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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r 14. 2024

봄꽃을 만나는 기쁨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꽃들

봄을 맞는 가장 큰 기쁨은 두 말할 것 없이 꽃을 만나는 일이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무채색의 계절에 원색의 생생한 꽃들은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잠든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겨우내 움츠렸던 우리의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감돌게 다. 삼월에도 대부분 늦깎이 나무들은 여전히 겨울 그대로 머물러 미동도 없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부지런한 식물들은 일찍부터 단장을 마치고 새로운 계절의 문을 온몸으로 열고 있다.

풍년화

올해 가장 먼저 만난 꽃은 풍년화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2월 6일 추운 한겨울에 올림픽 공원에서의 일이다.  

그때의 감격이란!

화려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꽃이었다.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여느 꽃과는 다른 자태의 꽃이 지난가을의 낙엽을 그대로 단 채 가지마다 소박한 꽃을 폈다. 언뜻 봐서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풍경이다. 한참을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풍년화

그 후로 산수유가 노란 물을 들이며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여기저기서 목도했다. 매화도 뒤따라 꽃눈이 통통해지고 붉은빛이 감돌지만 개화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월 22일에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서울로 7017 공원에서 눈 속에 핀 영춘화를 영접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솜털 같은 순백의 눈 속에서 붉은 꽃망울이 맺힌 사이로 눈부신 노란 꽃을 발견했다. 한 송이가 아니다.  눈을 이불 삼아 당당하고 씩씩하게 피었다. 기특한 모습에 감동은 덤이다.

산수유/매화
영춘화

삼월 들어서 매화가 피어나기를 고대하며 집 근처 의릉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매화가지에는 여전히 꽃망울만 보였다. 3월 8일에 아내와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려 배봉산 둘레길을 찾아가다 활짝 핀 영춘화를 만났다. 장소는 도심 도로가에 볕이 좋은 길목이다.  제철을 만난 듯 풍성하게 꽃이 피었다.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만남이 주는 기분 좋은 순간이다. 그렇게 계절은 봄을 향해 달음질 중이었다.

영춘화

3월 9일에는 친구와 한강 자전거 라이딩을 나갔다. 몇 년 방치되었던 자전거를 부랴부랴 손을 봐서 나선 길인데 엉덩이가 쓸려 아프기는 했지만 강변을 달리는 시원함으로 아픔을 잊었다. 뚝섬을 다녀오는 길에  풀숲에 핀 개불알꽃을 발견했다. 선명한 보랏빛이 생글거리는 아주 귀여운 대표적인 봄꽃이다. 양지바른 곳에 무더기로 피어난다. 개불알꽃이 주는 인상은 마치 꽃들이  봄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회양목에도 꽃이 달렸다. 꽃빛이 초록빛에 가까운 노란빛으로 얼른 봐서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귀엽고 앙증맞은 꽃이 보인다. 소박한 꽃에 비해 의외로 향기가 그윽하고 상쾌하다.

개불알꽃
회양목 꽃

라이딩을 마치고 몸이 곤하기는 했지만  집에서 홀로 쉬고 있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후에 함께 홍릉으로 나들이를 갔다. 꽃을 찾아 나서는 길에 겨울이 여전히 남은 황량한 꽃밭에 명이나물이 푸릇푸릇 자라나 봄기운을 풍긴다. 한쪽에는 복수초가 피었는 데, 꽃빛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사진에 담았다. 그 곁에는 앉은부채도 꽃을 피웠다. 그 꽃은 마치 종이를 접은 모습으로 꽃보다는 공예품 같다는 느낌이다.

명이나물
복수초/앉은부채

홍릉숲 속을 지나는 길인데  사잇길에 사람들이 웅성 인다. 아마도 꽃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도 그리로 갔다. 반갑게도 함께 숲해설을 공부한 분이 있었다. 그는 홀로 책을 들고 식물 공부를 하러 온 길이다. 그곳에 길마가지나무 꽃이 피어 있었다.  너무 작고 여린 꽃송이가 달려있는데 놀랍게도 이미 지는 중이었다. 노란빛을 살짝 머금은 흰빛으로 향내가 아주 달콤하고 진하다. 꽃을 찾아낸 분들의 열정이 놀랍다. 왜냐하면 꽃이 아주 작은 편으로 모양도 색깔도 눈길을 끄는 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에  복수초를 다시 찾아갔다. 처음 발견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복수초가 만발하고 있었다. 촘촘한 그물무늬의 잎들도 푸르고 샛노란 꽃빛이 선명한 복수초가 소담스럽게 피었다. 생기발랄한 자태를 눈에 실컷 담는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봄꽃을 만난 기쁨이 솟구친다.

길마가지나무꽃
복수초

겨울이 가는 길목에 날마다 새로운 봄꽃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새로 꽃들을 맞이마다 마음에 등불이 하나씩 켜지는 같다. 꽃은 우리의 기운을 진작 시키고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천변에 튤립이 새싹을 힘차게 틔우고 있다. 머잖아 화려한 꽃들의 향연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눈부신 시간을 향해 계절은 천천히 제 걸음을 걷고 있다. 나 또한 새로운 계절로 몸과 마음을 갈아입는 중이다. 봄은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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