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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y 04. 2024

미당 시문학관에서 서정주를 만나다

 고창 미당 시문학관 탐방기

책사랑 동호회 회원들과 문학관 탐방을 했다. 전북 고창에 위치한 서정주 시인의 미당 문학관이다. 지식은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진실한 감성과 감동은 몸으로 직접 겪을 때 깊이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서 책으로만 알던 미당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탐방을 통해서 두리뭉실하게 알았던 큰 시인의 자라온 배경과 그가 지녔던 꿈과 깊은 속내를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의 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입구의 히말라야시다
시문학관 내부

미당 시문학관은 봉암초등학교 선운 분교를 개보수하여 조성한 공간이다. 건축가 김원이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계했다. 뒷산의 소요산과 앞 쪽 바다를 닮은 전시동이 너른 잔디 운동장을 앞에 두고 단정하게 자리 잡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인상이고 널찍해서 푸근하고 정겹다. 수직으로 솟은 전시동 벽면에는 담쟁이덩굴이 푸르게 자라고, 문학관 입구에는 시인의 위엄을 상징하듯 말라야 시다 한 그루가 우람하게 서 있다. 이곳은 시인의 고향마을이고 좌우로 생가와 묘소가 있으며 그의 4천여 점의 유품이 소장 전시되고 있다. 그의 시와 사진도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어 이곳이 진정한 시인의 집이자 시인의 학교다.

문학관 풍경

꽃피는 것 기특해라 / 서정주

 

봄이 와 햇빛 속에 꽃피는 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피는 것 기특하여라. 


그가 지녔던 삶의 진실한 모토는 '만족 없는 탐구' 자세다. 미당이란 호의 의미도 '덜 되어 부족하다'는 뜻을 가졌다. 작가 자신은 이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 자신도 치열하게 살았다. 15세부터 시작하여  무려 70년 동안 시를 썼고 그 결과 1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겸손한 태도를 본받고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몸은 늙어가도 누구나 마음만은 젊게 살고 싶다. 나도 시인처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적인 호기심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영산홍 / 서정주


영산홍 꽃 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넘어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시인의 시는 토속적이고 애틋하며 향토색이 강하다. 그리고 절절하다. 사람이 자라난 환경과 배경은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질마재는 시인의 감수성의 원천이 되었고 이야기꾼이었던 외할머니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자신의 자작시에서도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밝혔듯이 푸근하고 정겨운 자연은 그의 작품의 모태였다. 가족들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도 놀랍다. 자신의 시에 자주 등장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도 곡기를 끊고 두 달 반 만에 하늘로 떠났다. 절절한 사랑의 시가 쓰인 이유다.

미당 고향 뒷동산


신록 / 서정주


어이 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나-ㄹ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떠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폴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내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전시관에 전시된 사진들을 통해서 시인의 예술적인 풍모를 느낄 수 있었고 그의 많은 대표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필로 쓴 시를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말년에는 인지장애를 겪지 않기 위해 세계적인 산 이름을 전부 외우고 이를 반복해서 복습했다고 한다. 철저하게 자신을 지킨 시인의 의지도 놀랍다. 그의 유품들 중에 낡은 흰 고무신이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미당의 삶의 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좋아지면 그와 연관된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된다. 그곳에서 느꼈던 소회를 시조로 써보았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마음이 풍요로워진 시간이다.


미당 시문학관에서 / 정석진


미당을 키운 바람

질마재에 여전한데


만족 없는 탐구 정신

칠십 해 진력했네


시심은 창공을 날아

일 천여 탑 쌓았네.


#미당시문학관 #서정주 #탐방 #고창 #시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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