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묵주 팔찌
그 뒤의 일들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세상은 아픔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게 하고 시간 축에서 시간이 화살처럼 떠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수억 명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괴로움과 슬픔은 아닐까. 나는 떠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는 절망뿐이었다. 지금도, 앞으로의 모든 날들도 그렇게 괴로울 것을 알았다. 괴로움과 자괴감은 마음을 온통 채워서 내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어디로든지 떠나야만 했다. 이미 알고 있던 세상과 성희와 함께 걸었던 길에는 차마 머무를 수가 없었다. 여행을 준비했다. 굳이 돌아오지는 않아도 괜찮을, 내 시간의 끝을 향해 걷는 그런 여행을 말이다.
나는 잔잔히 계획을 세운 뒤, 나를 평가하거나 저지하지 않을 단 두 사람에게만 계획을 털어놓았다. 말했다. 그 사람들이 응원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심한 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두 사람은 선연이와 어렸을 적 나의 세례식을 주관하셨던 신부님이었다.
어떤 연락도 미리 드린 적이 없었음에도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오랜만에 뵙는 신부님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드렸다. 신은 왜 우리의 고난에 대해서 침묵하시는지, 왜 이토록 괴로워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왜 삶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과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절망이 내 가슴을 짓누르는지, 인간은 원래 이렇게 살도록 운명 지어졌는지 물었다. 그토록 의미 있어야 하는 삶은 왜 이리도 무의미한지, 이 거대한 세상 앞에서 너무나도 작아서 없어지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그런 조각이 되어 가는지 물었다. 그것은 내 질문이기도 했지만 떠나야만 했던 성희를 대신해서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했고, 아파하던 선연이를 대신하여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했다. 괴로워하며 살고 스러져가는 모든 인간에 대한 질문에 신부님은 확답을 주시지 못하셨다.
나는 신부님께 말씀드렸다. 질문에 답을 찾고 나를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겠다고 말이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아픔과 나의 떠나감을 고백하자. 신부님은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해주셨다.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닫고 벽을 치고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벽에 막혀 전달되지 않았다. 신부님은 아마 그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괴로워하는 자에게는 어떤 말도 곧바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신부님은 다만 말씀하셨다. 축복 속에 발걸음을 옮기라고,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나와 나에 대한 사랑을 찾아오라고 말이다. 나 역시 다만 그것을 바랐을 뿐이기에 조용히 성호를 긋고 성당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 신부님이 나를 부르셨다.
“수호야. 묵주 팔찌는 차고 있니?”
손목에는 흉터뿐, 텅 비어 있었다. 선연이에게 묵주 팔찌를 준 뒤로 내 손목에는 그 무엇도 걸리지 않았었다. 신부님은 성당에 걸려있던 작은 나무 팔찌를 하나 꺼내서 손목에 걸어 주시고 기도를 올리셨다. 차갑게 굳어있던 나무에 숨결 같은 온기가 들어왔다. 자꾸만 멈추려고 아프게 뛰던 내 심장이 잠시 부드럽게 평온을 찾았다.
나는 성당을 나오며 잠시 멈칫거렸다. 누군가가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눈에 들어왔다. 성모상의 기도는 세상을 떠나는 듯한 석양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성모상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으로 올려보는 간절한 기도였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을 아프지 않게 떠나갈 수 있기를. 성모상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이 세상에 없을 빛으로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축복 속에서 나는 조금은 빗방울 같은 눈물을 흘렸다.
출발하기 전날에야 선연이에게 문자로 말했다. 긴 여행을 떠난다고, 어디로 발걸음이 향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때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선연이가 걱정되기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것보다는 떠나는 것이 나았다. 돌아온다면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선연이에게 말했다. 내 말에는 ‘만약 돌아올 수 있다면’이라는 말이 빠져있었지만 어쨌든 진심이었다. 선연이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지금 어디야?
-집 앞.
-우리 집 앞으로 올래? 지하철 역 앞에 투썸 플레이스가 있어. 거기 2층에 있을게.
간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그래도 얼굴은 한 번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서로를 한없이 마주 보았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될 것을 서로 알아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선연이는 말없이 손목에 끼고 있던 묵주 팔찌를 내 손목으로 옮겨놓았다. 마치 별의 조각들을 건네는 것만 같은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계속 끼고 있었네.”
“응. 외로울 때 많은 의지가 되더라.”
“그런데 왜 돌려주는 거야?”
“돌려주는 건 아냐. 빌려주는 거야. 왠지 지금 이 순간에는 네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여행을 떠나면 네가 나한테 잘 연락을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주면 내가 연락 자주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이야?”
“나는 힘들 때마다 여기에다가 말 걸었거든. 너도 힘들면 이걸로 말 걸어봐. 들릴지도 모르지.”
“텔레파시야?”
“응. 그런 거야.”
나는 어느새 두 개의 팔찌가 끼워진 내 손목을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그리곤 신부님께서 주신 나무 팔찌는 선연이의 손목에 다시 채워주었다. 검은색 묵주팔찌는 내게 다시 돌아와 있었고 신부님이 주신 나무팔찌는 선연이의 손목으로 옮겨갔다. 선연이의 하얀 손목 위에서 투박스러운 나무의 빛깔이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텅 비어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우리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행동을 이해했기에 애써 웃음을 지었다.
“잘 지내고 있을 거지?”
“당연하지.”
“금방 올게.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잘 견뎌야 해.”
“그럴게. 몸 건강히 꼭 돌아와야 해! 잊지 말고 꼭 연락하고!”
선연이는 지하철역 앞에서 돌아서려다가 말고 나를 길게 끌어안았다. 그것은 담담하면서도 마음을 온통 뒤흔든 포옹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수천 마디 말이 별의 조각들처럼 마음에 박혀 들어왔다. 단지 서로에게 담담하게 얹혀있었던 순간들이었지만 그 온기가 그 손짓이 그 마음이 내게 지울 수 없는 소중함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너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너도 나에게 그렇게 기대어오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아프게 포옹하고 담담히 작별을 말했다.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괜히 선연이를 걱정하는 주제넘은 내 모습은 슬픈 것이었지만, 우리가 인간답고 따스한 이유이기도 했다.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때는 닿을 수 있을까. 나는 혹시 너마저도 떠나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픔이 뿌옇게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어디로 떠나가는 것인지도 몰랐고 무엇을 떠나가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고통은 모든 것을 흐릿하게만 보이게 만들었다. 그 흐릿함 뒤에 숨어서 다 도망치고만 싶었지만, 나는 애써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이라면 어디에선가는 다시 마주칠 것이다.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긴 시간이 지난 뒤에라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들을 믿었다.
뒤돌아 발걸음을 옮기자 선연이도 뒤돌아서 걸었다. 우리는 서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음이 조금 허전했지만, 그래도 텅 비지는 않았다. 굳어가던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손목에서 별빛 같은 의미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날 밤, 형동이는 전화를 걸었다. 장례식에 오지 않은 것을 안다고, 정상적으로 잘 살고는 있는 거냐고 말이다. 머뭇거리며 잘 대답하지 않자 형동이는 곧장 내일 뭐할 거냐고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마 당장이라도 죽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 모양인 것 같았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형동이는 새벽 3시까지 계속 전화를 울려대며 나를 닦달했고 나는 결국 전화기를 꺼버린 뒤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그 충고들을 듣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기엔 더 이상 살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슬펐다. 나 역시 이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할 참이었다.
12화에서 계속