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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의 즐거움
11화
유자나무와 연날리기
남편 어릴 적에는...
by
범할마
Feb 2. 2020
구정을 쇠기 전 어느 주일에 차가 방전되어 교회를 걸어갔다.
집에
올 때는 남편의 본가가 있는 동네로 걸어서 왔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빈 집도 있고
새로 지은 집도 몇 채 보이지만
아이들 소리가 없는 골목과 집들은
무릎 아픈 노인들처럼 가만히 조용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내가 시집올 때만 해도 점
방이 세 개나 되었는데
지금은 모두 문이 닫혀 있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예전에 아이들이 세뱃돈을 가지고 폭죽을 사거나
조악한 장난감을
샀던
가게 앞을 지나다
언덕에
유자가 조롱조롱 달린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유자는 얼었어도 선비 손에 놀고
탱자는 잘생겨도
거지 손에 논다'
는 속담이 있다.
식용이 가능한 유자와 식용이 불가능한 탱자는
급이 다르게 취급되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과 노란 유자의 색감이 너무
강렬하다. 그리고 싶은 충동도 강렬하게 일어났다
남편은 유년 시절에 연날리기가 제일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연(鸢) 한자를 보니 대신할 代 밑에 새鳥를 쓴다.
새처럼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글자에서 드러난다.
경기도 이남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방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사이에 연을 많이 날리며
황해, 평안, 함경, 강원도 지방에서는 가을에
추수가 끝난 다음에
많이 날린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연에다 厄, 送厄, 送厄迎福 같은 글자를
써서 연실을 모두 풀어 연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우리나라에서 연은 아이들만의 놀이가 아니라
재앙을 띄어 보내고
소원과 꿈을 비는 정월달의 의식 같다.
남편 유년 시절에 설이 다가오면 할아버지는
연을 만들 재료와 얼레를 사주셨다.
두 살 많은 막내 삼촌이 대나무로 살을 만들고
그위에 창호지를 붙여 방패연이나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방패연은 꼬리가 없고 가오리연은 꼬리를 붙
여
균형을 잡았다.
감기에 걸려 밖에 못 나가게 하면 이불 뒤집어쓰고
문틈으로 연을
날리고
비 오는 날에는 비닐을 씌어 날렸다고 하니
연 중독 수준이
다.
연 싸움도 했는데 상대의 연줄을 끊어야 이긴다
이기기 위해서 사기 가루나 유리가루를 풀에 섞어
연줄에
입히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저 언덕에서 엄마 없는 설움과 꿈을 함께 날렸을
남편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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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되지 않기(이미 꼰대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와 모지스 할머니 처럼 따뜻한 그림을 남기고자 오늘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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