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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Jul 31. 2024

한여름도 즐기기 나름

무더운 한여름이 선사하는 여름의 맛

무덥고 습한 여름이다. 몸이 축 처지고 늘어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시원한 실내에서 드러누워 쉬는 것이 최고인 듯하다. 우리 강아지도 하루종일 여기서 뒹굴 저기서 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털옷을 입고 여름을 나려니 얼마나 힘들까? 재미있는 건 강아지가 서늘한 곳을 귀신같이 찾아낸다는 것이다. 요 녀석이 애용하는 장소는 어이없게도 신발을 벗어 놓는 출입구 대리석 바닥이다. 바깥에서 밟고 온 먼지 투성이 공간을 애용해서 그렇잖아도 털이 많아 관리가 어려운 때 쉽게 더러워지니 아주 죽을 맛이다. 그래서 아내는 그곳을 걸레로 닦고 밟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주의하기가 어렵다. 이래저래 여름 나기가 만만치 않다.


요즘은 올림픽 시즌이어서 스포츠에 열정적인 나는 늦게까지 TV를 보곤 한다. 그래서 늦잠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잠을 드는 동안에는 잘 깨지 않는다.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내가 출근하지 않은 날이라 함께 근처의 삼태기숲을 걷기로 했다. 한참 운동에 열심인 데다 맨발 걷기의 매력에 푹 빠진 아내를 위해 귀찮은 마음을 떨치고 기꺼운 마음으로 나섰다. 부지런을 떨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늑장을 부리다 보니 해가 중천에 떠올라 태양열이 뜨겁다. 이른 오전에 나서면 조금은 시원할 것을 낮이 다되어 밖을 나서서 치르는 값이다.

삼태기숲

시민들의 쉼터로 도심공원의 역할은 매우 크다. 삼태기 숲은 홍릉수목원의 일부분으로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숲이다. 높지 않은 산을 품고 있어 개울물은 비가 내린 후라야 냇물이 흐른다. 오늘 찾아가니 장마 끝이라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생겨났다. 사람들의 때가 타지 않은 곳이어서 물은 정말로 깨끗하다. 작은 개울이지만 모래로 덮여있어 들어가 걷기에 그만이었다. 아내는 맨땅을 걷고 나는 개울물에 들어가 모래톱을 걸었다. 거친 모래라 발바닥이 아프긴 해도 걸을만했고 시원한 물길이 상쾌했다. 좁은 공간이어서 조금 걷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웅덩이에 정강이까지 물에 담그니 청량함이 몸을 감싼다. 옛 선비들이 피서를 즐기던 탁족이다. 도심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독서하기에 그만이라 책을 꺼내 읽었다. 시원한 데다 읽는 구운몽도 자못 흥미로워서 책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그런 나를 보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고 놀리신다. 하필 읽고 있는 책도 구운몽이다 보니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되는 느낌이다. 생각 같아서는 냇물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름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눈부신 태양과 푸른 녹음 그리고 강렬한 매미의 울음으로 대변되는 여름의 소리가 드높고 활기가 넘치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 바로 여름이다. 무더위라야 계곡의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한예종을 거쳐오며 한여름의 장관을 만났다.


작은 연못이지만 정자가 있는 운치 있는 공간이 있다. 소나무가 푸른 가지를 드리우고 배롱나무가 붉은 꽃망울을 힘껏 터뜨리며 연못 주위를 감싸고 있다. 연못에는 꽃창포가 수직하고 선 아래 수련이 둥근 잎을 양탄자처럼 드리우고 고운 꽃들이 수놓고 있다. 빽빽한 잎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푸른 하늘이 걸려있다. 키 작은 백일홍도 목백일홍에 질세라 일제히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눈을 매혹시키는 풍경은 한여름이 선사하는 선물이다.

싱그러운 풍경이 더위를 몰아낸다. 덥다고 실내에만 머무른다면 여름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어렵다. 냉기에 몸만 더 처질뿐이다. 여름에 더위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더위를 헤치고 밖으로 나서서 한여름을 대면해 보자. 여름에 땀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접 부딪혀 봐야 여름이 품고 있는 특별함을 맛볼 수 있다. 꼭 휴가철이라야 여름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땀을 흘리고 나서 차가운 물에 샤워하는 쾌감을 어디에 비할까? 덥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름에 지지 않고 즐기는 용기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집에 돌아와 찬물에 샤워하고 에어컨 켜고 드러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여름 #무더위 #숲 #연못 #한예종 #삼태기숲 #탁족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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