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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수정 Mar 20. 2024

세상의 끝을 밟다

여행 5일째는 해발 2,100~2,300m인 호튼 평원 국립공원(Horton Plains National Park)을 가는 날이다. 그곳에는 세상의 끝(World's End)이라는 절벽이 있어서 꼭 가 봐야 하는 코스라고 한다. 국립공원이 오전 6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우리는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가는 도중 일출도 보려고 새벽 4시 30분에 출발했다. 

호텔에서 준비해 준 아침 도시락을 들고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잠시 멈춰서 일출을 보았다. 새해에 일출을 보려고 정동진을 가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에서 산 위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니 감개무량. 사람들이 일출을 보려고 여행을 다니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문득 동명일기(東溟日記)가 떠올려졌다. 조선 후기 의유당 남씨가 쓴 한글 기행문으로, 여성 특유의 묘사와 문체가 두드러지고 치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대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까?  나는 그런 섬세한 표현을 못하니 대신 동명일기가 떠올려졌나 보다.

2배  줌으로 찍은 해의 모습
시간별 해돋는 모습

호튼 플레인스 국립공원은 생태환경 보호를 위하여 플라스틱, 비닐류, 화기류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가 공원에 출입하기 전에 차에서 아침에 나누어 준 빵과 음식을 다 먹고 비닐류는 버리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입구에서 가방도 검사를 하기 때문에 다 버려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나는 양이 좀 많지만 시간 안에 급히 먹다가 사레가 들려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입구에 가니 검사를 철저히 하는데 비닐에 있는 빵을 압수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봉투에 담아서 주고 비닐만 압수했다. 진작 설명을 잘 해 주었으면 급히 먹지 않아도 되고 사레들리지도 않았을텐데, 현지 가이드의 섬세하지 못함이 많이 아쉬웠다. 그러나 국립공원에서 하는 철저한 검사는 참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최소한 국립공원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서 플라스틱, 비닐류 반입을 금지시켰으면 좋겠다.  


이제 '세상의 끝'을 가는 일만 남았다. 두 코스가 있단다. 어려운 코스와 쉬운 코스. 쉬운 코스는 '세상의 끝'은 가지 않고 중간에 돌아 나오는 방법이란다. 가이드는 나보고 가실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이 내가 쉬운 코스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스틱도 준비했고 끝까지 가서 '세상의 끝'이라는 절벽을 보기로 했다.처음에는 가이드를 바짝 따라가면서 걸어 갔는데, 어느 순간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맨 꼴찌로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니 일행은 벌써 사진을 찍으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한 첫 느낌은 약간 실망. 너무 평범한 자연 환경이었다. 뭔가 웅장하고 엄숙한 느낌이 아닌 그냥 좀 높은 산을 오른 느낌이었다. 나만 느끼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무 커다란 기대를 한 것 같았다. 산을 내려가면서 베이커스 폭포(Baker's Fall) 9Km 완만한 둘레길을 걸어갔다. 완만한 길은 걸을 만했다. 일행이 나와 보조를 맞추려고 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라고 하면서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빠르게 걷기도 하고 천천히 걷기도 하면서 주위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걸었다. 결국 맨 꼴찌로 도착했지만 어쨌든 완주했다는데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날은 더블 트리 바이 힐튼 위라윌라 라좌와르나 리조트(DOUBLE TREE BY HILTON WEERAWILA  RAJAWARNA RESORT)에서 꿀잠을 잤다.

세상의 끝에서
베이커스 폭포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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