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을 만났다. 그의 화업을 시작부터 시대별로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다. 현장에서 실감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2023년 9윌부터 시작된 전시회가 거의 막바지(2024/2/12일까지) 임에도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오늘은 더군다나 평일임을 감안한다면 뜨거운 열기라하겠다.
추위가 한창인 날, 숲해설가 동기들과 덕수궁에 있는 나무를 돌아보고 마지막 일정으로 전시회에 들렀다. 기대와 흥분이 되었다. 장욱진(1917~1990) 화백은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편안하고 친근하고 평화롭고 유쾌하고 자유롭다. 그는 '서양화를 기반으로 했지만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하면서 서로 간 무리 없이 일체를 이룬' 작가다.
확실히 그의 작품에는 화폭이 유화물감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지만 동양화처럼 여백이 느껴진다. 소재도 민화적인 요소를 띠고 있어 서양화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구성도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다. 형태도 단순하다. 그래서 혼란스럽지 않다. 가식도 군더더기도 없다. 순진무구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작품은 졸박하지만 격조가 흐른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잡다한 얼룩과 찌꺼기들이 많다. 기쁨, 슬픔, 욕심, 집념들이 겨서 열병처럼 끓고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지워간다. 다 지워내고 나면 조그만 마음만 남는다. 어린이의 그것처럼." 그의 고백처럼 순수함만 존재하는 그림이 우리 앞에 가득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간결하면서 향토색 가득하고 어린아이 그림 같고 우화 같은 그의 작품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번 본 사람들은 다른 작가들과는 구별이 되는 독특함으로 각인이 되어 그의 작품들을 기억한다. 예전에 아내는 그의 작품을 보고 졸라맨처럼 보인다고 했다. 어린이 그림 같아서 자신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다고 했었다. 그만큼질박하다.
시대별로 다양하게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은 그의 작품세계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 번 전시회는 그를 확실히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도슨트의 자세한 해설이 있어서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해설을 온전히 다 들을 수 없었다. 듣는 관람객이 많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작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려는 개인적인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전시는 시대별로 다음과 같이 4개의 전시장으로 기획되었다.
1. 첫 번째 고백 /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
2. 두 번째 고백 /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
3. 세 번째 고백 / 진진묘(眞眞妙)
4. 네 번째 고백 /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고백
전시실에 입장하자마자 만나는 작품은 엽서 크기의
자화상으로 1951년 고향인 충남 연기에 들를 때 그린 그링이다. 그가 마음의 평안을 누리던 시기였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갱지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 비싼 테레빈유 대신 석유를 썼다. 이 시기에 미친 듯이 작품에 몰입하여 작품을 많이 남겼다. 황금빛이 일렁이는 보리밭 사이로 프록코트를 입고 가는 한가로운 길에 개와 까마귀가 뒤따르는 평화가 넘치는 작품이다.
어느 작가든지 시대별로 화풍이 변한다. 장욱진 화백도 예외는 아니지만 "지속성과 일관성"이 그의 주요한 특징이다. 소재와 주제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천착했던 나무와 까치, 해와 달 그리고 집과 가족은 한결같이 등장하는 테마다. "까치는 그의 분신과 같은 존재였고, 나무는 온 세상을 품는 우주였으며,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로서 결국 모든 것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까치는 격식에 치우침이 없으며 욕심이 없고 굴레를 벗어버린 자유로운 그를 닮았다. 원만하고 넉넉한 나무는 그가 사랑했던 자연의 품을 연상시킨다. 가족이 다정하게 머무는 집은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극진히 사랑했던 따뜻한 성품을 보여준다. 그가 애정을 가졌던 작품도 가족이다.
가족
일단 그의 그림들은 친근하다. 평범한 일상의 소재가 주는 특징이다. 많은 색을 쓰고 있지 않으면서도 고상하고 부드럽고 편안하며 풍부하다. 단순한 구도와 형태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걸쳐있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면으로는 실경이 아닌 심상을 표현함으로써 높은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경향은 묵화를 통해 최고조에 이른다.
크기가 대부분 소품이지만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다. 작품 사이즈가 작은 이유는 작가가 주로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그렸기 때문이란다. 작품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런 소탈함에 있는 것 같다.
장욱진 화백은 철저한 삶으로 4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다. 그만큼 작품에도 철저했다. 새벽을 사랑했으며 고요와 고독 속에서 집중해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담아냈다. 그의 예술의 정수가 펼쳐진 향연을 누리는 행운을 만났다. 정신이 고양되는 기쁨이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