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를 향해 달려가다 우연히 들른 해변 Pismo Beach! 캘리포니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끝 모를 수평선의 바다 태평양이 있다. 윤슬이 휘황찬란하다.
그간 잊지 못할 아름다운 해변을 많이 보았어도 오늘 다시 만나보는 바다는 또 새롭다. 야자수 잎이 늘어진 해변은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변화무쌍하게 변모하는 산을 지나 일직선 도로를 쉼 없이 달려왔다. 휴게실을 가려다 놓치고 마을이 나타나자 곧바로 핸들을 꺾었다.
화장실을 찾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지만 그 틈을 타서 나는 바다 구경을 나선다. 잠깐 주어진 시간이라 마음이 급하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나를 부른다. 바다는 손에 잡힐 듯해도 언덕을 내려가고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
뛸 듯이 걸어가는 발걸음에 바다에서 막 나오는 차림의 미국인이 반가운 미소를 건넨다.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바다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드넓은 백사장은 쉽사리 바다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바다만 한 번 보고 가려했지만 인어의 노래에 이끌리듯 걸음은 멈추질 않는다.
전면은 망망대해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큰 바위가 있고 그 뒤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하얀 절벽이 보인다. 그 위에 야자수가 수직 한 아래 호텔이 자리했다. 보기 드문 풍경에 눈길을 빼앗긴다.
반대편에는 목재로 층층이 쌓은 교각 구조물이 중첩된 선으로 현대 추상 미술 작품 같다.
해변에는 조가비가 널렸다. 이곳은 사람뿐만 아니라 갈매기도 주역이다.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파도가 밀리는 해변을 거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먹만 한 조개가 눈에 띄었다. 껍데기인가 했더니 웬걸 멀쩡하게 살아있는 조개다. 집어 들고는 너무 놀라 누이들을 소리쳐 불렀다. "누나 여기 조개가 있어요!" 뒤따라 온 아내와 누이들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그리고는 조개를 줍기 시작했다. 아내는 숨을 쉬는 조개를 발견하고는 모래를 팠다. 모래 밑에는 조개가 널렸다. 파고 파도 끝없이 조개가 나온다. 조개 담을 봉지를 가지러 재빨리 차로 뛰어갔다. 숨도 안 쉬고 갔다 왔더니 누이들이 엄청난 조개를 캐서는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 마구 던지고 있었다. 얼른 봐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조개 사태에 누이들은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큰 누이는 옷이 바닷물에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조개를 잡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왔는데 조개를 보고는 생리 현상도 꾹 참았다고 한다. 그러다 누이들이 조개를 집어던지는 것을 보고 너무 웃겨서 크게 웃다가 그만 옷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봉지에 조개를 정신없이 담고 있는데 새침하게 생긴 미국인 아가씨가 다가와 작은 조개를 잡으면 벌금이 만 달러라고 인상을 쓴다.
조개가 4인치를 넘는 경우에만 채취가 가능하다는데 괜히 문제를 일으킬까 봐 "잡은 조개를 다 돌려보내자"라고 누이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손맛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조개 해프닝은 막이 내렸다. 아쉽게도 수확은 없었지만 난생처음 실컷 조개를 캐보는 놀라운 경험에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차 안에서도 조개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잡은 것을 가져올 수 없는 아쉬움에 맛도 없는 개조개일 뿐이라고 서로를 위로하며 상실감을 달랬다. 인터넷에서 실제로 조개를 잡다가 88 천불 벌금을 냈다는 이야기에 우리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국 여행에서 잊지 못할 추억 하나를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