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9화

9화 : 헤드윅 공연에는 누가 갔을까?

by 이원호

9화 : 헤드윅 공연에는 누가 갔을까?





홍은이는 어느 날 문자를 보냈다. 선연이가 요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에서 다음 주에 공연을 하는데 같이 찾아가 보지는 않겠느냐는 내용이었다. 흥미가 일어 흔쾌히 수락했다. 선연이가 연기하는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공부만 하던 일상에서 일탈도 하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에 옷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버스 정류장 앞 꽃집에서 꽃다발을 산 뒤 신촌으로 향했다. 여자 친구에게 줄 꽃이냐고 물어보는 꽃집 아저씨의 물음에는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공연 축하용이라고 대답했다. 언젠가 여자 친구에게 이런 꽃다발을 건넬 날이 오게 되긴 할지 조금 궁금해하며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홍은이는 연대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화사한 치마를 입고 손에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며 손을 흔드는 나를 보며 홍은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요. 무슨 꽃다발이 그렇게 거대해.”

“아 미안. 처음이라. 꽃집 아저씨도 공연 축하용 꽃다발은 처음 이랬어.”

“공연 축하용 꽃다발로 그렇게 거대한 꽃다발이 처음이었다는 건 아니었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홍은이는 영 미심쩍다는 표정을 떫은 미소로 감춘 채 학교 내부를 소개해 주었다.

이미 몇 번 와본 연세대학교 안이지만 봄볕 속에서 걸으니 그것은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마치 대학생이 된 것만 같아서 조금 설레고 조금 기뻐하며 걸었다. 잠시만 느낄 몽상 같은 감정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쁨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공연은 학생회관 안에 있는 공연장에서 4시에 시작하기로 되어있었다. 홍은이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미리 받은 티켓에 적혀있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자 곧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적막이 긴장 속에서 흐르는 가운데, 선연이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전하’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사육신과 생육신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었다. 살아야 하는 생육신과 죽어서 뜻을 이루어야 하는 사육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가 녹아있는 이야기 속에서 선연이는 성삼문의 역할을 맡았었다. 무대 위에 선 선연이는 죽음과 아픔을, 생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을 노래했다. 죽어야지만 이루어지는 꿈과 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선연이의 역할에는 절망과 분노가 한가득 녹아들어 있었다. 선연이는 불꽃같은 대사들로 관객석을 온통 뒤흔드는 분노를 토해냈고, 내겐 그 감정은 허구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배우들과 수많은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대사만 들어올 뿐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 인사하는 선연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자 선연이는 깜짝 놀라며 우리를 안아주었다.


“둘 다 여기는 어쩐 일이야?”

홍은이는 자기가 데려왔다며 자랑했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나는 선연이에게 말했다. 대사가 인상적이었다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가운데 살고 싶다고 말하는 네가 생생히 느껴졌다고 말이다. 그 외침 속에선 삶의 아픔이, 죽음에 대한 환상과 거짓말이, 그렇게 뒤얽혀 자라는 사람의 모습이 느껴졌었다. 살아야만 이룰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죽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그 말은 지금의 우리를 정의하는 참 적절한 말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은 서로의 아픔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그 사실을 이야기 해주자 선연이는 부끄러워하며 도망가 버렸다. 단발로 잘라놓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가을의 미소처럼 부드럽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참 보기 좋은 것이라 나는 넋을 놓고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홍은이가 이제 가자며 옷깃을 잡아 끌 때까지 말이다.

선연이는 후에 내게 짧은 편지로 덧붙였었다. 사실은 살고 싶다는 대사를 할 때마다 비참했었다고,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랐던 자신에게 ‘아냐, 사실은 살고 싶어'라고 자꾸만 말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고 말이다. 선연이는 죽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리고 죽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은 잘 살고 싶다는 그 바람이 무너져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 분명하겠지만, 그럼에도 그 아픔은 생생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선연이는 대사 속에서 그 마음이 관객석에 전해질까 하는 생각을 품었으며, 그걸 다 듣고 있어 줘서, 말하지 않은 부분들까지 다 귀담아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내게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좋은 연기였기에 들렸을 뿐이라고 말해주었을 뿐이다.


그날 저녁, 드라마를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던 중에 홍은이의 채팅 초대가 날아왔다. 수락하기가 무섭게 홍은이는 심심하다고 놀아달라고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홍은이는 심심할 때면 내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길 좋아했다. 취미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렸을 적의 생활, 고등학교 시절 때의 추억,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이 다 궁금해하는 이 아이와 대화할 때면 가끔은 정신과 상담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홍은이는 나를 대단히 특이하고 이상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종종 세상에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있는지 신기하다고 토로했다. 지나치게 여리고 감정적이며, 세상을 살아갈 줄 모를 만큼 순수주의자인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도 신비였다. 그래서 홍은이가 신기해할 때마다 나도 이런 내가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아야만 했다.


그날 저녁 채팅방에서 홍은이는 내게 물어보았다.

-선연이를 좋아하지?

그건 참 직설적인 질문이었는지라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럴 때에는 솔직함 말고는 별로 쓸 무기가 없었다.

-응.

-첫사랑?

-아마도.

-얼마나 알고 지냈어?

-12년 정도? 오래되었네.

-좋아한 건?

-글쎄. 그렇게 단순한 시간은 아니라서.

-이상해.

-뭐가?

-누가 봐도 좋아하는 게 티 나는데. 고백은 안 해?

-글쎄. 남자 친구 있잖아.

-골키퍼가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진 않는다잖아.

-나는 좋은 골잡이가 아냐. 빗나갈걸.

-기다릴 거야?

-그럼.

-얼마나?

-글쎄.

-정말 이상해. 진심이긴 한 거야?

-응. 진심이야.

-선연이가 다른 남자 만나면?

-행복하라고 빌어주겠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어?

-글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좋은 사람이 너한테 다가오면 어떻게 할 거야? 아직 어리잖아. 정말 운명적인 사람은 천천히 찾아올 수도 있는 거고. 너도 대학에 가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그럼 그 좋은 사람에게 가겠지.

-어떻게 그래? 진심이라며. 기다린다며.

-진심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곁에 누가 있는 건 좋아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냐. 내 곁에 붙잡아 두려고만 하지도 않고, 내 모습을 그 곁에 비끄러매 두지도 않으려고 해. 자연스럽게 피어나고 살다 보면 그냥 행복해지겠지. 그렇게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그 여자아이가 불쌍하진 않겠어?

-응. 그때도 진심일 테니.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네가 하고 있는 건 짝사랑이 아니야? 짝사랑이 행복할 수 있어?

-짝사랑이랑은 조금 달라. 내게 오길 기다리며 아파해야 짝사랑일 테니.

-너의 진심은 이상해.

-그런가.

-선연이의 친구로서 한 마디 하자면!

-응.

-네가 잘되길 바랄게. 너는 좋은 사람 같아.

-고마워.

홍은이가 한 말은 몇 년 전 현진이가 했던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는지라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바뀐 것인지, 결론을 내려주는 사람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판단이 바뀐 것뿐인지 알 수 없었다.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그저 쑥스럽게 웃으며 흘려보내야 하는지 조금 어지러웠다. 차마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은 것이라는 그 말을 남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려면 소유하려 들어선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더없이 진심임에도 그 말은 왠지 조야한 변명같이 들렸다. 용기가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한 겁쟁이의 거짓말 같았다. 시간이 진심을 모래 속의 진주처럼 드러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그 누구도 확답할 수 없었다.

홍은이는 채팅방을 떠나기 전, 선연이가 헤어졌으며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의 시간이 정확히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비겁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지만, 그래도 기회는 기회이고 지금도 다가서기에 나쁜 시간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잠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한 달간 고민을 하다가 뮤지컬 티켓을 2장 샀다. 선연이가 몇 달 전부터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뮤지컬 HEDWIG의 티켓이었다. 이왕 사는 것 VIP석으로 살까 생각했지만 그건 곧 뮤지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내 객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VIP석은커녕 일반석을 두 장 사기 위해서도 나는 가진 돈을 몽땅 털어야만 했다. 이렇게 큰돈을 한 번에 써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차마 인터넷 예매조차 못하고 뮤지컬 공연장에 직접 가서 티켓을 사 와야만 했다. 티켓처 직원은 통장을 송두리째 털어가면서 곱게 웃었고, 그 곱상한 웃음이 미워서 나는 입술을 삐죽 대었다. 그래도 예쁜 봉투에 담긴 티켓 두 장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고, 돈이 없는데도 속상하기보단 이상할 만큼 행복한 기분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 바보 같은 계획은 이랬다. 티켓을 두 장 주면 선연이는 좋든 싫든 같이 갈 사람을 한 명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선물을 준 고마움에서라도 아니면 내 마음을 조금은 눈치채서라도 같이 가자고 물어봐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억지이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선택받으면 내 마음도 용기 내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너를 가장 생각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 계획은 참 완벽했다. 내가 어리고 겁쟁이이며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는 유치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걸 가르쳐주기에 말이다.

티켓을 건네어주었을 때 선연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꼭 보고 싶었던 것이라며, 선물해줘서 고맙다는 선연이의 말에 나는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꼭 소중한 사람과 보러 가라고 말이다. 선연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공연 전날, 마음을 애태우던 내가 누구랑 보러 가기로 했냐고 물어보자 선연이는 해맑게 대답했다.


“엄마랑 보러 가기로 했어! 티켓 너무 고마워!”

허탈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어서 은정이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자 은정이는 배를 잡고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대었다. 은정이는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고백 계획은 처음 들어본다고 그랬다. 나도 그에 동의했다. 모든 사건이 다 끝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계획이 얼마나 유치하고 조야하게 내가 가진 마음을 보상받으려고 들었는지 말이다. 그것은 급급하게 내가 주고 있는 감정만큼 되돌려 받으려고 한 얕은 행동이자 여태껏 있는 그대로를 편안하게 사랑하겠다고 말하던 내 모습 모두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동이었다. 깊이 있게 좋아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다고 자만하던 내 마음도 세상 다른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치기 어린 오만의 한계는 자괴감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자괴감보다도 더 나를 괴롭힌 것은 거절당한 바나 마찬가지인 현재의 상황이 나를 꽤나 아프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여 결국 상처를 받아버렸다는 사실이 지독한 슬픔으로 나를 괴롭히고 말았다.




10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