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난리다. 눈 감고 귀 막으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나라 밖은 더 심하다. 전쟁은 계속되고 지진에 산불에 조용할 날이 없다. 지난 비행기 사고로 수많은 사망자를 낸 재난은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안과 밖이 조용할 날이 없다. 요즘은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했다던 기우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의 가치가 치솟고 있다. 보통의 하루가 이제는 특별한 느낌이다.
지금 나는 은퇴를 한 시점이라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굴곡이 없는 단순한 매일을 살고 있다. 약속이나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주먹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스르르 하루가 사라진다. 자고 일어나는 것이 마음대로라 규칙적인 시간 사용이 어렵다. 해야 할 일이 없어서 느긋하다. 일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부러운 삶이다. 과연 내 삶은 그러한가?
물론 여유롭고 한가한 것은 사실이다.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은 분명 편안하고 자유롭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묘하다. 주어진 자유를 맘껏 누리기 힘들다.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매사에 의욕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많아지면 무작정 좋을 것 같아도 몰입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권태와 무기력이 스며든다. 바쁠 때 오히려 집중력이 생긴다.
불안과 강박은 삶을 까칠하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하면 할수록 커진다. 그리고 평생을 일하며 보낸 삶의 방식이 몸에 각인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부정적인 사고를 빚어낸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삶의 중심을 단단히 하고 살아내기가 어렵다. 어영부영하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부정적인 마음은 삶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끈다. 긍정의 사고가 필요하다.
나를 잡아주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와 운동이다. 사람들과의 교류도 한몫을 한다. 독서모임을 통해 고전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은 사유의 폭을 넓힌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돈하고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도전과 자극을 받는다. 이런 시간들이 내 삶을 충일하게 채운다. 보통의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갈 때 삶도 단단해진다.
오늘 나의 하루는 이렇다. 박경리의 토지와 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이야기를 읽었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로 나와는 다른 삶을 들여다 보고 꽃의 역사를 통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생각을 담았다. 느긋하게 누워 TV 드라마를 시청했고 운동으로 스쿼트와 푸시업을 270회 실시했다.
오랜만에 아내와 점심으로 외식을 했다. 초밥 뷔페에서 두 시간 동안 천천히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외식 후에 강아지와 산책을 했고 뱃살을 빼고 싶어 21층 계단 오르기를 다섯 번 반복했다. 땀이 나서 샤워를 했고 상쾌한 기분으로 앉아서 이 글을 쓴다. 나머지 시간은 부족한 독서와 TV 드라마를 볼 예정이다. 하루가 이렇게 간다. 보통의 하루도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아주 보통의 하루가 간다.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