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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Feb 23. 2024

폭설에도 꽃은 피었구나!

폭설을 뚫고 피어난 꽃송이를 만나는 기쁨

춘설

봄기운 완연하여
가는 겨울 손 놓으니


미련이 봇물 되어
폭포처럼 쏟아지네


시샘을 아무리 한들
피는 꽃을 어쩌랴


영춘화

감격에 겨워 시조를 한 수 읊었다.


한동안 날씨가 풀려 봄의 기운이 어렸다. 연이어  봄을 재촉하는 비도 내렸다.  겨울이 그냥 물러가기가 섭섭했는지 미운 짓을 벌인다. 찬바람이 불더니 수은주가 곤두박질 했다.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다시는 후회하지 않을 듯이 폭설을 퍼붓는다. 근자 들어 가장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변해 버렸다.


오늘은 숲해설 동기들과 나무를 찾아 기행 하는 목요일이다. 서울역 인근의 서울로 7017 공원을 찾았다.


집을 나서자 순백의 풍경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시간에 맞춰 모임 장소에 가느라 마음이 바빴지만 환상적인 눈앞의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곳저곳을 사진에 바쁘게 담았다.  정말 풍성한 눈이 내렸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다. 나무들은 눈폭탄을 맞아 힘에 부쳐 가지가 휘어졌다. 관목들은 밍크코트를 두른 듯 우아하다. 훤칠한 소나무의 푸른 잎 위로 흰 눈이 겹겹이 쌓인 풍경은 동양화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한 폭의 그림이다. 놀이터의 알록달록한 원색의 색감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무채색을 배경으로 선명하다.

풍경에 취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철역에 들어섰다. 폭설로 운행중단 구간이 있다는 방송이 들린다. 다행히 도심으로 가는 편은 정상 운행이다.


동기들을 만나 서울로 공원에 갔다. 나무와 화분과 거리가 눈 속에 파묻혔다. 친절하게도 대부분 식별표를 부착하여 나무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어 좋다. 나목들이 동면에서 여전히 취한 듯 보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봄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꽃눈과 잎눈이 가지마다 매달려 있고 깨어날 준비 중이다. 잎이 없는 겨울에는 수피와 가지에 달린 투리가 겨울나무의 동정포인트다. 하지만 식별이 어려운 것은 특징이 한결같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수종이라 하더라도 외형이 상이한 경우가 다.

생강나무

살짝 녹았는지 눈이 아주 잘 뭉쳐진다. 눈싸움을 하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한다. 눈을 뭉쳐 아무에게나 던져 본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 세게 던지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툭 건드릴 뿐이지만 상대방은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내친김에 작은 눈사람도 하나 만든다. 눈 오는 날의 즐거움을 누린다.

무궁화 꼬투리에 영국근위병 털모자
쥐똥나무 열매

잎이 진 나무들과 상록수들의 차이가 확연하다. 언제나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아이들은 느긋해 보인다. 세상을 달관한 모습이다. 반면에 벌거벗은 나무들은 안쓰럽다. 잎도 틔워야 하고 꽃도 펴야 하기에 바쁘다. 불공평한 것 같지만 좋고 나쁜 것은 없다. 다를 뿐이다. 나목에 움이 돋고 꽃눈이 벙그는 감동을 상록수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눈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멈춤이 없다.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이다. 가지 끝에 붉은 꽃눈이 알알이 맺혀있다.  보는 이의 가슴에 봄바람을 불어넣는다. 보는 동안 꽃눈처럼 가슴이 부푼다. 꽃이 피어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매화에도 여린 녹색 화피 속에 흰 속살 같은 꽃이 살포시 안겨있다. 산수유도 이에 질세라 노란 속살을 슬쩍 드러내 보인다. 눈이 와도 나무들은 제 갈길을 씩씩하게 가고 있는 중이다.

홍매
매화
산수유

기쁘게도 눈 속에서 꽃을 만난다. 푸른 가지 끝을 붉게 물들인 꽃눈 사이로 앙증맞은 영춘화가 보란 듯이 피었다. 보자마자 와하고 탄성이 인다! 우중충한 무채색의 배경을 노란 원색이 발랄하고 상큼하다. 씩씩한 모습에 당당함 마저 느껴진다. 히어리도 뒤질세라 꽃눈이 벙글어 꽃 형태를 갖췄다. 노란 병아리 같은 꽃이 피지만 아직은 연초록 빛을 머금고 있다.

영춘화
히어리

이미 만개해 버린 꽃도 있다. 풍년화가 그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꽃의 자태가 아니다. 마치 종이 오리기를 해놓은 것처럼 꽃잎이 갈래갈래 찢어진 모습이다. 노란 꽃은 지단 같다. 한꺼번에 모여 있으면 총채처럼 보인다. 벌써 풍성한 꽃이 지고 있는 모양새다. 가장 이른 봄의 전령이 매화인 줄 알았는데 풍년화가 더 일찍 핀다는 것을 올해 처음 알았다. 풍년화의 종류가 다양하다. 붉은빛을 머금거나 작은 꽃도 있다. 저마다 특색 있게 피어나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꽃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풍년화

눈 속을 걷다 보니 발끝이 얼었다. 맨손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서 손도 곱았다.  한겨울의 중심에서 약동하는 봄을 만나는 기쁨을 맛본다. 어려움 속의 인내가 귀하듯 겨울을 이겨낸 꽃들이 감격스럽다. 몸은 한기를 느끼지만 마음은 포근하고 생기가 돈다. 초록이 물들어 지쳐나고 온갖 꽂이 만발한 봄이 절실하게 그립다.


#폭설 #봄 #꽃 #영춘화 #산수유 #매화 #히어리 #생강나무 #서울로7017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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