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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Apr 25. 2023

내 몸과 마음에도 봄비를 뿌리고 싶다

베란다 화분을 정리하며 마음을 다듬는 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막상 닥치면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듯 의지도 점점 옅어진다. 무엇이든 생각에만 머물면 나타나는 증상이 아닐 수 없다.


베란다에 있던 화분들이 추위에 얼까 봐 겨우내 방에 들여다 놓았다. 그랬더니 급강하한 기온에 비실대던 화초들에 생동감이 돌았다. 서재로 쓰는 방이 화분으로 꽉 차 조금 불편한 면이 있었지만 방이 숲 같이 여겨져 좋은 면도 있었다. 녀석들이 한참은 실내에서 잘 크는 듯싶더니 오랫동안 햇빛을 제대로 못 봐서인지 조금씩 생기를 잃어갔다. 싱그럽게 잘 자라던 파초일엽의 푸른 잎사귀 일부가 누렇게 말랐다. 계절이 바뀌면서 원래 자리로 옮겨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빈 베란다에는 다른 짐들이 차지해 버렸다.

모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베란다 정리에 들어갔다. 베란다 보관실을 먼저 정리했다. 버릴 것을 골라내고 질서 없이 놓인 물건들을 차곡차곡 쌓고 그곳에 나와 있는 짐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화분을 모두 베란다로 끄집어냈다. 알로카시아, 파초일엽, 뱅갈고무나무, 해피트리, 군자란, 선인장, 산세베리아, 그리고 작은 다육이 화분이 전부다. 화분을 모두 옮긴 후, 외관상 시든 잎들을 전부 제거하고 물을 듬뿍 주었다. 정리를 마친 후 깨끗해진 베란다에 푸른 식물들로 눈과 마음이 다 시원해졌다.



식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기르는 것은 도통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반려식물이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돌보아야 하는데 보기만 좋아하지 노력은 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무엇이든 소유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이 생긴다. 그래서 소유가 많으면 번뇌도 많아진다고 하지 않던가? 무엇인가를 가지려 할 때 그에 따른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마음만 앞서 무조건 욕심을 부리고 나서는 조금만 귀찮아지면 무관심해져 버린다. 이런 가벼운 행동들이 무책임을 불러온다. 아마도 미니멀리즘이 각광을 받는 것은 소유에서 벗어나 그만큼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에 애정을 갖고 화분을 잘 돌봐야 하겠다.


날이 오전부터 찌뿌둥하다.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다. 기온도 떨어져 쌀쌀하기까지 하다. 분위기상 우울해야 하는데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화단의 풍경은 나뭇잎이 무성해 숲으로 넘실대니 싱그러움과 생기가 전해져 아주 맑은 날 같은 분위기다. 사람들이 자연의 품에 안길 때 평안과 쉼을 누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느티나무와 단풍나무의 초록 잎들과 자주색 잎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퇴직한 이후 바쁜 일정들로 몸이 피곤해서인지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은 요즘이다. 그래서 기본으로 하는 운동도 쉬고 있어서 기운이 없었는데 몸을 움직이고 나니 좀 나아진 것 같다. 거기에 더하여 푸른 숲을 마주 보고 있으니 생기도 솟아난다.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면 몸과 마음은 반드시 처지게 되어 있다. 몸을 움직이고 마음에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 다시 루틴으로 돌아가 운동으로 몸을 쓰고 밀린 독서를 하며 머리를 쓰고 숲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듬자. 글을 쓰는 지금 봄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니 더욱 생기가 넘치는 나무들처럼 내 몸과 마음에도 비를 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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