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이어 벽돌책을 읽었더니 그 후 많은 분량의 책을 만나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돈키호테 1,2 권을 읽은 성취감이 비할 바 없이 컸던 것이다. 후속작으로 읽게 된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도 분량이 꽤 되는 책이었지만 앞선 경험들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첫 장부터 진도를 나가기 어려웠다.
일천 명 가까이 등장하는 신들과 인물들이 연이어 언급이 되니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았고 스토리마저 헛갈렸다. 물론 귀에 익은 이름들도 있었고 그들과 연관된 잘 알려진 내용을 만나는 낯익음이 많았음에도 숨 가쁜 느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타 다른 책들은 물처럼 스토리가 흘러서 읽기가 용이하지만 신화 하나하나는 독립된 단편 소설과 같아서 등장인물만큼 내용이 다양했기에 더욱 진도가 더뎠다.
서양의 많은 고전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책을 올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고전을 읽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독서의 기본이다. 더구나 이 책은 작가들의 작품에 인유 된 그리스 로마신화들을 찾아 그 글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이해와 인식의 폭을 넓혀 준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그리스 로마 신화이지만 동양과 북유럽의 신화까지 아우른다. 한마디로 신화의 백화점이다. 물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신화는 담지 않았다. 그지역의 신화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인식이 덜 된 까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화는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면서 자연 현상을 사람들의 시각으로 해석해서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사람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상황을 인간의 인식의 범위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깊은 사유와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질투와 오만 그리고 끝없는 욕망을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신들도 인간이 지니는 욕망을 똑같이 가졌다고 보았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관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의 끝없는 바람기와 그에 따른 아내 헤라의 질투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들이다. 그다음으로는 절세 미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는 역설적으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논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우리가 살아가며 여러 가지 사회현상을 설명하며 빈번하게 인용하는 프로메테우스, 판도라 상자, 미다스의 손, 피그말리온, 히아킨토스, 나르키소스, 이카루스, 트로이의 목마, 이라크네의 기원을 만나는 것을 들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역경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볼 수 있고 탐욕과 교만이 가져다주는 슬픈 결말도 목도할 수 있다. 또한 삶이 늘 계획대로만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신들의 개입을 통한 우연과 행운이 뒤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여야 한다. 그리고 진심과 정의와 겸손은 언제나 통하는 고귀한 가치임을 되새기게 된다.
"판도라가 뚜껑을 연 항아리에 담긴 수많은 해악들이 세상에 퍼졌지만 항아리의 맨 밑바닥에 있었던 그 한 가지는 바로 <희망>이었다. 제 아무리 악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도 희망은 결코 우리를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희망을 갖고 있는 한, 다른 질환이 제아무리 많아도 우리를 완전히 비참하게 만들지 못한다."
희망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금 마음판에 끌로 아주 분명하게 새긴다.
바우키스와 필레몬 "이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욕망의 절제와 친절한 성품을 통해서 가난을 충분히 견딜만하게 만들었다."
그들 부부는 다른 이들의 박대와 다르게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지친 여행자의 모습으로 분한 신들을 맞이하고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은 멸망에서 건짐을 받았고 소원을 빌 기회를 얻는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부부의 진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읽는 기쁨이 차오른다.
"저희는 당신들을 모시는 이 신전의 사제와 파수꾼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사랑과 화합 속에서 저희의 삶을 지내왔으므로, 하나의 그리고 똑같은 시간에 저희의 생명을 거둬 가시기를 원하나니, 그래야 아내가 먼저 죽어 제가 장례를 치를 일도, 거꾸로 제가 먼저 죽어 아내가 장례를 치를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판타지 소설의 소재가 되는 괴물들도 신화에서 차용된 것이라는 사실도 꽤 흥미롭다. 포이닉스, 바실리스크, 유니콘, 그리고 별로 등장하지 않는 살라만드라가 바로 그들이다.
그 이외에 조로아스터교 교리를 통한 페르시아의 신화도 흥미로웠고 베다에 근거한 인도의 신화 속에서 힌두교의 신들을 만날 수 있음도 신선했다. 그리고 붓다와 달라이 라마는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내용이지만 기독교 고위 성직자인 사제왕 요한이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다는 신화는 또 하나의 신기한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마블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고 여타 판타지 영화의 바탕이 되는 북유럽 신화의 세세한 내용을 보게 된 것도 큰 유익이다. 유명한 헨지 스톤이 고대 켈트 민족 종교의 사제인 드루이드의 제사 장소라는 사실도 이목을 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서양 고전을 접할 때 등장하는 신화의 인물을 찾아보고 그 기원과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번 읽는 것으로 그칠 수 없고 마치 사전처럼 곁에 두고 참조해야 하는 참고서다.
이 책은 서양 고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길라잡이인 것이다. 힘들게 독서를 했지만 책의 유익을 아주 길게 누릴 수 있다는 면에서 아주 유익한 독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