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 3일째 시차때문인지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더 자보려고 누워있는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누나들을 깨워 Alameda beach로 맨발 걷기를 하러 갔다.
미국 땅에 들어와 처음 몸으로 느끼는 바다다. 부드러운 해안선을 가진 바다는 여전히 꿈꾸는 중이다. 검은 바다 건너 더 시커먼 건물에 야경처럼 불빛이 반짝인다. 동트기 전 바닷가는 한적하다, 잠든 바다가 고른 숨을 쉬듯 잔물결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며 철석거린다.
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해변의 모래 입자가 곱다. 부드러운 모래의 차가운 촉감이 몸을 깨운다. 물이 뭍으로 들어와 몸을 푼 바다는 잔잔하다. 어둠을 헤치며 캐나다 거위 서 너 마리가 물을 지친다. 평온한 풍경에 마음도 편안해진다. 여전히 반짝이는 건물불빛이 아직은 아침이 밝지 않았다고 나직이 읊조리는 것 같다.
해변에는 해조류들이 밀려와 해조더미가 마치 바위들이 흩어져 있는 것 같다. 밟아보면 쿠션이 있는 방석 같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꼬시래기로 알려진 해조류와 비슷하다. 파도가 없다시피 한대도 해변에 밀려와 널려 있는 것이 신기하다.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새들이 꼬리를 물고 지나간다. 생각보다 많은 조류들이 해변 주위에 서식하고 있는 것 같다. 펠리컨, 거위, 갈매기, 기러기들이다. 작게는 다섯 마리, 많게는 십 수 마리가 떼를 지어 난다. 야생이 살아있는 현장이다. 자주볼 수 없는 생생한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대도심 곁인데도 이렇게 많은 새들이 오가는 것이 경이롭다. 그만큼 자연이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방증이다.부러운 마음이 인다.
바닷물이 미지근하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발목에 감기는 잔잔한 파도가 좋아 잠시 물길을 걸어본다.
서쪽 바다여서 일출은 보지 못하지만 동이 터오는 것은 알 수 있다. 주위가 밝아오고 희미한 형체들이 또렷해진다. 시간이 지나고 아무도 없던 호젓한 해변에 조깅하는 이들이 보인다. 조금 지나니 강아지와 산책하는 이들도 지나간다.한국과는 다르게 대형견이 대부분이다. 입마개를 하지 않아 겁도 난다. 부지런하고 건강하게 아침을 맞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흐린 날이어서 그런지 아침이 되었는데도 사위는 여전히 희끄무레하다. 보이지 않던 덤불숲도 선명하다. 송엽국이 붉게 물들어 가을이 찾아왔음을 전한다. 해변 끝까지 걷다가 돌아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유난히 붉은 꽃을 만났다. 병솔나무다. 붉다 못해 검은빛이 돌 정도로 강렬한 빛깔이다. 자세히 보면 브러시 같은 꽃모양이 꽃이름과 꼭 닮았다. 그런데 벌보다는 크고 새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새가 나타났다. 벌새다! 날갯짓을 1초에 최대 90회 한다더니 정말 그렇다. 마치 공중에 정지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날갯짓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의 경이를 직접 눈으로 보는 감격으로 가슴이 뛴다.
병솔나무
벌새
단순하게 산책을 하러 갔다가 살아있는 자연을 온몸으로 누렸다. 이곳이 샌프란시스코 교외라는 사실이 놀랍다. 자연과 이웃하며 사는 삶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안정을 가져다준다. 서울도 그렇게 변화되기를 소원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