야겠다. 꼬막에 즐거워하는 누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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