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석진 Feb 01. 2024

축구가 그렇게 흥분할 일이야?

축알못의 아시안컵  16강 관람기

어제는 밤을 꼬박 새웠다. 맨 정신으로는 쉬운 일이 아닌데 아시안컵 축구 경기가 그렇게 나를 만들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나는 상당히 심각한 국수주의자 같다.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강박적인 사고가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 애국의 발로다.


나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마니아는 아니다. 그러나 국가 대항 경기의 경우에는 거의 덕후 수준이 된다. 평소 쉽지 않은 몰입이 저절로다. 그런데 문제는 지나치게 흥분하면서 보는 데 있다. 경기야 이기고 질 수 있는 것이고, 실력 차이가 있으면 당연히 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를 대표해서 뛰는 경기는 그런 사고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어제 사우디아라비아와 16강전은 시작부터 시원스럽게 경기를 이끌어 가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것이 답답한 경기였다. 우리 축구가 한동안 믿음직스러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대 최강의 선수 조합인데도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졸전을 펼치는 것이 정말 답답했다. 선수들의 실수는 곧장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냥 봐줄 수 없어 사정없는 지적질이 이어진다. 그런 심한 힐난에 아내와 아이들은 경기를 당최 나와 같이 볼 수가 없다고 짜증을 낸다. 큰소리도 듣기 싫고, 부정적인 언사도 싫단다. 자신들도 기분이 덩달아 나빠진다나 뭐라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만히 봐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참을 수 없다. 유럽리그에서 펄펄 나는 선수들이 국대로 와서 뭉치면 왜 오합지졸이 되고 완전히 소극적으로 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못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더욱 가혹하다. 예를 들면 공만 잡으면 뒤로 돌리거나 질질 끌다 공을 뺏기는 선수는 정말로 봐주기 어렵다. 마치 공이 무서워 면피용으로 얼른 다른 선수에게 무책임하게 줘 버린 것 같다. 백 패스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너무 위험한 상황이 자꾸 연출이 되어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축구에서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스트라이커들이 왜 슛을 날리지 못하느냐 하는 점이다. 개인기가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수많은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 자꾸 무엇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유효 슛을 만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기회가 찾아와도 무위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될 성싶지도 않은 패스를 건네서 슛 한 번 제대로 날려 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공을 빼앗기는 경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수비  밀집 시에는 일단 골대로 공이 들어가야 득점의 기회가 오는 데, 적진 앞에서 어영부영하다 공격권을 헌납하는 아쉬운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더구나 기회가 올 때는 과감하게 질러야 하는데 돌리다 스스로  무너진다. 어쩌다 찬스가 오면 헛발질은 왜 그렇게 잘하는지 울화통이 터진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공을 발로 차는 일일 텐데 말이다. 왜 기회가 오면 하늘로 차거나 골대 밖을 향하여 내지르느냐 는 것이다.


어제 같은 경우에는 사우디의 골키퍼가 거의 미친 선방쇼로 결정적인 슈팅을 모두 다 막아냈다. 공이 골대를 왜 그렇게 외면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런 반면에 우리가 실점하는 것은 정반대다. 한순간에 간단히 먹히는지 정말 기가 차다. 후반 시작되자마자 한 골을 헌납하고 후반에 그렇게  골문을 두드렸음에도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으로 정규시간이 다 흘러갔다. 질게 뻔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실망으로 인해 입술이 마르고 흥분으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부랴부랴 냉수를 찾아 들이켜야 했다.


그러나 공은 확실히 둥글다. 패색이 완전히 짙어진 연장 종료 1분 전에 정말 기적 같은 동점골이 터졌다. 극장골이 터지니 새벽임에도 기쁨에 광분을 했다. 소리를 냅다 질렀다. 아내가 시끄럽다고 타박이다. 그 여세를 몰아 연장전에서 당연히 이길 것으로 보였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정적인 기회에 미친 선방이 이어지고, 절대적인 찬스에 이해할 수 없는 양보의 미덕이 발동하여 기회를 날렸다. 게다가 실점의 위기를 맞아 정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 바라지 않았던 승부차기의 피 말리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키커들의 득점을 목도해야 했고 골키퍼의 선방을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상대의 슛을 봐야 했다. 그러다 믿기 어려운 승리가 주어졌다. 드라마틱하고 기막힌 승부였다. 그 좋은 자원으로 이렇게 힘든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했지만 이겼다는 것이 어디인가! 그렇게 새벽을 꼬박 새웠다.

축구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궤변과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남을 비난하는 일이다. 그런 비난을 경기 내내 퍼부었다. 돌이켜 보니 좀 창피하다. 내가 다혈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열광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지만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절제할 필요가 있다. 뛰는 선수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누군들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며 속 시원하게 뛰고 싶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말처럼 쉽다면 누가 못하겠는가? 경기는 이기고 질 수 있다. 죽고 사는 전쟁이 아니다. 차분하게 경기를 즐기고 싶다. 마음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에세이 #축구 #아시안컵 #16강전 #관람기 #역전 #승리 #열광 #사우디아라비아

매거진의 이전글 1초가 길다는 것을 체험해 보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